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옥천현대사 - 일왕 충성 새긴 돌 무더기 발견
발굴 옥천현대사 - 일왕 충성 새긴 돌 무더기 발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4.02.26 00:00
  • 호수 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죽향초교 통일탑 밑에서 「충성」, 「충의」, 「황국신민」 등을 적은 자갈 기초석이 드러나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이 감돌았다. 군내에서 가장 유서깊은 학교이자 독립운동가, 정지용 시인, 육영수 여사 등의 인물을 배출해낸 옥천교육의 산실, 죽향초교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본보 93년 9월4일 처음 보도)가 고스란히 숨쉬고 있었다.

20일 오전 그동안 문제가 되어왔던 죽향초교 통일탑 밑을 발굴한 결과 고사리손들에게까지도 황민화 정책을 강요했던 일제의 민족의식 압살정책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동안 죽향초교 졸업생들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죽향초교의 통일탑이 일제 침략기에 '황국신민정책'을 강요했던 황국신민선서탑이며 그 탑의 기초석은 당시 1학년부터 6학년가지의 전교생이 일본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글귀와 함게 '황국신민서사'를 새긴 돌로 했다는 것.

이날 오전 발굴된 돌에는 「황국신민서사」를 새긴 돌을 비롯, 「충성」, 「충의」, 「내선일체」, 「인고단련」, 「천황폐하 만세」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으며 대동아전쟁으로 일본이 동남아로 침략한 시기인 1940년 8월1일에 조성한 것으로 이날 현재 2백10여개가 발굴, 아직도 수백개의 자갈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굴된 기초석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발굴된 것이며 이 돌 중 일부가 천안 독립기념관에 교육자료로 전시될 예정이다.

이날 발굴 현장에서 기초석을 확인한 독립기념관내 한국독리분동사연구소 이동언 연구원은 "지금까지는 충남 아산 영인초교에서 「황국신민서사주」라고 새긴 황국신민선서탑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기초석으로 쓰인 돌이 발견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당시 일제의 민족의식 말살정책이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자료"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죽향초교 30회 졸업생으로 황국신민선서탑으로 쓰였던 통일탑을 철거하는 것은 물론 기초석을 하루 빨리 캐내야 한다고 증언에 나섰던 김용성(68·옥천읍 금구리)씨는 "우리 민족의 젊은이들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정신대로 끌어가기 위한 일제의 악랄한 정책이었다"며 "일본의 압박을 받고 살아왔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분하고 원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