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62] 이원면 건진2리
신마을탐방[62] 이원면 건진2리
  • 류영우 기자 ywryu@okinews.com
  • 승인 2002.05.15 00:00
  • 호수 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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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만한 금덩이가 묻혀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고소한 개암이 열리는 나무가 온 산에 무성하게 심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 마을이름 유래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개금벌 건진2리. 68가구 178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며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심을 가지고 화합하며 살아가는 마을이다.

청성과 안남을 잇는 유일한 육로 '질마재'  
며칠 전 내린 비로 건진천의 물이 잔뜩 불어 있다. 장찬리를 연결하는 2차선 도로 주변 산과 들도 싱그러운 푸르름을 쏟아내며 여름이 다가오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마을 곳곳에 포도밭과 복숭아밭이 빼곡이 들어서 있고, 새로 지어지고 있는 집들은 새로운 주거문화 공간으로 변화하는 건진2리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삶의 터전 `무봉산'
"영동 학산에 날아가는 봉황의 모습을 한 비봉산이 있다면 우리지역에는 봉황이 춤을 추는 모습을 한 무봉산이 있지" 마을에서 만난 이영복(73)씨가 가장 먼저 무봉산에 대한 얘기를 꺼내놓는다.

`건천'이라 불릴 정도로 땅이 메말랐던 건진리 주민들에게 무봉산은 땔감을 구하고, 산나물을 채취하는 등 삶의 터전 그 자체였다. 또 무봉산 아래 철길은 `못 갈기'를 즐기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터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건진2리 주민들이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묵'에 대한 맛의 비밀이 바로 무봉산 아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묵' 맛의 비결 약물내기
이곳 이원면 건진2리는 경상도와 한양을 잇는 유일한 육로 구실을 해왔다. 먼 길에 지쳐 개금벌에서 쉬어 가던 길손들이 이곳에서 만들어진 청포묵과 메밀묵을 먹고 그 맛을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는 얘기는 주민들 사이에 유명한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제는 명맥이 끊긴 채 얘기만 전해지고 있지만 아직도 `옥천 개금벌에서 왔다'고 하면 묵 얘기부터 꺼내" 이런 묵 맛의 비결은 바로 무봉산 아래 `약물내기'에서 나오는 약수에서 나온다고 이영복씨는 설명한다. "물이 맑고 깨끗하기도 했지만 물맛도 좋았어. 물맛이 좋은 만큼 묵 맛도 인정을 받았지. 또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으로도 유명해. 약물내기 아래 천수답은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약물내기에서 나오는 물로만 한 해 농사를 졌으니까"
 
'약물내기'에 대한 기억은 올해 55세가 된 정성용 이장도 가지고 있었다.  "물이 좋다는 얘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어려서 이곳에 물 맞으려는(목욕) 사람들이 몰려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하얗게 줄선 모습이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96세의 최오분 할머니를 비롯해 육석봉, 이회식씨 등 90을 넘긴 주민들이 세 명이나 된다는 것도 약물내기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마을회관' 3천800만원 찬조금 모여
"우리 마을 한 번 와봐요. 마을회관이 아마 군내에서도 제일 잘 져놨어요" 웅장한 모습의 마을자랑비와 깨끗하게 정리된 정원, 아름다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회관 건물의 모습에 할아버지방과 할머니방, 주방은 물론 노래방 시설이 설치된 주민쉼터에 흡연실까지 갖춰진 회관 내부. 여기에 찜질방까지.

건진2리 마을 중간에 위치한 마을회관에 대한 주민들의 사랑은 남다르다. 하지만 주민들은 시설보다 마을회관을 위한 주민들의 노력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2001년 1월 준공된 마을회관을 위해 주민들이 내 놓은 찬조금은 무려 3천800만원에 이른다.
 
"마을의 가장 큰 자랑이 바로 주민 화합입니다.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심이 다른 어느 마을보다 뛰어나죠. 이런 주민들의 관심이 훌륭한 마을회관을 짓게 된 원동력이 되었어요"
 
이웃을 생각하는 주민들의 마음도 회관 곳곳에 숨어있다. 2층 찜질방 문에는 `보호목욕, 잠깐 기다리세요'란 표지판이 걸려있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위해 목욕을 도와주는 작은 배려의 마음이 읽힌다. 혹시나 전화비가 모자라지 않을까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모아져 회관 내 공중전화 동전함에는 항상 동전이 넘쳐난다.
 
원터거리 서대성씨에 대한 기억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은 10년 전, 이 마을에 살았던 주민의 일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금은 단 한 가구도 살고 있지 않지만 이원면 건진2리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마을인 원터거리에는 서대성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경상도와 한양을 연결하는 고개였던 솔티고개는 10년 전만 해도 이곳을 넘어 옥천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던 시기였다. 하지만 어두운 고개를 혼자 넘어가기에는 위험이 따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원터거리에 사는 서대성이란 사람을 찾게 됐다.
 
밤눈이 밝고 무서움도 타지 않는 서대성씨는 이곳을 넘는 사람들에게 길 안내는 물론 장찬리 주민들을 마을까지 데려다 주고 혼자 돌아오는 구실을 해왔다. 10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원터거리를 마지막까지 지켰던 서대성이란 사람의 선행은 아직도 주민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고소한 개암 열리는 마을
건천리와 진평리가 합쳐지며 건진리로 불리게 되었지만 건진2리의 옛 지명은 진평리다. 진평은 개금벌을 한자화 한 지명으로 `개만한 금덩어리가 묻혀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와 `고소한 개암이 열리는 나무가 온 산에 무성하게 심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68가구 178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건진2리는 원터거리, 웃말, 아랫말, 세집매 등 네개의 자연마을로 나뉘어진다. 원터거리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주민이 없는 상태이고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나뉘는 웃말과 아랫말에는 각각 21가구, 22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옛날 세집만이 거주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세집매는 현재 이원중학교를 비롯해 2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건진2리의 주 소득원은 포도와 복숭아다. 60농가가 재배한 지난해 포도수입은 4억원에 달하고 3가구가 올린 복숭아 수입도 1억원에 이르고 있다. 메마른 땅에서 새로운 소득원을 찾아가는 주민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장가 좀 보내주세요"
마을회관, 장찬리를 연결하는 도로 등 마을 발전을 위한 많은 사업이 펼쳐져 시설과 관련된 주민들의 숙원은 대부분 해결됐다. 점점 가구수가 줄어들고 있는 다른 농촌마을과는 달리 올해 2가구가 새로 집을 짓고 있으며 3가구가 집터를 마련하고 마을에 들어올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을에 아기 울음소리가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큰 걱정거리다.

또 하나, 아직 장가를 못간 5명의 마을 청년이 정 이장의 마음에 걸린다. "35살부터 46살까지 5명이 아직 장가를 못 가고 있어요. 농촌총각 장가가기 어렵다고 하지만 어떻게 하든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려고 주민 모두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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