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물건수집가 박희구씨
옛물건수집가 박희구씨
함께사는 세상 [45]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7.28 00:00
  • 호수 5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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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미? 역사적 가치? 그것만이 중요한건 아니지...' 옛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물건들을 수집하는 박희구씨.
▶선조들의 삶 진하게 묻어나는 물건모으기 10년
『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로 분류되고 유형문화재는 건조물, 전적, 서적,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를 말한다(이하 생략)』

이는 문화재보호법에 명시된 문화재에 대한 설명이다. 역사가 `권좌'를 중심으로 쓰여지지 때문인가? 그들의 삶 주변에 함께 있었던 유형의 자산들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문화재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거대한 물결을 형성했던 민초들의 삶과 함께 했던 물건들은 하찮은 것, 천박한 것, 필요 없는 것들로 치부되면서 이미 상당부분 사라져 버린 것이 현실이다.

물론 최근 들어 각계에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아직도 고물상 한쪽에서 재활용품으로 처리되는 것들이 부지기수인 것만은 틀림없다.

청자와 백자, 왕관, 99칸 기와집만이 우리 민족 유산의 전부가 아닐진대... 민초들의 고난하고 치열했던 삶의 체취와 향기가 그대로 묻어있는 유산들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 역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의 몫인가 보다.

▶고물상에서 만난 `홀태' 수집의 시작
안내면 용촌리 `안내 기도원' 원장인 박희구(56)씨가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바로 `고물상'에서 만난 `홀태'(쇠나 대쪽을 빗살처럼 촘촘히 세우고 그 사이로 벼나 보리 이삭의 알곡을 훑어내는 연장) 때문이다.

농민들의 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귀중한 농기구 `홀태'가 아무렇게나 뒹구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박 원장.

"내 고향이 영동군 심천면인데 우리 동네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홀태가 참 귀했어요. 동네에 하나밖에 없어서 추수 때면 집집마다 돌아가며 사용하는 홀태를 빌리기 위해 동네를 헤집고 다녔던 기억이 있죠."

박 원장은 자신이 취미로 모으던 기념메달을 구하기 위해 고물상을 들렀다가 그렇게 귀했던 `홀태'가 꾸러미로 버려진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귀했던 `홀태'가 불과 몇 십 년 만에 저렇게도 하찮은 것이 되었다는 현실이 나름대로는 충격적이었다는 박 원장.

그 것이 10여년 전 일이고 그 때부터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옛 것이라면 그 사회적 가치와 재산적 가치를 떠나서 무조건 모으기 시작했다. 각종 농기구를 비롯해서 궤짝, 장롱, 레코드판, 라디오, 선풍기, 다식판, 석궁, 금관악기, 재떨이, 안경, 항아리, 각종 식기류 심지어는 요강까지.

물론 고문서와 책자들도 그의 수집 대상품목에서 빠질 수 없었다. 어느 선비가 과거시험장에서 혼신을 기울이며 썼을 답안지부터 얼마 되지 않은 1950∼60년대의 교과서와 출석부, 일제강점기의 교과서, 어느 마을의 오래된 향약 규정까지....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박 원장이 소장하고 있는 옛 물건들이 도대체 몇 종에 걸쳐 몇 점이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되진 않지만 대략 1만여 점에 달할 것이라고 박 원장은 얘기한다.

▶친밀한 기억 들춰내는 물건들
옛 물건들이 늘어서 있는 거실에서 나누던 대화를 잠시 멈추고 박 원장을 따라 나섰다. 해바라기 꽃이 죽 늘어선 길을 따라 잘 정돈된 잔디밭을 지나니 제법 전시관의 틀을 갖춘 건물이 나타난다.

전시관 문을 열자 옛 물건들이 간직하고 있는 특유의 냄새(곰팡이와 세월의 냄새가 섞여 있는 듯한)가 `훅'하고 달려든다. 제일 먼저 탑처럼 쌓아 올린 요강이 눈에 들어오고 유리 장에 잘 정돈된 거북선 담배, 청동수저, 안경, 단추, 먹통 등이 정겹다.

벽 여기저기 걸려 있는 악기들과 항아리,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두터운 무쇠솥도 흥미롭다. 한바퀴를 빙 휘돌도록 설계된 전시관도 2년 전 박 원장이 직접 지은 건물이다. 아직까지 매끄럽게 전시품들이 정리되지 않았지만 20여분 남짓 머무른 그 곳에서 잔잔한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너무 오래된 물건들이야 낯설었지만 어렸을 때 집에서 보았던 괘종시계와 사각의 투박한 라디오, 옷 궤짝 등이 한참을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들춰내는 것이 아주 자극적이었다. 그 자극은 세련된 박물관에서 귀족들이 사용했다는 물건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경외감에 가까운 느낌과는 달리 훨씬 친숙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청자와 백자, 왕관 등은 박물관에 가 보고 자료들을 뒤져보면 언제든지 용도를 알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사용했던 작은 물건들이야 이제 10여년 만 지나도 그 용도를 모르는 것들이 나올 수 있죠. 이미 우리 주위에서 그 자취를 감춰버린 물건들도 있을 거구요. 그렇게 되기 전에 하나라도 더 모아서 보존을 해야겠죠."

▶선조들의 삶 엿볼 수 있어...
박 원장이 지키고 싶은 것은 비단 이런 유형의 물건들만은 아니다. 박 원장은 주변환경과 전시관이 정리되는 대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찾을 수 있는 놀이마당을 꾸미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많은 옛 물건들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우리 전통놀이를 컴퓨터에 푹 빠져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아이들이 자치기도 하고, 도롱태 굴리기도 하고, 소달구지 타기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볼 생각이예요"

박 원장은 옛 물건들 속에서 우리 선조들의 삶을 느끼고 엿볼 수 있다는 매력에 더욱 깊게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모습은 조형미가 훌륭한 가구나 백자에서 뿐만이 아니라 하찮은 물건이라 천대받았던 요강에서도 느낄 수 있고 어느 집 아궁이 앞에 놓여 있었을 풍로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박 원장의 설명이다.

"내가 찾고 싶었던 오래된 물건들을 찾았을 때 느끼는 그 기분 좋음을 말로 설명하기 힘들죠. 또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몰랐던 것을 우연히 알아냈을 때도 얼마나 기쁜데요" 박 원장은 이런 작은 감동과 함께 옛 물건들을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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