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고아의 엄마노릇 안내면 장계리 이승분씨
두 고아의 엄마노릇 안내면 장계리 이승분씨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2.12.19 00:00
  • 호수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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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히 얘기를 꺼냈다 싶다. 어느새인가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번진다. 그렇다고 들어야 할 얘기를 안들을 수는 없어서 계속 질문을 던졌다. "너무 허망하고 속상했어요". 10여년을 모셔온 엄밀히 말해 단지 '남'일 뿐인 어느 노인의 죽음이 이승분(42)씨를 더욱 슬픔에 빠지게 했다.
안내면 장계리에서 3년째 강변식당을 경영하며 이제는 옥천사람임을 강조하는 이씨의 노인공경미담은 이미 알만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이씨가 장계리에 터를 잡고 들어온 것이 지난 82년이었으니 올해가 햇수로 11년째이다.

처음 휴게실 겸해서 시작했던 것이 '대청다방'이었다. 그때부터 눈도 한 쪽이 안보이고 말도 못하는 할아버지 고 한진구씨가 당시 이마담(?)을 잘 따르더란다. 자식들이 없어서인지 남들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던 한 할아버지에 대한 부모 모시기가 시작된 시점도 이때부터였다.
주위사람들이 보기에도 '친부모에게도 그보다 더 잘할 수 없을 정도의 정성스런 모심'이었기에 10년간의 정이 얼마나 깊었겠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던 한 노인은 올 7월초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7월23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부모같이 모시던 노인이 세상을 뜨자 인생 자체에 대한 허무와 충격은 자못컸고 주위에서 다른 노인을 또 한 번 모셔보라는 권유에도 이제는 앞날의 희망을 기약하기 위해 두 아이의 엄마노릇을 하고자 나섰다. 그래서 지난 8월부터 고아로 자라던 박미숙(초교 6년), 이영호(초교 2) 두 어린이의 엄마노릇을 충실히 해내며 주말이면 애들볼 기쁨에 들뜬다.

보은군 수한면 묘서2리가 고향인 이승분씨는 지난 80년부터 옥천읍에서 호성다방을 운영하며 눈물도 많이 흘려야 했다. "옥천이란 고장이 처음에는 너무 까다롭게 느껴졌어요. 지금은 정들어 떠나기 싫은 고향이 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식당으로 자리잡은지 이제 3년.
옥천으로 오기까지 고생이 너무 심했음인지 막상 살아온 얘기는 눈물을 먼저 내비치는 바람에 듣지 못한 아쉬움을 남긴 채 얘기가 이어진다. 옥천에서 2년 정도 생활한 이씨는 82년도 장계리로 옮겨온 이후 허리띠 졸라가며 '남을 위한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펼쳤다.

그 첫 일이 86년부터 몇학교 안되지만 각 학교에 소년신문을 보내는 일이었다. 현재에는 안내중학교에만 보내고 있으나 신문을 본 어린 학생들은 가끔씩 '고맙다'며 '커서 아줌마처럼 되겠다'는 내용의 엽서를 보내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던 중 91년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봉사단체인 B.B.S회원에 가입했다. 현재 이인석 의원, 한영수씨와 함께 안내면 지도위원인 이씨는 B.B.S의 유일한 홍일점이다. 때문에 앞으로 여성들을 B.B.S에 끌어 모아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별명이 '깡패'일 정도로 괄괄하며 뭇사람들과의 친분도 돈독한 이씨는 때문에 B.B.S행사가 있을 때면 때때로 직업의식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씨가 운영하는 '강변식당'은 그래서인지 항상 단골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보통의 한 끼 밥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추, 밤, 인삼, 마늘까지 첨가되는 독특한 영양식인 메기 매운탕이 발길을 끌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김치만큼은 손수 담가야 정성이 깃든다고 믿고 있는 이씨는 "옛날 어려운 때도 살았는데 앞으로도 힘닿는대로 베풀고 살겠다"는 다짐을 빼놓지 않는다. 기다리던 연호, 미숙 두 아이들의 밝은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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