<지역,사회적기업에 주목하다④>벨기에의 사회적기업을 가다
<지역,사회적기업에 주목하다④>벨기에의 사회적기업을 가다
  • 정순영 기자 soon@okinews.com
  • 승인 2009.12.11 09:36
  • 호수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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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에 대한 정의와 범주, 형태 등은 나라마다 다양하지만 큰 범위에서 유럽형 사회적기업과 미국형 사회적기업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이나 비영리민간단체 등이 사회적기업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사회적기업의 운영방식과 '어떤 사회적 목적을 어떻게 실현하는가' 등을 중요하게 바라봅니다. 이에 비해 미국의 사회적기업은 그 형태나 운영방식이 무척 다양해 순수한 영리기업일지라도 수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그 또한 사회적기업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경우, 양쪽 모두의 영향을 받았지만 사회적기업의 유형을 분류하고 사회적기업육성법의 기본 틀을 만드는 데는 유럽형 모델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이에 본지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지난 10월29일부터 11월6일까지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의 대표적 사회적기업들을 방문ㆍ취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내용을 2회에 걸쳐 실습니다.

연재 순서

ⓛ 지역과 사회적기업
② 지역 내 사회적경제 진단
③ 꿈틀대는 사회적기업의 맹아
④ 해외의 사회적기업(1)벨기에
⑤ 해외의 사회적기업(2)프랑스
⑥ <좌담회>지역살림과 사회적기업

벨기에는 어떤 나라? 유럽 북서부에 위치하며 와플과 오줌싸개 소년 동상으로 잘 알려진 벨기에는 우리나라 면적의 3분의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이다.

비록 인구 천 만 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 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 등이 위치해 '유럽의 수도'로 불린다. 국왕이 살고 있는 입헌군주제 나라이자 연방국가로, 네덜란드어권ㆍ프랑스어권ㆍ독어권의 3개 공동체가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다.

벨기에의 사회적기업은? 벨기에의 사회적기업은 협동조합과 비영리민간단체들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일자리를 통해 사회에 통합시키고자 하는 활동의 한 측면으로 활성화되어 있다. 벨기에의 민간단체는 '거대한 거미줄'처럼 벨기에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데, 실제 5만개 가량의 비영리민간단체가 30만명이 넘는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사회적경제의 토대와 국가의 재정적ㆍ행정적 지원 속에서 사회적기업이 발전해 왔다.

벨기에 사회적기업의 유형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기업 △취약계층(육체적ㆍ정신적 장애는 물론 문맹이거나 노동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 △그밖에 사회적 목적을 가지면서도 시장지향성을 가진 기업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민가정의 든든한 친구, 부이용 드 뀔뛰르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인근 샤에르벡(Schaerbeek) 지역의 민간단체 '부이용드 뀔뛰르(Bouillon de Cultures)'는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정의 지역사회 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벨기에는 2차 대전과 1960년 경제 성장기를 전후해 모로코, 터키 등에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유입됐는데, 샤에르벡의 경우 수도 브뤼셀과 인접하면서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한 탓에 가난하고 쇠락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민자들이 유입될 당시 벨기에 정부는 그들의 노동력만을 필요로 했지 정작 그들의 삶의 질에는 무관심했고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낀 주민들은 '부이용 드 뀔뛰르'라는 민간단체를 조직해 기존 주민들과 이민자들 간의 새로운 관계 맺기에 나서게 된다.

부이용 드 뀔뛰르의 첫 발은 작은 카페를 열어 기존 주민과 이민자들이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교류 속에서 지역의 문제점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운영 △12세 ~25세 사이의 청년들에게 창작작업장, 문화작업장 등을 제공하는 청년활동센터 운 영 △학업상조그룹: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의 학업 과정에 대한 진학 상담 및 생활 지원 △직업훈련장이자 서로 다른 문화를 교류하는 레스토랑 '세잠' 운영 등의 활동을 벌이게 된다.

이뿐 아니라, 문맹 주민들을 위한 프랑스어 교육과 기존 주민과 이민자 가족이 함께하는 캠프, 이슬람 이민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들 역시 부이용 드 뀔뛰르의 주요 활동 중 하나이다.

이민자뿐 아니라 지역 전체가 이용하는 주민센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부이용 드 뀔뛰르에서는 현재 24명의 상근자와 20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으며 운영 재원의 90% 가량을 자치단체가 지원하고 나머지는 기부나 레스토랑 운영 수익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 부이용 드 뀔뛰르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령장 겸 레스토랑인 '세잠' 입구에서 부이용 드 뀔뛰르 쟝마리 르꽁뜨 사무국장(사진 오른쪽)과 세잠의 주방장이 포즈를 취했다.

