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청소년 탐사보도]옥천 청소년 10명 중 8명 '지역 독립운동사 모른다'
[NIE 청소년 탐사보도]옥천 청소년 10명 중 8명 '지역 독립운동사 모른다'
  • 옥천고 탐사보도단<햇관종> webmaster@okinews.com
  • 승인 2014.09.26 14:59
  • 호수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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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출신 독립운동가나 지역 독립운동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천의 독립 운동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매우 잘 알고 있다'나 '잘 알고 있다'는 대답은 충격적이게도 한 명도 없었다. 응답자 전원이 '보통'(13명)이나 '잘 모른다'(40명), '전혀 모른다'(44명)고 답해 옥천 출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밝혀졌다.

옥천고등학교 <햇관종> 탐사보도단은 옥천의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에 대한 지역 청소년들의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옥천고등학교 재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97명의 답변을 분석해 보았다.

 

◆청소년 대부분 지역사 '몰라'

'알고 있는 옥천의 독립운동가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정지용'이라고 대답한 응답자가 4명, '조 헌' 4명, '김 구' 2명, '김순구', '김규흥', '한방진', '김순원'이 각각 1명씩 답변이 나왔다. 하지만 이 중에 옥천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는 인물은 김순구와 김규흥 뿐이다. 이는 옥천의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대답한 학생들도 맞지 않은 인물을 생각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매우 충격적인 결과이며 우리 옥천 지역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옥천 인물 중 친일파가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모른다'고 한 학생이 무려 94명이었다. 알고 있다고 답한 3명은 김연수, 옥천군 1대 군수, 이완용이라고 각각 답했지만 실제로 질문에 맞는 대답은 옥천군 1대 군수 밖에 없어서 많은 학생들이 옥천의 친일파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조사됐다. 물론 우리나라는 친일파에 대해 묻어 두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지만 과거를 잘 알아야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법이다. 이런 조사들을 통해 우리는 학생들이 옥천의 역사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대한민국 자치 1번지, 주민이 만들어가는 옥천'이라는 슬로건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다. 역사를 알아야 자치가 가능하지 않는가? 많은 학생들이 옥천의 인물과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 우려 된다.

옥천 인물이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고장 독립운동가나 친일파에 대해 들어보거나 배워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잘 모른다'고 답한 학생이 90명이었다. 들어봤거나 배워봤다고 답한 7명은 부모님(3명)이나 학교(2명), EBS(이비에스, 교육방송)(1명), 인터넷(1명)으로 들었다고 답했다.

'우리고장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지역이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서도 '잘 모른다'는 답을 택한 학생이 90명이었다. '알고 있다'고 대답한 학생들은 관성회관(2명), 이원(3명), 옥천(1명), 육영수 생가(1명)라고 답했다. 이는 우리고장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난 곳에 기념비 또는 기념행사 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 알고 싶지만 알 수 없는 옥천 인물사

'우리고장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에 대해 별도로 공부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그렇다' 79명, '그렇지 않다' 16명, '무응답' 2명으로, 많은 학생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 결과는 우리 학생들이 '옥천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알기 힘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어떤 지역에 사는지, 어떤 인물들이 우리고장에 존재했는지에 대한 것들은 교과서 또는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판명된다.

특히 교과서에는 안타깝게도 우리고장 사람들이 거의 나오지 않으며 이는 타 지역에 대한 사대주의 또는 우리고장에 대한 낮은 자신감으로 나타날 수 있어 우려가 된다.

우선 우리가 '대한민국 자치 1번지, 주민이 만들어가는 옥천'이 되려면 역사를 배워야 하며 지역 향토사를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자치 1번지'가 될 수 있다.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친일 역사나 독립운동 역사 모두 형평성 있게 잘 다뤄져야 하며 청소년들이 알기 쉽도록 도와줘야 한다. 

