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kw 풍차에 대한 집념 이종학씨
1000kw 풍차에 대한 집념 이종학씨
함께사는 세상 [57]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12.08 00:00
  • 호수 5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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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한겨레에 풍차와 함께 사진이 실리며 관심을 끈 이종학(80)할아버지.

이미 조선일보반대옥천시민모임으로, 작은 밤도 허투루 버리지 않을 수 있는 밤 까는 기계 설계로 꽤 이름이 알려진 이종학 할아버지가 이번에는 `풍차'다.

언뜻 서로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몇 가지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비뚤어진 길을 바로 잡아 나가겠다는 신념, 자연과 함께 순리대로 살아가겠다는 신념이 그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사회에서 퇴직할 때가 되지 않았다는 믿음과 왕성한 활동력'이다.

이종학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동이면 평산리 성골로 찾아간 3일, 그가 30년 동안 개간한 그의 `서원골 밤 농장'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고 한겨레에서 세우기 직전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았던 풍차는 고요히 내리는 눈발 속에 위풍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성골에서 시작된 `풍차'에 대한 고민
할아버지는 22년생이다.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에 일제강점기를 살아냈고 한국전쟁도 겪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는 군부독재도 겪었고 이제는 20세기와는 뭔가 다를 것 같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면소재지에서 태어나 서당에서 한문공부만 하던 그는 12살의 늦은 나이에 죽향초등학교 2학년에 입학했다. 그리고 17살에 초등학교를 졸업, 대전공업학교를 다니다 바로 토목기술자로 철도청 대전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고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당시 교통부로 자리를 옮겨 74년까지 근무했다. 군부독재시대에 군인 출신들의 간섭이 싫어 직장을 박차고 나온 그였지만 산에 유실수를 심어야 한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이 머리에 와 닿아서 고향에 내려와 산에 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냥 산이었던 그 곳에 직접 묘목을 심고 접도 붙이고 하면서 개간을 해나갔다. 제대로 된 집 한 채 없는 골짜기여서 나무 위에 오두막을 짓고, 진입로를 닦으며 악착같이 일을 했다. 더군다나 할아버지의 농장 진입로는 보도연맹이라는 올가미를 쓰고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이 깃들어 있는 곳이어서 마을사람들 조차 날이 어두워지면 접근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많이들 수군거렸지. `간첩이다', `회사에서 돈 떼먹고 돌아와서 숨어 지내는 거다', `정신병자다' 하구 말이야(웃음)"

그 때쯤 전력을 끌어들이려니 동네하고 한참 떨어진 그 곳까지 전력을 끌어들이려면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그래서 산업자원부에 민원을 내고 전력을 못 끌어다 주겠으면 풍차를 세우도록 연구비하고 설치자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 때가 `풍차'에 대한 할아버지의 고민이 본격화 된 시점이었다. 하지만 산업자원부는 한국전력에 민원을 돌려보내 결국 정상적인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전력을 끌어다주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 됐다.

▶1천KW급 풍차 반드시 세우겠다
이후 밤농장을 튼튼하게 만들어 가면서도 `풍차'에 대한 연구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신문에서 내몽고의 풍차발전 기사를 접하고 그 쪽 관계자와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에너지대안센터(대표 손충렬 인하대 교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회원으로 가입했다.

지난 10월12일부터 13일까지는 연세대학교에서 에너지대안센터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아시아의 에너지전환을 위한 국제회의'에도 참가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이 곳에서 시민출자로 1천KW급의 풍차발전을 하고 있는 일본 홋카이도그린펀드 관계자도 만나 설계도까지 우편으로 받아뒀다.

"내가 꼭 도지사, 군수랑 여기를 가 볼꺼야. 사람들은 풍차발전을 아직도 못 믿거든, 근데 일본에서는 지금 이루어지고 있어 그 모습을 직접 봐야 한다니까."

할아버지의 꿈도 자신의 농장에 1천KW급의 풍차발전시설을 세워 주민들에게 풍차발전이 현실성 있는 에너지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타당성 조사를 통해 도저히 1천KW급 풍자를 세울 수 없다면 작은 단위로 나눠서 산 날망에 주욱 풍차를 세우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곳은 에너지 연구센터로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할 생각이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도 지금의 농장은 `농촌과학전진기지'로 누구나 와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교육장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할아버지의 꿈이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 세우는 것도 문제고 석유는 뭐 무한정 쓸 수 있나? 이제 인류의 공통적인 고민거리는 에너지일 수밖에 없어. 사람들이 이제 좀 깨어나서 원시로 돌아가자는 거지. 바람은 최고의 무공해 에너지잖아."

할아버지가 `풍차'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다. 이번에 할아버지의 농장에 에너지대안센터의 지원과 자부담으로 세운 3KW급 소형풍차로 일단은 꿈의 절반이 현실화됐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토목기술자인 자신은 아무래도 `전기'쪽에 대한 지식이 없다며 마침 이날 풍차를 보기 위해 찾아온 (주)동남엔지니어링의 김운해 박사에게 `앞으로 필요할 때 언제든지 기술적 자문을 해줄 것'을 신신당부하는 모습에서 삶에 대한 할아버지의 적극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사람은 세끼 밥을 먹어도 공짜로 먹으면 안 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밥을 먹는 건 죄악이지. 이 세상에 나와서 아무 것도 안하고 신세만 지면 안되잖아."

이종학 할아버지는 틀림없이 날이 추운 지금도 모자를 눌러쓰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톱을 들고 산으로 오르고 있을 것이다. 한 시라도 생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종학 할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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