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방문간호 노동자 부당해고 철회 호소문
<기고글>방문간호 노동자 부당해고 철회 호소문
주민과 쌓은 신뢰관계 '무용지물'
충북 타 시군 무기계약직 전환 실시
  • 장재원 기자 one@okinews.com
  • 승인 2015.01.30 12:36
  • 호수 12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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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옥천군민 여러분께

저는 2010년 11월부터 2014년 12월31일까지 옥천군보건소에서 근무하다 해고된 방문간호사 중 한 사람입니다. 너무 억울한 마음에 이렇게 호소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방문간호사는 첫째로 주민들과 꾸준한 시간을 들여 관계형성을 맺고 믿음과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관계는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돼서 경력이 쌓일수록 지역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광범위해지고 주민들과의 애정과 상호 신뢰도가 높아집니다. 처음 보건소에 입사하여 방문간호사로 근무하게 되었을 때 주민들과 관계형성을 시작할 때의 어려움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일 년의 시간을 들여 공들여 찾아가도 마음의 빗장을 걸어버린 희귀난치성 환자분, 말할 사람이 그리워 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분, 자식에게도 말 못한 일이라며 병을 숨기시는 분, 병원에서 받아 온 약물 복용법 등을 몰라 마구잡이로 드시는 분, 기본적인 질병에 대한 지식조차 없는 분들. 셀 수 없는 방문 속에서도 아직도 소외받고 있는 소외계층들이 머릿속에 생생합니다.

본인의 당뇨합병증으로 거동이 힘들어 당장 겨울에 쓸 땔감 걱정을 하시던 할머니, 대장암 환자여서 성인용 기저귀를 가져다 드리려고 방문을 열었을 때 사방팔방 천지에 곰팡이와 천식을 앓고 있던 손녀의 숨 넘어 갈듯 한 기침소리. '이런 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간호서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와서도 걱정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던 날들이 며칠이었는지 모릅니다.

국민소득이 2만8천불이 넘는 시대 30년도 넘는 쟁반을 쓰고, 화장실은 재래식으로 여름 장마에는 물이 넘치는 집, 자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데 단지 서류상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라에서 경제적인 지원도 못 받고, 버리고 간 손자만 남아 학비 걱정에 매일 드셔야 할 약을 3일에 한 번씩 드시던 할머니.

이런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은 직접 집에 가보지 않고서는 진정 이 분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탁상공론식 행정으로 만들어진 서류에 존재할 수 없는 무수한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 이것은 적지 않은 시간을 주민들과 함께 보내며 알게 된 사실이며 이런 소외된 주민들을 위해 진정 필요한 사람이 저희라는 사명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4년 이상의 시간을 작게는 소규모 교회부터 크게는 한국실명재단까지 연계해서 만성질환 관리 이외에도 이사부터 개안수술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서 성실히 지역주민들을 보듬으며 직장 이상의 애착을 갖고 견뎌온 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법에서 말하는 2년이 지나 경력도 쌓이고 처음에 마음 닫고 있던 주민들과 정도 붙고 살가워져서 퇴직하는 날까지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좀 더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한없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러나 옥천군은 우리를 고용불안에 항시 시달리게 했고 기간만료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우리를 해고했습니다.

아직도 해고당한다는 말에 눈물짓던 어르신들의 얼굴과 제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시던 그 따뜻했던 손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서 잠도 오지 않고 마음 속 생채기가 너무 커서 결국에는 마음에 병이 든 상태입니다. 옥천군을 포함한 남부3군을 제외하고 현재 충북의 다른 시군은 예산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같은 노동자로 생각해서 상호 절충하여 무기계약직 전환을 했습니다. 왜 옥천군이 이렇게 이기적인 결단을 내렸는지 어이가 없는 현실입니다.

옥천주민 여러분, 그리고 오늘 오신 노조원 이하 각계각층의 사회지도 인사분들 도와주십시오. 여러분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희에게 어르신들을 방문해서 간호할 기회를 주세요.

편집자주/이 호소문은 28일 충북 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옥천군보건소 기간제 방문간호노동자 집단해고 철회촉구 기자회견에서 방문간호사 이소영씨가 발언하며 공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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