옥천 청소년, '이 세분은 알아야죠'

<햇관종> 탐사보도단은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동호, 김규흥, 육창주 선생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세 분 모두 항일운동에 헌신했으나 지역 청소년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분들이다. <햇관종>의 이번 활동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항일언론계의 대들보, 조동호 선생

유정 조동호 선생은 청산면 백운리 출생으로 여운형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하며 미국 대통령에게 조선 독립청원서를 직접 작성했으며 독립신문 창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1944년 여운형 등 10명과 함께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나 8월4일 체포되고 감옥에서 독립을 맞게 되었다. 그의 소원처럼 독립이 되었으나 계속된 징역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어 투병생활을 하다가 1954년 9월11일 63세에 돌아가셨다.

▲ 조동호 선생

◆ 교육의 필요성 강조한 김규흥 선생

범재 김규흥 선생은 옥천읍 문정리에서 출생했으며 국민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사유 재산을 써서 진명(죽향초 전신)학교를 설립하는 데 힘을 썼다. 대부분의 우국지사들은 만주나 연해주를 망명지로 선택했지만 김규흥은 망명지를 광동으로 선택하였는데 이는 대한민국 독립 운동사에 많은 영향을 줬다. 바로 공화주의 정착, 중국혁명지사들과의 유대관계, 상해가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이 된 점 등이다.

▲ 김규흥 선생

◆ 깨어있는 투쟁가 육창주 선생

육창주 선생은 (당시) 옥천군 이남면 수묵리에서 출생했으며 수묵리의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권유하고 육창대의 집 사랑방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허상기 등과 태극기를 지니고 이원장터로 나갔다. 육창주 열사는 주민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고 일본군이 해산을 명하였으나 그에 응하지 않고 격렬히 항거하였다.

친일파 청산에 미진한 대한민국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고장 옥천에서 독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독립운동가들도 많았지만 친일파도 적지 않다. 그 중 한명은 일제강점기 마지막 군수인 김학응 군수이다.

▲ 친일행적에도 불구, 초대군수라는 이유로 옥천군청 상황실에 사진이 걸려 있는 김학응.
김학응 군수는 괴산 출신으로 1930년 옥천군 공무원으로 활동하며 중일전쟁 전시업무를 잘 수행해 군수로 영전했다. 해방된 이후에도 미군정에 의해서 군수직을 유지했으며 이후 1960년 3·15 부정선거에 개입으로 구속,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김학응 군수가 처벌 받은 것은 부정선거 개입으로 인한 것으로 친일 행적으로 인한 처벌은 받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김학응 군수가 친일파 였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고, 옥천군 또한 친일파 알리기에 적극적이지 않다.

옥천신문의 기획취재 기사 <옥천의 잃어버린 반쪽 역사를 찾아(3)>에 따르면, 옥천군은 초대군수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에 당혹해 하는 입장이다. 당시 이은승 기획감사실장은 "역대 군수 중에 친일군수가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며 "자료를 파악해 검토하고 군수님께 보고 드려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다"고 말했지만, 2014년 9월인 지금도 김학응 군수의 사진은 다른 군수 사진과 함께 걸려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나라의 배신자들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중국의 경우 사법처리 4만5천 건, 집행선고 1만4천932명, 사형집행 359명에 한간(중국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 항일경비(항일구국강령)로 사용했다. 프랑스의 경우도 나치협력자에 대해서 5만5천331건의 사법처리, 6천763명의 집행선고, 사형집행 767명에 4만6천646명의 공민권을 박탈하고 최고위층 18명을 사형시켰다. 우리나라는 고작 사법처리 221건, 집행 선고 41명, 사형집행 0명, 구형 41건 모두 무죄와 병, 보석으로 풀려나는 등 다른 나라에 비해서 지지부진하다. 독립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친일파들의 숙청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라를 배신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꾀할 수 있다면 그 누가 나라를 위해서 몸 바치겠는가. 지금이라도 친일 역사 청산을 시작할 때이다.

<기자의 눈>

옥천 독립운동가, 제대로 좀 기립시다
 옥천군, 기념사업 관련 정책 마련 시급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을 한 우리고장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또한 독립 운동가들에 대해 연구하고 기억하고 추모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위인들을 추모하고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행사를 한다. 우리 지역에는 이원면에 있는 삼일운동 기념비와 충혼공원(옥천읍 마암리)에 세워진 독립유공자비 등이 있지만, 이것만으로 독립유공자와 독립운동을 추모하는 것은 부족하다.

