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우리에겐 무지개 정치가 필요하다(2)>더민주, 거듭나는 진보정당인가 무기력한 만년 야당인가
<기획-우리에겐 무지개 정치가 필요하다(2)>더민주, 거듭나는 진보정당인가 무기력한 만년 야당인가
진보 내세우지만 신자유주의 정책 수용 '모순'
강력한 투쟁선언 뒤 슬그머니 꼬리내리기 반복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6.03.11 14:13
  • 호수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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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는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경제 위기를 극복했으나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사회,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특권, 기득권 강화, 중산층의 붕괴와 서민경제의 파탄, 실업의 증대와 비정규직의 확대, 청년실업의 심화, 취약한 복지제도와 일자리 없는 성장 속에 국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불안해졌다... (중략) ... 더민주는 국민의 삶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하여 실천하는 데서 출발한다. 국민의 요구에 적시에 응답하고 이해관계자들이 정책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정책생산능력이 제고된 민생정당을 지향한다.」

지난해 12월28일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강령·정책 전문 내용 중 일부다. 짧게 요약된 강령을 보면 현 시국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당의 역할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대로만 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그들 스스로 말하는 민생정당·정책정당·진보정당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더민주의 모습은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오히려 새누리당 2중대, 선거를 위한 자영업 정당,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무능한 야당 등의 표현이 더 진실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1955년 △민주당를 시작으로 △신한당 △신민당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중도개혁통합신당 △중도통합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까지 20번 가까이 이름을 바꿔 온 더민주는 어떤 정당일까?

 

▲ 지난 2013년 8월27일 김한길 대표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설치한 천막(국민운동본부)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민주당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강력한 원외투쟁을 선언하며 천막을 쳤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흐지부지 됐다. (사진출처 : 더민주)


■ 새누리 출신도 덥썩 받아안는 진보정당 

'더민주'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이 어떤 정당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새누리당이 강령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와 함께 보수적 가치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스스로 보수정당임을 분명하게 내세우는데 반해 더민주는 이념적 지향이 무엇인지가 뚜렷하지 않다. 새누리당과 비교해 더민주를 진보라고 표현하지만 정작 당 정체성이 녹아있는 강령에서 '진보'라는 단어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더민주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규정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3일 '버니 샌더스, 더민주 혁신을 말하다' 토론회에서 '말로만 혁신, 말로만 진보라고 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더민주가 진짜 진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4월에는 당시 문재인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며 '유능한 진보가 되는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의 목표'라고 분명하게 밝히기도 했다. 당을 이끌어가는 전현직 대표들의 발언을 보면 더민주는 분명 진보를 지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더민주가 보여주는 행보는 일반적인 진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사람을 쓰는데 새누리당과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인물로 손학규와 김종인이 있다. 손학규는 제14대(민자당), 제15대(신한국당), 제16대(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새누리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새누리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에는 통합민주당과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옮겨 당선과 낙선을 번갈아 했다. 한때는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 민주당 대표를 맡기도 했고 '저녁이 있는 삶'이란 슬로건을 내걸며 대선 후보로 뛰기도 했다. 손학규는 보수 인사인가 진보 인사인가.

김종인은 제11대(민정당), 제12대(민정당), 제14대(민자당)까지는 보수 정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고 제17대(새천년민주당)는 민주당으로 넘어왔다. 2011년과 2012년에는 다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6년 1월부터는 다시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회 위원장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다. 김종인은 보수 인사인가 진보 인사인가.

새누리당이 보수 정당이고 더민주가 진보 정당이라면 두 정당 사이에 인물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쪽이나 저쪽이나 쉽게 오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당 대표도 맡고 대선 후보도 한다면 애당초 두 정당 사이에 보수/진보의 구분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더민주의 과거와 현재의 상징적 인물에서만 이런 혼란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더민주가 영입한 인물 중에도 진보 지향과 맞지 않는 논란의 인물들이 있다. 더민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주도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과 제주 강정마을에 공권력 투입을 지휘한 윤종기 전 인천경찰청장을 영입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더민주 강령에 나와 있는 '서민경제 파탄, 실업 증대, 비정규직 확대, 청년실업 심화, 취약한 복지'와 연결된다. 국민의 삶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정당이 폭력 진압을 진두지휘한 인물을 영입하는 것은 자가 당착이다.

옥천읍에 사는 한 40대 남성(자영업자)은 "상대적인 측면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만 해도 민주당이 새누리에 비해 진보를 대변하는 측면이 강했지만 지금은 오락가락 하면서 당의 색깔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선거에 지더라도 항상 2등은 하니까 그 안에서 안주하면서 야당으로서 선명성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 김종인 비대위원회 대표가 지난 2월18일 김현종 전 한미 FTA 통상교섭본부장(왼쪽) 영입 기자회견에서 입당원서를 받고 있다. (사진출처 : 더민주)
▲ 김상곤 인재영입위원장이 4일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윤종기 전 인천경찰청장(오른쪽) 영입 기자회견에서 입당원서를 받고 있다. (사진출처 : 더민주)

 


