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농업의 생산과 유통은 `둘'이 아니다
[기획] 농업의 생산과 유통은 `둘'이 아니다
생명의 시대, 우리는 친환경으로 간다 (4) … 대한민국 유기농 1번지, 문당리의 교훈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5.10.21 00:00
  • 호수 7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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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싣는 순서

    1회:친환경만이 대안이다
    2회:옥천의 친환경농업, 그 실태와 문제점
    3회:친환경농엽, 자치단체의 경쟁력
▶4회:대한민국 유기농 1번지, 문당리의 교훈
    5회:지역순환형 농업운동, 아산 생산자공동체
    6회:유기농 혁명, 나라를 살리다(쿠바현지르포-1)
    7회:행복한 농사, 건강한 사람들(쿠바현지르포-2)
    8회:‘유기농 옥천, 어떻게 가꿀 것인가?’

44개 작목반, 유기재배 및 전환기 유기재배 902농가, 유기재배면적 260만평, 2004년 기준 유기농 쌀 생산량 9만여 가마, 대한민국 유기재배 쌀의 90%에 육박하는 물량을 생산하는 곳, 바로 홍성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쌀 유기농의 1번지 홍성군, 그 중에서도 홍성군 유기농업의 모태이며 동력의 핵심인 홍동면 문당리를 찾았다.    문당리를 찾은 9월의 마지막 날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비까지 뿌리고 있었다.

‘홍성환경농업마을’이라는 입간판을 지나자 홍성이 자랑하는 오리농법이 적용된 황금들녘이 수확을 기다리며 광활하게 펼쳐져 있지만 가을비를 맞고 있는 들녘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2005년의 가을, 수확을 앞둔 대한민국 유기농 1번지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양대 생산조직, 홍동농협·홍성풀무생협
우선 대한민국 친환경 1번지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을 살펴보기 앞서 홍성의 생산자조직을 살펴보자. 홍동농협(조합장 이해헌)은 홍동면과 인근 보은 청라, 청양 화성의 유기재배 쌀만을 수매해온 농협으로 홍성풀무생협(이사장 박종권)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뤄  홍성의 유기농업을 지키고 있다.

홍동농협의 지난해 수매물량은 30kg 및 40kg 규격 4만8천417포대에 이르며 홍성풀무생협의 지난해 수매물량 5만여 포대(40kg)와 함께 전국 유기재배 쌀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홍동농협이 홍동면과 인근 군의 유기재배쌀의 수매에 집중하는데 비해 풀무생협은 홍성군 전체의 유기농가의 생산물을 수매한다.

풀무생협의 경우 유기재배쌀 외에도 채소를 포함한 23개 품목작목반과 유기사료를 공급하는 5개의 유기한우 작목반, 항생제를 전혀 투여하지 않는 1개의 양돈작목반 등 광범위한 영역의 생산자조직을 지원하고 있다.

▲ 문당리 전역에 널리 펼쳐진 유기쌀 재배단지. 오리막사가 이곳이 오리농법의 원조임을 보여준다.

◆홍동농협, ‘유기농 쌀이 남다니…’
2005년 가을 홍동농협은 적지 않은 충격에 직면해야 했다. 93년부터 친환경 쌀의 수매를 시작한 홍동농협은 만 12년 만에 처음으로 올 가을 ‘친환경 쌀의 대량재고’ 사태를 겪고 있다. 홍동농협의 자체자료에 따르면 2005년 9월20일 현재 전환기 인증이상 유기재배 쌀의 재고는 총 수매물량의 40%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앞으로 연말까지 판매가 확실한 물량을 제외했을 경우 재고비율은 약 17%에 이른다. 재고사태도 처음이지만 그 양 또한 엄청나 그 충격을 짐작케 한다. 홍동농협 장현복 전무의 말이다.

“없어서 못 팔던 것이 유기농쌀입니다. 그러나 현재 상태는 약 30억원 정도의 재고쌀이 창고에 쌓여있는 상황이다 보니 농협입장에서도 난감한 것이 사실입니다.”

장 전무는 유례없는 유기쌀 재고사태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꼽았다.

“일단 국내 소비자 경기의 극심한 부진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거셌던 웰빙 열풍이 경기침체와 함께 순식간에 식었어요. 쌀 소비는 격감하는데다 중국찐쌀도 대중소비부분에서 큰 악재였고 무엇보다 안전농산물의 수요가 저가 농산물로 방향을 튼 것이 가장 컸다고 봅니다.”

서울양재유통 등 대규모 유통망에 판로를 의존하는 농협과 달리 잘 조직된 소비자 층을 확보한 풀무생협의 경우는 재고문제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그러나 유기농 생산자의 30%이상이 농협과 생협에서 중복활동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풀무생협에도 이 문제는 마찬가지로 큰 숙제다.

풀무생협 정형영 전무는 유기쌀 재고문제는 결국 소비자, 생산자, 자치단체, 국가가 함께 풀어야할 숙제라는 생각이다.