우리고장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우리고장 출신 위인들과 지역의 독립운동을 추모하고 기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고장의 독립운동가 서훈자는 40여명이지만 그들을 기리는 사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독립운동가로 서훈되지 않지만 실제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을 잊지 않기 위하여 그들에 대한 자료발굴과 기록정리가 필요하며, 서훈자이거나 서훈자가 아니거나 이들을 모두 기릴 수 있는 기념사업이 필요하다. 또한 주민들에게 우리 고장의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은 많다. 하지만 알려지지 못한 분들 또한 많다. 따라서 이러한 분들에 대해 우리 모두가 연구하고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숙제이다. 

<탐사보도를 마무리하며>

김열호: 우리고장 역사를 잘 모르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알아 가면서 옥천에 사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느끼고 뿌듯했다. 그리고 형들과 기자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잘 할 수 있었고 고마운 마음이 매우 크다.

이정담: 옥천의 인물에 대하여 많이 몰랐지만 탐사보도단 활동을 하며 배우고 깨달았다. 조사하기 전엔 옥천이라는 지역에 대해 조금의 자부심이나 알고 있는 것이 없었는데 탐사보도단을 하면서 옥천에서 나온 인물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인물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옥천에 대해 많이 알게 돼서 기분이 좋았고 다음에도 참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민우: 그저 학교에서 배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우리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해보지 않았었다.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고장의 독립운동가 정도는 알았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가들을 조사하면서 우리고장은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것에 관심이 부족한 거 같아 아쉬웠지만, 덕분에 이렇게 우리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어서 배우는 것 이상으로 효과를 본 것 같아서 좋았던 활동인 것 같다. (사실 기사 쓰는 게 너무 어려워서 다시 하고 싶지 않아...이과로 돌아갈래)

정주영: 주제가 정해진 후, 나는 우리고장의 친일파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내 고장에 대해서 자세히 모른다. 내 나이대의 학생들이라면 우리 고장의 역사보다 시험에 나오는 인물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조사를 하던 중에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우리고장에 대한 자료가 많았다. 배울 기회가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여태까지 우리고장에 무관심 하면서 배울 생각조차 안하던 것이 미안해졌다.

구다빈: 이번 탐사보도 기간 동안 우리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았다. 다른 나라의 왕과 역사는 그렇게도 잘 알면서 몰라서는 안 될 우리고장의 역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이 내내 떠나지 못했던 것 같다.

▲ 김열호(1학년)
▲ 이정담(2학년)
▲ 한민우(2학년)

 

 

 

 

 

 

 

▲ 정주영(2학년)
▲ 구다빈(2학년)

 

 

 

 

 

 



<탐사보도를 심사하며>

오정오(청산중 국어교사)
정지용을 옥천 출신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는 지역 청소년들의 인식 현황이나 친일파 출신 옥천군수 등을 취재한 점과 설문조사 문항 등에서 탐사보도 내용의 깊이가 돋보임

이수희(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정작 옥천의 청소년들이 옥천의 역사를 잘 모르고 있다는 주제가 참신함. 설문조사 등을 통해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줬으며 군청을 방문해 친일파 옥천군수의 사진을 고발한 점이 돋보임

박성국(옥천신문 제11기 독자위원장)
고등학생의 눈으로 본 옥천의 친일 및 독립운동 역사를 접근한 점이 신선함. 특히 1대 군수 사진게시에 대해 직접 취재한 것이 인상적임.

황민호(옥천순환경제공동체 상임대표, 전 옥천신문 편집국장)
주제가 지역밀착적이며 시사적임. 학생사회에 지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 설문조사의 문항도 적절했다. 지역의 역사에 대해 환기를 시켜줬다는 의미를 가진 보도

이안재(옥천신문 대표이사)
우리고장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주제를 선정한 점이 좋았음. 관련 현장을 좀 더 취재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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