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산업 특구, 발전전략을 찾아라⑤>세계 최대의 옻 도시 와지마시를 가다
<옻산업 특구, 발전전략을 찾아라⑤>세계 최대의 옻 도시 와지마시를 가다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9.11.19 22:04
  • 호수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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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산업 특구, 발전전략을 찾아라!
① 옻 특구 옥천, 위기와 희망의 이야기
② 옻 특구의 열쇠 <농업분야>
③ 옻 특구의 열쇠 <생활공예>
④ 옻 특구의 열쇠 <식품분야>
⑤ 세계 최대의 옻 도시를 가다
세계 최대의 옻 도시를 가다

일본의 영문 국가명이 Japan입니다. 그러나 영문국가명의 첫 글자인 J를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 j로 쓰면 이것은 옛날 일본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이 옻칠을 한 그릇, 즉 칠기를 부르던 말이었습니다. 칠기를 의미하는 japan이 국가를 상징하는 이름을 낳은 것입니다. 그릇이 어쩌다 나라의 이름이 된 것일까 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중국의 영문이름 역시 서양인들에게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던 중국의 그릇, 즉 China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닐듯 합니다. 이는 서양인들이 동양을 발견했던 당대에 그릇이 얼마나 중요한 문명의 징표였는지 생각하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나라 이름이 칠기인 나라 일본에서 칠 그릇의 고향으로 불리는 도시가 있습니다. 와지마(輪島)시입니다.

◆와지마는 와지마누리(塗)다
일본인들에게 와지마라는 도시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 와지마누리 데스카? (아! 와지마칠 말입니까?)"하고 되묻는다. 우리들은 칠그릇을 떠올릴 때 자개라고도 부르는 나전칠기를 떠올리지만 일본인들에게 칠그릇은 와지마라는 작은 도시와 함께 떠오른다. 와지마상공회의소 타츠오 사카시타 사무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얼마 전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가 무엇인지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신문사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조사결과 1위를 차지한 것이 바로 와지마누리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와지마누리를 일본의 전통문화로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일본인들에게 와지마누리는 지역을 넘어 일본을 상징하는 문화입니다."

일본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일본을 떠날 때 까지 식사를 할 때 마다 바깥 쪽 검은 색과 안쪽이 붉은 색으로 이뤄진 그릇을 만나게 되는데 그 재질이 무엇이든 간에 일본인들에게 그릇의 원형,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그와 같은 형태를 지금까지도 보편적인 형태와 색으로 지속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일본의 전통 칠그릇이며 일본의 영문국가명 Japan의 기원인 것이다.

▲ 이시가와(石川縣)의 북쪽 항구 도시인 와지마시.와지마시로 들어가는 진입터널 입구에 칠의 마을이라는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와지마 누리는 다르다
누구나 짚신이나 고무신을 우리 전통 신발이라고 본다고 해도 짚신이나 고무신을 특정 지역과 연결시키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만들었고 어디서나 유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릇 역시 마찬가지다. 나라이름이 칠그릇에 기원하는 마당에 칠그릇을 만들지 못하는 지역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그러나 칠그릇 하면 와지마누리를 떠올리는 오늘의 일본인들이 있기 까지 와지마는 수 백 년 전부터 다른 어느 지역도 흉내 내지 못한 독특하고 특별한 칠그릇의 생산과 판매 시스템을 확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가 와지마시에 머무른 사흘 내내 모든 일정을 와지마의 칠 문화 소개에 할애 해 준 시청 칠기담당 공무원 호소가와씨의 설명이다.

"일본의 보편적인 칠기 문화 속에서도 와지마시가 와지마누리로 대표되는 독자성을 지금까지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다른 지역이 흉내 낼 수 없었던 3가지 정도의 특별함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재료의 특별함, 공정의 특별함, 그리고 오더메이드(Order made : 주문자 생산방식)라고 부르는 유통, 판매의 특별함 때문인데요, 이런 3가지 특징은 17세기 후반, 에도시대에 완성되어 지금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유지되면서 와지마누리를 일본의 그릇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 흙, 6가지 공정, 그리고 철저한 오더메이드
호소가와씨가 소개한 3가지 특별함의 비밀은 이렇다. 우선 흙이다. 우리 옥천을 대표하는 칠기공예 업체인 동학공예사(대표 박길호)가 쌀독과 유골함을 제작하는 과정에 숯가루를 적용해 제품의 내구성과 기능성을 극대화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데 와지마누리는 옻을 나무그릇에 칠하는 과정에 곱게 갠 흙을 적용한다. 흙의 고운 입자가 칠과 함께 그릇에 작용하며 나무그릇이 갖는 치명적인 단점인 내구성과 부패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러나 일본 어디나 있는 흙이 아니다. 오직 와지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울창한 산림과 바다가 바로 맞닿아 있는 와지마시의 흙이 품고 있는 풍부한 규조류 성분의 독특함이 갖는 특성이 와지마가 아니면 안되는 첫 번째 이유다. 천시와 지리, 인화를 승리의 기본 요소로 설명하는 손자병법의 관점을 빌자면 지형지리가 잘 적용된 부분이다.

