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협한우전문식당 임헌길 조리실장
축협한우전문식당 임헌길 조리실장
함께사는 세상 [58]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12.15 00:00
  • 호수 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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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경력 40년의 임헌길 조리실장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일자리를 잡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였다. 충남 연기군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농사를 지을 논 한 마지기 변변하게 없는 집안이어서 다른 선택을 고려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찾아간 곳이 청주에 있던 `충일식당'.

제때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해 졸업했을 때는 이미 17살의 나이였던 임헌길씨에게 주어진 첫 직장이자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가 된 곳이다. 충일식당에서 잠시 식당 허드렛일을 하다가 주방장의 추천으로 자리를 옮긴 곳이 `봉산장요정'이었다.

"당시만 해도 요정에서 나오는 요리를 최고로 쳤어요. 지금이야 요정이 모두 없어지거나 한정식집으로 바뀌어 그 때 요정에서 만들었던 음식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한식 전문가인 임헌길씨가 요리를 배운 곳은 당시 최고의 요리와 유흥을 즐길 수 있고, 한 때는 밀실정치의 요람으로 평가되었던 바로 `요정'이다.

"맞기도 많이 맞았어요, 자유당 시절이라 요정에 깡패들도 많이 왔었거든요. 그 때는 시대가 그랬잖아요. 무법천지... 주방장한테 무쇠로 만든 국자로 등짝도 많이 맞았지만 깡패들이 들어와서 툭툭 건드리기도 많이 건드렸어요."

`요정'에서 다양한 한식요리를 배우던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가스레인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뜨거운 물을 마음껏 쓸 수 있었던 때도 아니었다고 임씨는 회상했다. 모든 설거지와 재료 손질은 여름이건 겨울이건 찬물로 해 항상 손은 붉게 부어 있었다.

괴탄을 부숴 부뚜막 화덕에 불을 지피고 일이 끝나 재를 긁어내면 온몸은 재투성이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그렇게 힘들게 요리를 배우는 동안 한번도 다른 일을 생각한 적이 없다.

"어려서부터 배곯고 살아왔는데 `밥' 걱정 안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였는데요. 식당에서 쫓겨나면 금방 굶어 죽는 줄 알았거든요. 어떻게 다른 일을 생각했겠어요." 그렇게 봉산장요정을 거쳐 청미장요정 등 청주에 있던 요정 몇 곳을 거친 후 임씨는 군에 입대한다.

"군 생활도 저는 참 편하게 했어요. 3군단장 숙소에 가서 요리를 했거든요. 제대할 때까지 총 한번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편한(?) 군생활을 끝내고 본격적인 요리사로서의 출발 역시 군 관련 시설에서였다. 대전시 유성구에 있던 `유성휴양소'. 지금으로 말하면 국군휴양소다. 그 곳에서 나이에 경험을 갖춘 전문 요리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임씨는 대온장호텔에서 첫 스카웃 제의를 받은 후 전성기를 맞는다.

"우리 직업이 대부분 그래요. 어디서 돈 조금 더 준다며 오라고 그러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죠. 그래서 서울, 부산, 청주 등 안 돌아다닌 곳이 없어요" 적성이나 소질보다는 먹고사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에 시작한 요리사 경력이 이제 40년을 넘어선 예순 넷의 임헌길씨는 아직도 현역 요리사다.

지난 98년부터 축협한우전문식당 조리실장을 맡아 이제 3년째 일을 하고 있다. 64세. 사회적 통념으로 보았을 때 일선에서 은퇴하고 편안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직도 임씨는 시골의 조그만(?) 식당에서 직접 칼을 들고 도마 앞에서 음식을 만든다.

"원래 목표는 2003년까지 현직에 있는 거였는데... 좋잖아요 나이 들었다고 집에만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한다는 것이. 그런데 일단 내년에 일을 해보고 후년을(일을 계속할 지) 결정해야 할 것 같아요."

40여 년을 함께 살아온 동갑내기 아내 이순례(64)씨 때문이다. 한창 전성기 때 이 지역 저 지역으로 다니느라 함께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지금도 대전에 있는 아내와 떨어져 옥천에 머물고 있다보니 혼자 집에 있는 아내가 고독할 것 같아서다. 이제 현직에 있는 요리사 중에는 고참에 속하는 임 실장은 후배들에게도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요리사들이 노름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고 실제로 주변에서 그런 후배들도 많이 보았는데. 자기가 인내하고 절약하면서 생활하면 얼마든지 훌륭하게 세상을 살 수 있는 직업이니까 고생스럽더라도 열심히 살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임 실장은 적성이나 소질을 고려해 선택한 직업은 아니었지만 40여년의 요리사 생활을 후회하지 않는다. 집에서 젓가락 하나 들고 나오지 않아 6남매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켰고 손님들과 업주들로부터 음식이 훌륭하다는 평가도 받으면서 일을 했는데 무엇이 부럽겠냐는 것이다. 그래도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요리사는 하지 않겠다고 임 실장은 말한다.

"집안 형편 때문에 생각도 못했던 공부를 좀더 해서 다른 직장을 가져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취재를 마친 기자의 옷자락을 붙잡고 요구르트를 건네주는 임헌길 요리사는 맑은 웃음을 지니고 있는 친근한 이웃집 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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