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여섯명의 아이들이 함께 웃어요
여섯살 여섯명의 아이들이 함께 웃어요
함께사는 세상 [56]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12.01 00:00
  • 호수 59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왼쪽부터 이효진, 전수미, 옥정인, 남선근, 김학준, 박세영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문정주공아파트는 10여명의 아이들로 시끌벅적하다. 평소 같으면 6명 밖에 없겠지만 이날은 아이들의 동생까지 합세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낯선 이방인에게 잠깐 호기심을 표하던 아이들은 금새 방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느라 정신없다. 한 아이가 시작한 노래는 곧 합창이 되어버리고 작은 아파트 안을 가득 채운다. 정인(여), 학준(남), 세영(여), 효진(여), 선근(남), 수미(여)는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함께 논다.

『옥, 김, 박, 이, 남, 전』아이들이 갖고 있는 성이다. 우연이겠지만 같은 성이 한 명도 없다. 모두 여섯 살이라는 것과 문정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 내년에는 한 유치원에 함께 다닐 계획이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특별한 공통점도 없다. 하지만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아이들은 한 아이의 집으로 모인다. 함께 모여 요일별로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내용의 공부를 한다.

월요일에는 정인이네 집에서 서상숙(31)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화요일에는 학준이네 집에서 정연희(32) 선생님에게 한글을 배우고, 수요일에는 세영이네 집에서 이명숙(36)선생님에게 수학을 배우고, 목요일에는 효진이네 집에서 김봉순(31)선생님에게 중국어를 배우고, 금요일에는 선근이네 집에서 김정남(31)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고, 토요일에는 수미네 집에서 김정인(31)선생님에게 종이접기를 배운다. 물론 선생님들은 모두 아이들의 엄마다.

이들 평범한 엄마들이 아이들의 선생님이라는 직함을 하나 더 갖게 된 것은 지난 7월부터다.(효진이는 조금 늦은 11월부터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모들이 조합을 결성해 적극적으로 펼치는 대안 유아교육인 `공동육아'는 아니지만 같은 울타리의 아파트 단지 내에서 뜻이 맞는 부모들이 의기투합해 벌이고 있는 유아교육의 또 다른 방식이기에 눈길을 끈다.

지금은 낮이 짧아 한 시간으로 줄었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씩 돌아가며 한 집에서 아이들의 오후 2시간을 맡아주고 있다.(날이 일찍 어두워지는 요즘은 한 시간) 그래서 아이들은 학원이나 유치원이 끝나면 한 곳에 모여 함께 공부도 하고 신나게 놀기도 한다.

모임을 제안했던 서상숙씨는 "같은 또래의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 지루해 하는데 아이들이 같이 공부하면 더 나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되었다"고 결성 취지를 설명한다.

요일마다 공부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과외공부'를 위해 모임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것에 중점을 두지는 않는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물썰매장에도 가고, `방방' 놀이기구도 타고 아파트 놀이터에도 나간다. 이번 겨울에도 눈썰매장엘 갈 생각이다.

그래서 아파트라는 곳이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어 놀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게 더욱 아쉽다. 간식도 집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해 주는 간식을 그대로 해 주기 때문에 염려할 일이 없다. 특히 세영이네 집에서 먹는 `고구마'가 아이들에게는 인기 최고라고 한다. 시작하면서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주위에서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였지만 여하튼 반년 가까이 잘 이끌어 오고 있다는 중간 평가를 내 놓고 있다.

이제 그만 두고 싶어도 아이들끼리 정도 깊어지고 또 너무 즐거워해 쉽게 그만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엄마들의 반응이다. 여섯 아이들의 엄마들은 매달 한번씩 함께 모여 `평가회'를 위한 점심식사를 한다.

그 자리에서 한 달을 평가하고 새로운 방향을 설정한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고 뚜렷하게 따라할 수 있는 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씩 갖는 이 자리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은 이제 시작단계인 이들 `공동 유아교육'의 틀을 잡아가는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 같다는 엄마들은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여건이 허락한다면 한 번 해볼만한 것 같아요." 지금의 `공동 유아교육'에 참가하고 있는 엄마들의 중간 평가는 `만족'이었다.

▶여섯명의 아이들에 대한 여섯배의 사랑
이들의 공동 유아교육은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엄마들에게도 변화를 안겨 주었다. 자유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루에 1∼2시간씩의 여유도 생겼고 경남에서 옥천으로 시집 온 이명숙씨나 중국 교포인 김봉순씨는 낯선 곳에서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의 아이에 대한 또다른 부분들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까지라고 정하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면서 이끌어 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집에서 동생하고만 놀 때는 맨 날 싸우고 그러더니 이제는 양보심도 기르고 표정도 많이 밝아진 것 같아요."-이명숙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친구들이 착해서 성격이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하지도 않던 전화도 잘 하고 인사성도 밝아졌어요."-김봉순

"저희가 큰 공부를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배워 온 것을 저녁에 아빠한테 보여주는 모습 보면 흐뭇하죠"-정연희

"무엇보다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많은 또래 친구들하고 어울리면서 대화하는 게 좋잖아요."-김정남

"요일마다 새로운 선생님하고 새로운 공부를 하니까 아이가 요일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그렇게 재미있어 하니까 저도 좋죠."-김정인

"우리 아이지만 몰랐던 부분을 많이 알게 돼요. 집에서 동생하고 노는 것만 보고는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될 때가 있거든요."-서상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