두 번째 특별함은 통합과 단순화를 효율의 척도로 삼는 현대적 시각으로는 좀 심한 것 아닌가 하고 느껴질 만큼 세분화된 분업화 과정이다. 와지마누리는 전체 공정이 100가지를 넘고 이렇게 엄청난 공정은 크게 세가지 공정으로 구분된다. 그 첫째가 나무로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과정(木地), 두 번째가 흙과 칠을 만들어진 나무에 바르는 과정(塗り), 세 번째가 칠이 입혀진 그릇을 부드럽게 다듬어 광택을 내거나 색을 칠하거나 금가루 등을 입히는 과정(加飾)으로 나뉘는데 각 과정들이 완전히 독립된 사람들에 의해서 이뤄진다.

▲ 완성된 와지마누리가 나오기까지는 수백년 전 부터철저하게 분업화 된 작업과정이 적용된다. 사진은 나무를 깍아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와지마누리제작의 첫 단계다.

이것은 4~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음호에 소개할 옻칠 교육기관인 와지마시 옻칠예기술연수소의 교육과정도 나무를 만드는 학과와 칠을 입히는 과, 칠을 입힌 후 장식을 꾸미는 학과가 완전히 별개로 운영되고 있으며 와지마시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640개 옻칠기 회사도 모두 위 3가지 과정 가운데 한 가지 과정만을 담당하는 곳이다. 일단 이렇게 세분화된 와지마누리의 제작과정은 이어지는 생산자 단체인 와지마칠기상공업협동조합 수미 켄세이씨의 인터뷰를 통해 듣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와지마누리를 판매하는 방식이 와지마누리의 마지막 비결이다. 와지마시청 칠기담당 공무원 호소가와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지금은 조합이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수백년 전부터 와지마누리는 지금의 방문판매형식을 철저히 고수해왔습니다. 와지마에서 나온 칠기는 철저히 생산자들이 봇짐을 지고 일본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소비자들을 만나 판매하는 형식이죠. 소비자들이 와지마누리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산자와 사용자가 직접 만나 차분히 대화하고 사용자들의 욕구를 제작과정에 완벽하게 반영해 온 오더메이드 방식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생산자, 판매자, 소비자의 신뢰가 오늘의 와지마누리를 만들게 됩니다. 소비자들의 엄격한 요구가 빚어내는 그릇, 그래서 와지마누리는 일본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 불립니다."

▲ 와지마칠기상공업협동조합이 운영 중인 칠 정제소의 모습. 정제를 담당하는 직원이 칠 정제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와지마에서 사용하는 칠의 90% 가까이는 중국에서 수입된 생칠이다.

<인터뷰> 와지마칠기상공업협동조합 수미 켄세이 사무국장

현재 와지마시에 등록된 칠기사업 관련 업체는 각 분야별로 전문화된 형태로 모두 640개사. 물론 회사의 형태지만 실질은 종사자들 2~3명 수준의 공방으로 전체 종사자 규모는 1천749명이다. 이 가운데 80%, 5백여 회사가 조합 소속으로 등록돼 활동하고 있는 유통 및 판매 전문회사가 바로 와지마칠기상공업협동조합이다. 이 조합 수미 켄세이 사무국장은 수백년 동안 유지되고 있는 와지마누리의 분업제도는 칠기제작업자들이 찾아낸 '가장 완벽한 칠기를 만드는 시스템'이라고 소개한다.

◆밥그릇 하나 만드는데 최소한 3개 회사가 관여한다.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와지마가 한 사람의 장인이 나무를 깎고 옻칠을 하고 장식해서 칠기를 파는 역사를 가졌다면 와지마누리라는 말조차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수백년 동안 와지마누리가 일본 어느 곳에서 만드는 칠기와도 다른 최고의 브랜드라는 명성을 얻었던 근본에는 나무로 그릇을 깎는 최고의 기술자, 와지마의 흙을 정제된 칠과 결합해 그릇에 바르는 최고의 기술자, 그리고 거기에 가장 아름다운 장식을 더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자들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공생해온 분업화의 역사가 있었다. 그것이 와지마누리의 품질을 유지하는데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경험의 산물이다. 지금도 이는 변함이 없다.

◆제품 품질을 유지하는데 생산자가 다수라는 것이 꼭 유리할 것이라고만 보이지는 않는다.
=각 과정을 담당하는 회사들이 소비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완성된 와지마누리가 나오는데 까지는 분야별로 최고의 업체로 평가받는 누시아(塗師屋)의 역할이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현재 와지마에는 약 200개사의 누시아가 있고 이들이 다수의 생산자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의견충돌이나 오해들을 조절한다.

◆최고품질을 확보해도 결국 가격의 문제는 남는다. 웬만큼 비싸지 않고서야 그 많은 각 분야의 와지마누리 생산자가 먹고살 수 없을 것 같다.

=가장 많이 판매되는 밥그릇 한 점 가격이 1만엔(1만엔은 최근 환율로 약 12만원 정도)이다. 물론 비싸다. 80년대 일본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고급요정이나 식당들이 앞 다투어 와지마누리를 구비하던 시절과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일본인들이 옻칠 제품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큰 도시 100엔샵에는 말 그대로 100엔(1천200원 정도)짜리 중국산 옻칠 그릇이나 관련제품이 넘친다. 오랜 불황으로 국내 경기 침체로 와지마누리의 매출이 크게 줄고 말도 안되는 싼 가격의 중국산 칠기도 넘치고 있지만 전통을 포기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위기가 와지마누리에게는 더 이상 국내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을 향해 뻗어나가야 할 신호라고 생각하고 있다. 와지마누리와 관련된 지역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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