“일단 저희 입장에서는 조직화된 소비자그룹을 더욱 확대해 안정된 판로를 확대하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입니다. 누가 먹는지 모르고 판매되는 식의 기존의 유통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민과 정부, 자치단체가 안전농산물의 가치와 의미를 진정으로 인식하는 일입니다. 모든 부분이 유기농의 가치를 이해하고 강도 높은 결합을 이룰 수 있다면 이런 문제는 생길 수 없겠죠.”

홍동농협 장 전무 역시 유기농 생산자가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홍성이 아무리 유기쌀의 메카라고 해도 일개 군일뿐입니다. 우리가 전 국민을 상대로 유기농업의 가치를 알릴 수는 없어요. 결국 국가와 자치단체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조합과 생산자에게 돌아오는 겁니다.”

▲ 홍성군 농업기술센터 친환경농업인 대학 강의가 문당리 환경농업마을 교육장에서 열리고 있다.

◆채현병 군수, “지역학교 급식 유기쌀로”
홍성군(군수 채현병)도 사상 유례가 없는 유기쌀 재고에 맞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자치단체의 대응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내년부터 군내 모든 초·중·고등학교 급식 쌀을 홍성지역 유기농쌀로 공급키로 한 대목이다. 홍성군은 이를 위해 5억원 이상의 군비를 포함, 8억의 예산을 마련했다. 채현병 군수의 말을 들어보자.

“부식까지는 어렵지만 일단 학교급식은 우리지역의 유기농쌀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8억의 예산을 마련했는데 지역교육청의 예산에 더해지면 초중고 급식쌀은 유기농쌀로 완전히 전환되리라 봅니다.”

채 군수는 학교급식의 유기농확대 정책 외에도 홍성의 유기재배 쌀이 판매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15억 예산규모의 대도시 판매장 개설사업과 함께 홍성관내 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지역 유기 쌀 팔아주기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한편 내년 공급될 유기농 쌀의 저렴한 공급을 위한 생산자조직과의 가격 논의 등 새로운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고 있다.

“1%를 다 못 먹는 것이 오늘의 현”
[인터뷰] 홍성환경농업마을 대표 주형로

▲ 주형로 홍성환경농업마을 대표
“우리나라에서 한 해 소비되는 쌀 가운데 유기농쌀의 비중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1% 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사람들 중 1%만이 안전한 쌀을 드시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올해는 그것도 다 못 먹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에요.”

유기쌀이 많이 남았다는 기자의 질문에 주형로(47) 대표는 창고에 남아있는 친환경 쌀의 의미에 대해 지적한다. 소아과 병동은 아토피 환자들로 넘치고, 중국산 수입농수산물에서 온갖 유해물질들이 검출되는 현실에서도 그 유일한 대안인 안전한 먹거리, 유기농산물이 남는 것은 불행이라는 것.

“홍성의 유기농쌀이 남았다는 것은 여러 가지 교훈을 시사합니다. 유기쌀은 상품이전에 가치이며 그 가치가 전달되는 방법 또한 달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쿠바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쿠바는 유기농산물을 가장먼저 학교로 보냅니다. 부자가 먼저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문제는 여기서부터 풀어야 합니다.”

그는 올해 나타나는 유기쌀의 재고 문제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1%의 안전한 농산물도 소비하지 못하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반성을 전재로 했다.

“홍성군에서도 학교급식문제와 관련해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급식의 문제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흙과 생명의 가치를 배우고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 전체의 가치로 확산돼야 합니다.”

``단체장, 시대정신 반영된 농업관 필요''
[인터뷰] 홍성풀무생협 이사 박종권

▲ 박종권 홍성풀무생협 이사장
박종권(43) 이사장을 홍성이 아닌 옥천에서 만났다. 그는 19일 ‘우리 쌀을 지키고 우리 밀을 살리기 위한 소비자 1만인대회’를 이끌며 우리 고장을 지나갔다.

“이제 농업 문제는 몇몇 농민들만의 목소리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의 구실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요. 신뢰받는 생산자가 있기까지 지방자치단체의 지지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는 지역의 농업문제는 지역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치단체 스스로의 협약이 필요하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 출발을 그는 시대에 맞는 농업관을 가진 단체장의 선출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단체장의 의지예요. 시대에 맞는 농업관을 가진 단체장이 있다면 그 가치관에 따라 지역의 농업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고 이를 통해 지역 농정의 대안은 물론 중앙정부에 요구할 부분도 생기는 것이니까요.”

그는 환경농업에 대한 자치단체의 각성의 필요성과 함께 현행 친환경인증제도에 대한 우려도 분명히 했다. 안전한 먹거리로 분류되기엔 무리가 있는 친환경농산물(무농약, 저농약)의 무분별한 양산이 결국 올해 유기농산물의 재고사태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무농약, 저농약 등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인증제도는 소비자입장에서 보면 그들을 우롱하는 정책일 수밖에 없어요. 유기농산물이 무엇이고 친환경농산물과 무엇이 다른지를 소비자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농민스스로도 유기농업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정부가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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