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희 폐백 이바지' 오영희 씨
'오영희 폐백 이바지' 오영희 씨
함께사는 세상 [51]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10.13 00:00
  • 호수 5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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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빛깔 담은 탐스러운 음식에 쏟는 오영희씨의 열정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오후에 찾아간 `오영희 폐백 이바지'에는 가을 햇살이 가게 안에 가득했다. 가게 한 쪽에는 예쁜 접시들이 가득했고 안내받아 들어간 거실 겸 주방에는 각종 조리기구들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어 주인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오영희(37)씨는 따뜻한 레몬차와 대추, 호박씨 등으로 마무리된 약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접시 위에 소담스럽게 앉은 약식을 허물기가 영 민망해 젓가락을 든 채 한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작은 약식 한 조각이었지만 무척이나 예쁜 빛깔과 모양새를 하고 있어 오씨가 음식에 담는 정성의 손길을 허무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서른 즈음에 선택한 `요리'
오영희씨가 첫 직장이었던 청산면사무소를 그만 둔 것은 서른 즈음이었다. 무슨 일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그리 늦은 나이도 아니지만 지금의 일상이 주는 안정적인 매력을 버리기에 쉬운 나이도 아니다. 그런 나이에 오씨가 선택한 것은 `요리'였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능력을 끄집어 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요리'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그러는데요. 제가 어려서부터 상 차리고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대요(웃음)" 인생의 목표를 요리로 결정하면서 요리학원에 다녀 한식과 양식 조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그 자격증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소문이 들리는 곳은 모두 찾아다녔다. 특히 우리 고유의 음식 맛이 많이 살아 있는 전라도 지역은 오씨가 가장 많이 찾은 곳이기도 하다.

오씨의 학습욕은 요리에만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요리를 더욱 값지게 포장하기 위해 포장법, 칵테일 만드는 법, 호텔커피 내리는 법 등 닥치는 대로 배웠다. 무엇이든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보다는 정식으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에서 요리전문가가 되기 위한 적지 않은 투자는 그녀에게 당연히 선행되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찾은 스승이 궁중요리인간문화재 황혜성씨. 우리에게는 텔레비전 CF에 출연하면서 더욱 잘 알려진 황혜성씨와 그의 딸이기도 한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에게 궁중요리를 배우면서 우리 전통 음식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 음식은 그 어느 나라 음식보다 조리하고 상에 내 놓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만큼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는 얘기죠. 또 우리 음식은 손이 참 많이 가요. 그래서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작업이잖아요."

오씨가 얘기하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온갖 정성을 쏟아 마무리하고 상에 올려놓으면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 작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서른 즈음에 7년여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7년을 요리 공부에 투자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고 오씨는 얘기한다. 조만간 오씨는 한지 공예를 공부할 생각이란다. 예쁘게 만들어진 한지공예 작품이 오씨가 내놓는 음식에 어떻게 접목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황혜성 선생님은 지금도 공부를 하세요. 고서를 뒤져 전통음식요리법을 찾아내기도 하고 수강생들에게서도 그들만이 알고 있는 요리법을 끊임없이 받아들이죠. 본받을 부분인 것 같아요."

▲예쁘고 깊은 빛깔 음식 맛 더해
오영희씨가 만든 폐백, 이바지 음식을 비롯해 각종 떡과 전통한과 등은 모두 친근한 빛깔을 띄고 있었다. 강렬하지 않고 은은하게 번져나는 자연의 빛깔이 너무나도 친숙하다. 그러한 빛깔들은 모두 인공 색소가 아닌 우리 주변에 있는 자연에서 얻는다. 녹차가루, 파래가루, 치자가루 등으로도 다양한 색을 내고 지초가루로는 감미로운 핑크색을 낼 수 있다.

일일이 가루를 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몇 번씩 쪄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지만 음식이 완성된 후 볼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빛깔이 갖는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보상한다. 물론 오씨의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수확된 것들이다.

수입품을 사용할 경우 맛도 그렇지만 우리 전통음식을 만들면서 수입품을 사용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생각에서다. 앞으로도 오씨는 폐백 음식과 이바지 음식에 더욱 매진할 생각이라고 한다. 요리를 만드는 것부터 그 성격에 따라 화려하거나 겸손한 장식, 포장까지 우리 음식의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혼례 음식이기 때문이다.

"흔히 폐백과 이바지 음식을 그냥 번거로운 형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폐백과 이바지 음식은 사돈을 맺는 양쪽 집안이 서로에게 보여주는 첫 얼굴이라 할 수 있죠. 음식의 가격을 떠나서 준비하는 사람의 정성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씨의 꿈은 변두리에 예쁜 집을 지어 놓고 누구나 찾아와 우리의 전통차와 떡을 맛보며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가꾸어 놓고 싶다는 것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도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연구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오영희씨는 햇살 가득한 가게 안에서 햇살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뇌출혈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 김상순(79)씨를 모시며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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