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경쟁, 전시회용 문집.작품으로 전락
과열경쟁, 전시회용 문집.작품으로 전락
2001 금강사랑 및 학교문집, 독서활동 작품전시회
  • 이용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12.08 00:00
  • 호수 5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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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내 한 중학교의 1학년 학생들이 출품한 '다보탑'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옥천교육청 3층에서는 `2001 금강사랑(탐구보고서·사진·재활용품) 및 학교문집, 독서활동 작품전시회'가 열렸다.

특히 이 중 금강사랑과 관련한 탐구보고서, 사진, 재활용품을 이용한 작품 등은 옥천교육청 만의 특색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달 26일 전시회 개장식에는 각급 학교장과 관계 교사는 물론이고 곽연창 부군수 등도 참석해 전시회를 축하해 주며 테이프 커팅을 했다.

그러나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에 대한 시상이 이루어지면서 매년 행사가 과열돼 본래 전시회의 취지가 사라진 채 교육적 효과를 생각할 수 없는 해당 교사들의 부담으로만 남게 되었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평가' 뒤따르는 문집전시회 필요할까?
이날 교육청 전시회에 전시된 많은 작품 중에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문집이었다. 학년 문집부터 학급문집까지 대부분이 칼라로 인쇄된 문집은 누가 보아도 문집에 투자했을 그 정성과 노력의 정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몇 개 학교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문집이 깔끔한 내용 편집과 칼라 인쇄로 만들어져 있었으며 제본을 거쳐 문집이 완성되어 있었다.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당연히 모든 편집과 프린트 작업은 담당 교사의 몫인 현실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교사들이 퇴근을 뒤로하고 남아서 문집을 제작하던지 아니면 수업시간을 이용해 수업결손을 각오하고라도 문집제작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역시 추측가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옥천지회(지회장 조만희)에서 지난 달 10일부터 20일까지 군내 초등학교에서 문집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결과가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 해 주고 있다.

설문지를 배포한 결과 응답한 읍지역 교사 12명과 면지역 교사 27명 등 모두 39명의 설문 내용을 볼 때 실제로 문집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지 4번 문항으로 제시된 "컴퓨터 편집과 프린트 등의 문집 제작 작업 때문에 본래 할 일인 수업 준비나 연구, 아동 생활지도 등에 활용해야 할 시간을 많이 빼앗기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25명이 매우 그렇다』, 『13명이 약간 그렇다』로 답변해 1명을 제외한 38명이 문집제작 때문에 수업 준비나 연구, 아동생활지도에 활용해야 할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 "문집을 제작, 제출하는 방식이 아동에게, 선생님의 교육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약간 있다가 9명』,『없다가 16명』, 『전혀 없다가 14명』으로 답해 모두 30명의 교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을 했다.

결국 담당 교사들이 판단할 때 현재와 같은 문집전시회용 문집을 제작하는 것이 다른 활동에 쓰여져야 할 시간을 빼앗고 교육적으로도 효과가 거의 없다는 판단을 하면서도 문집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물론 옥천교육청에서는 문집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은 지극히 `자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별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출품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역시 같은 설문조사에서는 "해당 교사들에게 자유로 문집을 제작, 제출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고 대답한 교사가 37명이었으며 `그렇다'고 대답한 교사는 2명에 불과했다. 위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 교사들의 대부분은 자율 참여임에도 불구하고 의무적으로 작품을 제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현장에선 의무로 알고 있다'는 답변을 했다.

아울러 `교육장 명의로 공문이 오면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생각함'이라는 답변과 `시상제도가 있어 학교의 명예가 달려 있으므로', `제출하지 않으면 위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학교의 관리자가 의무로 알고 있으며, 다른 학교와 비교가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이 있었다.

또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자율적으로 전시회를 하기 위해서는 `시상제도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많은 의견으로 제시되었으며 `교사들의 손이 가는 것이 아니라 순수 학생들 작품 위주로 자율적인 참여 속에서 전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전시회용 문집으로 전락
`문집'제작에서 기대할 수 있는 교육적 효과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글짓기 지도'를 하는데 있어 목표를 설정해 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효과라고 설명한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여기에 더해 그 목표(문집)를 달성한 성취욕과 이후 추억으로 간직할 소중한 산물이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문집을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군다나 많은 공이 들어가는 칼라판 문집이 아이들의 몫으로 돌아가기는 더욱 힘들다.

일부 학교에서는 예산의 한계 때문에 희망하는 학생들에 한해 실비를 받고 문집을 판매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또 상대적으로 학생수가 적은 학교에서는 학교 문집은 엄두를 못 내고 학년문집의 경우 복사본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칼라로 만들어지는 학교문집은 철저하게 전시를 위해 만들어지는 1회성 문집으로 전락한다.