세잠에서 만난 부이용 드 뀔뛰르 쟝마리 르꽁뜨 사무국장(사진 오른쪽)은 "세잠을 처음 마련한 건 지역 주민간의 교류를 위해서였지만 현재는 일반인의 이용이 훨씬 많고 그 사람들을 통해 세잠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지역의 이미지도 크게 나아졌 다"며 "이 지역 주민들은 세잠이 운영하는 급식서비스를 결혼식이나 파티 등에 이용하면서 그 의미를 하객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기존 주민과 이민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역사회 통합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 부이용 드 뀔뛰르의 사례는 이미 300 가정이 넘는 다문 화가정이 지역사회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고장에도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노동의 존엄성을 나눕니다, 옥스팜

벨기에뿐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공정무역'을 전파하고 있는 옥스팜은 대안적 상업 활동을 펼치는 상점의 역할만 하지 않는다. 옥스팜은 북반구 소비자와 남반구 생산자들의 연대를 통해 빈곤국 노동자, 농민들이 착취 받지 않고 존엄 속에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투쟁하는 민간단체이다.

옥스팜의 활동 방식을 살펴보면, 가령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 면직물을 생산할 능력이 있는 여성들이 있다면 옥스팜 활동가들이 직접 마을로 들어가 그 여성들이 생산협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한 번 형성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그 마을에서 생산된 물품이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만약 생산품이 농산물이라면 친환경 기준을 제시하고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 벨기에 브뤼쉘 인근 지역의 한 옥스팜 매장에 공정무역 상품들이 진열돼 있다.

옥스팜의 또 다른 활동 중 하나는 생물종의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것. 예를 들어 원단으로 사용되는 야마털의 경우 흰색, 검은색, 갈색 세 종류가 있지만 일반 시장에선 염색하기 쉬운 흰색만을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옥스팜은 세 가지 색을 모두 구입함으로써 생물종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옥스팜 매장은 온전히 자원활동가들의 힘으로 운영되는데, 자원 활동가들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왔을 때 옥스팜의 활동을 소개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적극 홍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옥스팜은 단순히 공정무역 상품을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지역사회 여러 문제들에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영향력도 행사하고 있다.

현재, 벨기에에는 왈룬과 브뤼셀 등 불어권 지역에만 80여개의 옥스팜 상점이 있으며 일반 매장과 별도로 학교 내에서 간식 등을 판매하는 매장이 100개 정도 있다. 또, 벨기에의 자치단체들은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커피와 같은 물품들을 옥스팜에서 구입하는 것으로 공정무역을 측면 지원하기도 한다.

브뤼셀 지역의 한 옥스팜 상점에서 만난 자원활동가 프란시스 윌보씨는 "옥스팜은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돈(white money)을 버는 것이 목표"라며 "지역사회 내에서 'Made in dignity'(존엄으로 생산된)라는 브랜드를 가진 옥스팜에 대한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요즘에는 소비자들이 먼저 보다 원칙적인 공정무역 상품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방식도 가능합니다' 노동자기업, 떼르

벨기에 리에쥬 지역에 위치한 떼르(Terre, 우리말로 땅을 의미)는 벨기에 남부 왈룬 지역 일대의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분류해 처리하는 기업이다. 얼핏 보면 평범한 재활용품 처리업체나 청소업체와 다를 바 없지만 떼르에는 월급을 주는 사장님이 없다. 대신 300여 명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총회에서 결정된 방식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고 그 수익금을 나눈다.

떼르가 왈룬 지역에서 1일 수거하는 옷은 35톤 정도. 이 중 80% 가량은 해외로 수출돼 옷감 등으로 재활용되며 가장 상태가 나쁜 옷은 방음재를 만드는 데 쓰인다. 또, 떼르는 수거지역의 자치단체로부터 1톤 당 150유로의 처리비도 받고 있다. 종이는 1일 300톤 정도 수거 되는데, 수거된 종이는 주문생산 방식으로 방음 판넬을 만드는데 사용되고 상태가 좋은 것은 신문지 등으로 재활용되기도 한다.

▲ 떼르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

6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떼르가 처음 재활용품 수거업무를 시작할 때는 이 분야에 별다른 경쟁자가 없었지만 2000년 이후로는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로 민간업체와의 경쟁이 심해져 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입찰에 참가해 재활용품 수거권을 얻고 있다.

이 같은 기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금은 우선 노동자의 임금으로 분배되는데, 떼르에선 노동자들 스스로가 최저임금과 최고임금의 차이가 2.5배 이상 나지 않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임금을 나눠가진 후 남은 수익금의 일부는 떼르의 미래를 위해 적립하고 '떼르'와 공동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제3세계 파트너들과 협력 사업을 하는 데 쓰인다.

떼르는 자본주의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다양하게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노동하고 수익을 내고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떼르가 생각하는 유용한 경제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도 환경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는 것이다.

떼르의 활동가 끌라우디아 마롱지우씨는 이 같은 떼르의 지향을 현실화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고 이야기했다. 마롱지우씨는 "떼르의 노동자는 국적이 15개나 될 정도로 다양하고 그 속에는 문맹자도 있기 때문에 그 같은 어려움을 극복할 해법을 찾는 것이 떼르의 중요한 과제"라며 "300여 노동자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교육과 토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떼르의 작업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분류하는 고된 노동 속에서도 무척 신나고 밝은 표정이었다. '모든 자본은 일하는 이들의 몫'이라는 떼르의 정신은 노동자가 한낱 기계부품처럼 무참히 잘려 나가는 우리사회의 비참한 노동현실에 작은 울림을 전해준다.

▲ 떼르의 홍보 포스터. 사회적경제와 연대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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