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식의 시로 읽는 세상살이>조헌 선생께 바치는 졸시
<이명식의 시로 읽는 세상살이>조헌 선생께 바치는 졸시
  • 이명식(옥천군 공무원) one@okinews.com
  • 승인 2015.10.08 15:31
  • 호수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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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시조집인 『청구영언』과 『해동가요』에 실려 있는 중봉 조헌선생의 시조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중봉 조헌선생은 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일어나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전투에서 칠백의사와 함께 의절한 의병장이다.

그동안 세월의 흐름에 따른 우리글의 변화로 옛 표기가 현재에 잘 맞지는 않겠지만 만연한 가을 10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고 일컫는 한글을 기리는 한글날이 있고, 임진왜란 때 의병장 중봉 조헌선생의 뜻을 되새기는 중봉충렬제가 우리고장에서 개최되니 「지당에 비 뿌리고」의 시조 한 편을 음미하는 것은 그만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지당에 비 뿌리고 양류에 내 끼인 제/ 사공은 어디가고 빈 배만 매었는고/ 석양에 짝 잃은 갈매기만 오락가락 하더라.

선생의 시조를 현대표기로 풀어보았다. 선생의 시조는 안남면 도농리 표충사 앞뜰에 시비로 세워져 있다.

시조의 가장 기본적인 3장6구의 평시조로 시간적 감정이입과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질 듯 서경적인 갈래이며, 내용에 있어서도 임과의 이별에 따른 봄의 정취 속에서의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시는 해안가나 강의 하구를 배경으로 한 듯하다. '빈 배' 또는 '짝 잃은 갈매기'를 통하여 화자는 극도의 외로움을 표현하였고 그런 적막함 속에서의 쓸쓸한 여운이 한껏 감도는 맛이다.

선생은 본시 문인이었으나 곧은 절개와 의연한 모습의 의병장으로 더 알려져 있다. 위 시조 「지당에 비 뿌리고」는 선생의 수많은 작품 중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시조이다. 지부상소를 올린 지조 있는 선비로도 잘 알려진 선생이지만 위 작품에는 그런 강인함이 묻어나 있지 않다. 우중충한 비와 안개의 속성도 그렇거니와 주인 없이 '매어있는 빈 배' 그리고 '석양에 짝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갈매기'에서 우리는 화자의 또 다른 애잔한 모습을 엿볼 수가 있다.

선생을 추모하고 그 고귀한 뜻을 기리는 중봉충렬제가 올해로 제40회를 맞는다. 40년이란 세월동안 우리 옥천군민은 선생의 그 올곧은 뜻과 나라 위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왔으니 이 또한 충절의 고장답다. 오는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선생의 묘소가 있는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표충사와 옥천읍 관성회관 일원에서 다양하게 펼쳐지는 중봉충렬제를 기다리며 졸시 한 편을 선생에게 올린다.

올곧은 댓잎바람 옥천골에 피어나다
홀연히 일어나서 나라 위한 일편단심
조국의 백척간두에
이 한 목숨 던지다.

오죽하면 나섰으랴 지부상소 곧은 절개
부귀영화 다 버리고 붓을 꺾은 구국신념
표충사 뒤란에 이는
솔바람을 맞는다.

으름장 놓는 가을 풀벌레도 부풀어져
한가락 읊고 나면 속이 다 후련한데
선생의 힘찬 목소리
나를 불러 세운다.

- 졸시「표충사에서」

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니 세상이 더없이 풍요롭다. 하지만 누런 들녘을 누비는 농부의 마음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 최근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하면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업부분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하고 그러한 것들이 현실로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농업의 대표격인 쌀의 경우 햅쌀을 생산하는 수확기에 들었지만 최근 가공용쌀 수입 외에 밥쌀용까지 문을 활짝 열어야하니 우리네 농심은 이만저만의 걱정이 아니다.

어쩌랴, 무작정 수입 반대만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답을 내팽개치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임진왜란 때 붓을 꺾고 구국에 앞장섰던 선생의 지혜가 오늘 우리에게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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