학교 신문도 마찬가지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한 학교신문 담당 교사는 한 번 신문을 만들 때 3부 정도를 인쇄한다고 설명했다. 자신들의 글과 사진, 그림 등으로 만들어진 신문을 학생들이 손에 들고 읽는 모습은 최소한 교육현장에서 보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삼양초등학교 이수암 교장은 "(문집을)아이들이 만들었으면 아이들한테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교육이 아니다"며 "CD로 제작하는 등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환경적이지 않은 `재활용작품'
이번에 문집과 함께 전시된 작품 중에는 아름다운 금강변에 살고 있는 우리지역 학생들의 환경보호 의식과 재활용 의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금강사랑'전시회도 함께 이루어졌다. 요구르트병을 이용해 만든 보트에서부터 다보탑까지 정말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쓸모 없는 물건들을 재활용했다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회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요구르트병과 우유팩은 현재 학교에서 수거해 재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을 모아서 본드로 붙이고 온통 분사형 페인트칠을 해 더이상 재활용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과연 금강사랑 전시회의 기획의도와 맞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일선 학교의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공작(만들기)활동을 할 때 재료들을 새로 구입하지 않고 주위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측면에서는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요구르트병과 우유팩이 학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들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을 들으며 초등학교 시절 `몽당연필'검사가 생각났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도 근검절약을 교육하기 위해 그런 검사를 했던 것 일게다. 매주 실시되는 몽당연필 검사에 보일 몽당연필이 없어 멀쩡한 새 연필을 반으로 자르고 멀쩡한 볼펜을 뜯어 몽당연필을 제작해 필통에 넣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마찬가지다. 올바르게 효율적으로 재활용 할 수 있는 폐품들을 가지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재활용품을 만들면서 `이 것이 자연보호, 환경사랑'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다른 한 가지는 과연 금강사랑을 주제로 전시된 작품들에 과연 학생들의 기여도가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삼양초등학교 이수암 교장은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 작품에 선생님들이 손을 대는 것이고 이는 전시회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며 "매년 시상을 하다보니 학교별로 경쟁이 과열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일선학교 교사는 사진전시회를 위해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고 내용을 만들어 출품할 전시판을 만드는데 만 아이들의 손을 빌린 사실을 털어놓았다

전시회장에서 만난 다른 지역에서 전근 온지 얼마 안 되었다는 한 교사는 "옥천지역이 유난히 문집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전시회가 과열되어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또 내년에는 분명 `학예발표회' 열풍이 불 것이라는 말도 건넸다.

지난달 8일에 열린 안남초등학교의 `배바우축제'를 본 정무 교육장의 요청에 의해 14일 다시 초·중학교 교사들을 모아 놓고 재 공연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 농담처럼 던진 얘기였지만 현재 교육현장의 분위기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선진적이고 앞서나가는 교육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종적이고 획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모든 활동들이 순위 매겨진다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하기 싫은 교사 몇명의 목소리일 뿐이다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설문지로 담은 전교조옥천지회는 이를 토대로 지난 달 23일 정무 교육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면담은 6일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육청에서 공문으로 보낸 회신에는 `간담회의 구체적인 내용'과 `간담회 내용에 따른 간담회 대상자 선정의 적정성', `간담회 참석 인원의 적정성', `간담회 요청일시 조정' 등을 들어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후 이어진 조만희 지회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정 무 교육장은 `금강사랑, 문집 ∼ 전시회'와 관련된 문제라면 만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정 교육장은 본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전교조 옥천지회에서 간담회를 요청하고 있는데 만일 이 것이 개선할 점이 있다면 각 학교 글짓기 담당 교사들이 요구해야지 왜 전교조에서 나서는지 모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전시회 출품 자체가 자율적인데 일부 하기 싫은 선생님들, 특히 한 교사(정 교육장은 그 교사의 이름을 밝혔다)가 주도하는 목소리"라며 "정 개선할 점이 있다면 각 학교 교장과 먼저 협의를 해서 개선점을 찾아야지 왜 자꾸 교육장을 나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인 것이 `경쟁론'이다.

현재 "과열경쟁이 이루어지면서 교사들이 애쓰는 것은 아는데 교육이라는 것이 경쟁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선의의 경쟁과 소모적인 경쟁은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학교문집과 학교신문을 담당하기 싫어하는 현장의 교사들을 교육에 대한 `열정'과 `열의'가 없는 교사로 치부해버리기 전에 원인을 찾아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조만희 전교조 옥천지회장은 "이번 전시회가 불합리한 옥천 교육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이런 비교육적이고 환경파괴적인 행사가 계속 현행처럼 유지된다면 옥천교육에 희망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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