■ 여당에 무기력하고 대안에 무력한 정당 

더민주에 대한 비판은 사실 보수/진보의 구분 보다는 제1야당으로서 제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더 집중된다. 야당은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대항 정당'이자 정부·여당의 실정에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대안 정당'이어야 한다. 더민주를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더민주(민주당)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의 진상 규명을 외치며 강력한 원외 투쟁을 선언했다. 하지만 두달도 안돼 국정감사 등을 이유로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2014년에는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다시 2015년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해 원외투쟁의 깃발을 올렸지만 번번이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하고 끝났다. 이처럼 반복되는 더민주의 무기력한 대응은 유권자들을 실망시켰다. 최근에는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100시간이 넘는 필리버스터를 하며 '야성이 살아났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한순간 갑작스레 중단했다. 필리버스터로 그 어느 때보다 야당에 대한 지지가 높았지만 국회의원 선거라는 당장의 이해득실 앞에서 더민주는 다시한번 꼬리를 내렸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2일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 확인된 많은 국민의 열망이 저희의 잘못으로, 저희의 갑작스런 중단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다. 사과드리고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함께 뛰겠다. 새로 뛰겠다. 같이 뛰어나가겠다. 국민들과 함께 국민무시, 국정원의 테러빙자법을 반드시 원상회복해 국민에게 선사하겠다. 국민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무기력한 말의 정치가 반복되는 사이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에 이어 사이버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을 요구하며 우리사회 민주주의를 더욱 후퇴시키고 있다.

더민주가 정책 정당, 대안 정당으로서 힘없는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적어도 농업·농촌·농민으로 대표되는 우리고장 입장에서 더민주는 진보적이지 않다.

우리 농업을 사지로 몰아넣는 큰 원흉 중 하나는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다. 더민주(민주당)는 2011년 새누리당이 밀어붙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며 전원 표결에 불참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이같은 당론을 계속 유지했다면 더민주는 적어도 농업과 농민을 지키려는 정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5년 11월 한·중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에 대해 더민주(새정치민주연합)는 찬성 49명, 반대 29명으로 찬성으로 돌아섰다. 물론, 기권 34명과 불참 10명을 포함하면 당론으로 자유무역협정에 찬성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 때에 비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같은달 진행된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에서 더민주는 찬성 86명, 반대 13명을 기록했고 한·뉴질랜드 자유무역협정에서 더민주는 찬성 84명, 반대 13명을 보였다. 이런 기류에서 본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주도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인재'라고 영입한 더민주의 선택이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다.

국정이라는 더 큰 틀에서 더민주의 성과는 어떨까?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경우 공약 실천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면 야당의 경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매년 집계해 발표하는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정당의 활동개황은 매년 각 정당이 스스로 활동한 내용과 정책 추진 여부 등을 점검해 제출하는 자료다. 정당 스스로 작성하는 만큼 '잘 못한 것'보다는 '잘한 것' 위주로 기술하는 성격이 짙다. 더민주가 제출한 2014년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에 따르면 100개가 넘는 분야별 정책 중 '잘 못한 것'은 거의 없다. 그중에서 우리고장과 관계가 깊은 국정 현안들 중심으로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수도권과 지방간 문화 격차 해소(달성도 95%) △한중 FTA, TPP 등 통상협상 손익분석 및 농수산 피해대책 마련(달성도 95%) △WTO, FTA 등 개방화에 따른 경제적 약자 지원 대책 마련(달성도 90%) △쌀 관세화 대응(달성도 98%) △농어민 복지 확대(달성도 98%) △식량자급률 제고(달성도 90%) △국가 균형발전의 차질없는 추진(달성도 95%) △소상공인 자생력 지원 확대 및 전통시장 활성화(달성도 95%) 등. 어떤가. 더민주가 스스로 잘한다고 평가한 것들인데, 어느 정도 공감이 될까.

더민주의 위치는 모호하면서 애매하다. 진보라고 말하기에는 현실 정치에서 진보적인 정책이나 법안 마련에 소극적이다. 그렇다고 새누리와 다를바 없다고 말하기에는 최근 몇 년 사이 무상급식 이슈 등에서 '왼쪽'으로 무게중심을 많이 옮겨간 것도 사실이다. 더민주가 가장 애매한 부분은 제1야당으로서 무기력한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필요악의 정치적 지분을 꽉 움켜쥐고 있다는 점이다. 더민주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막판 투표장에서 '사표'를 방지하고 '보수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제1야당에 투표해야 할까 말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옥천읍에 사는 한 40대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불어민주당이 국민들이 안심하고 믿어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부분은 답답한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으려면 어쩔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무슨 일만 생기면 새누리당은 조직적으로 똘똘 뭉치는데 반해 자칭 '진보'라고 하는 정당들은 하나로 힘을 합치지 못한다. 그 안에서 하나의 힘을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새누리당의 장기집권으로) 영원히 힘들어 진다."고 말했다.

더민주는 선거에 져도 원내 정당 자리는 거저 지킬 수 있는 타성에 젖은 말뿐인 진보 정당일까, 아니면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고 새로운 국정운영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변화의 교두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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