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실애육원 보육사 이영순씨
영실애육원 보육사 이영순씨
함께사는 세상 [42]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7.07 00:00
  • 호수 5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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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다정한 엄마이자 선생님인 이영순씨. 그녀는 30년이 넘게 영실애육원에서 아이들 곁을 한번도 떠나보지 않았다.
짧지 않은 머리를 뒤에서 하나로 깡총하게 묶고 날렵하게 사무실로 들어서는 이영순씨의 얼굴에서는 쉽게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굵은 장맛비가 1년의 절반을 가르던 지난 6월29일 영실애육원(원장 서기석) 사무실에서 보육사 이영순씨를 만났다. 이씨에게 영실애육원은 직장이면서 곧 자신의 집이기도 하다. 30년이 넘게 한 번도 떠나보지 않았던 집이며 직장....

▶7살에 인연 맺은 `영실애육원'
"너무 오래된 일이어서 잘 생각나지 않아요. 처음에 대전에서 외국인이 운영하던 인애영아원인가 하는 곳에 있다가 7살 때쯤 이 곳으로 왔어요."

어떤 이유에선 지도 모른 채 일찍 세상과 홀로 맞서게 된 이씨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60년대 당시를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10여명과 함께 지프차에 실려 도착한 곳이 영실애육원이었고 낯선 곳에 대한 거부감으로 많이 울었던 기억...

하지만 하루종일 젖병을 물고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던 어두 침침한 대전의 영아원과 달리 영실애육원은 참 밝은 느낌이었다고 이씨는 이미지를 회상한다. 그리고 그 때 함께 영실애육원에 맡겨진 아이들의 성은 모두 이씨였다는 사실을 얘기하며 크게 웃는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상황이 좋질 못했죠. 우리 영실애육원 뿐만 아니라 사회가 전부 어려웠을 때니까요. 그만큼 국가의 사회복지정책도 지금 같지 않았겠지요. 학교에 다녀오면 들로 나가서 일을 했어요."

그 때 질리게 먹었던 기억 때문에 영순씨는 지금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장에 팔아서 돈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 서기석 원장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이라도 제대로 먹여야 한다며 일 주일에 한 마리씩 돼지를 잡았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에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환경에서 힘들게 자랐지만 그 것은 아픈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다. 오히려 한 구석이 비어버린 삶을 통해 겪어야 했던 서러움이 더욱 깊게 각인되어 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요. 제가 어려서 음악에 조금 소질이 있었는지 음악대회에 대표로 뽑히곤 했어요. 근데 대회에 입고 나갈 옷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죠. 결국 대표 명단에서 슬그머니 빠지는 것을 보면서 '부모 없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당시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한없이 밝아 보이기만 했던 영순씨의 표정에 언뜻 그늘이 스친다.

▶아이들 곁 떠날 생각 없어요
"부모님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겠어요. 이리 저리 알아보기도 했죠. 하지만 이제는 포기했어요."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시절 머물렀던 대전의 인애영아원이 지금은 없어지면서 서류를 찾기 힘든 것도 그 이유지만 영순씨에게 부모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은 기계였다.

조금만 신경 쓰면 오락실이나 지하상가 귀퉁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동전을 넣고 사용하는 `점(占)' 치는 기계. 어떻게 그 것을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정색을 하며 그렇게 잘 맞출 수가 없다며 조목조목 설명한다.

물론 지극히 일반적인 사실들이었다. 하지만 부모에 대한 어떤 실마리도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를 일찍 여읠 것 같다'는 점치는 기계의 정보를 영순씨는 믿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영순씨는 `낳은 정만큼 기르는 정'도 소중한 것 같다는 자신의 생각으로 '부모'에 관한 대화를 정리했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요? 그런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여기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다구요" 답변을 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영순씨는 `한 번 있었다'고 대답을 정정한다. 30을 넘어서 잠깐 결혼을 생각했을 때다.

"그 때 이 아이들을 그냥 남겨 놓고 떠날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나더라구요. 울기도 많이 울었죠. 조금 고민하다가 결국 결혼을 포기했어요" 길지 않은 고민이었지만 결국 영순씨는 아이들에게 인생을 던졌다. 만일 자신만의 가정을 꾸렸다면 그 곳에 쏟았을 정성까지 모두 모아서....

▶머릿속엔 온통 아이들 생각뿐...
캠코더, 오디오, 핸드폰. 이영순씨가 가지고 있는 사치품(?) 목록이다. 꼽아보는 품목도 몇개 되지 않지만 음악을 좋아해 한껏 욕심을 부려 산 오디오말고는 모두 아이들을 위해서 구입한 것들이다.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영실중창단'을 데리고 공연을 나갔을 때 그 모습을 담아주고 싶어 캠코더를 샀고, 평소에는 장롱 속에 있는 핸드폰도 공연을 갈 때 연락을 위해 구입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소질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거죠"

영순씨가 가지고 있는 사치품 목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실중창단'에 갖고 있는 그녀의 기대는 크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 강사도 초빙(?)했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긴 했어도 전문적인 대학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항상 안타까웠거든요. 그 참에 대전에 있는 한 학원에 무작정 전화를 했죠."

그 학원의 원장 선생님에게 자원봉사를 부탁했고 흔쾌히 승낙을 얻어내 일주일에 한 번씩 `영실중창단' 아이들은 특강을 받고 있다. 올 연말 `이웃사랑모금회'의 초청으로 동 단체 친선대사인 탤런트 최수종씨와 함께 할 미국 공연에 들떠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이영순씨. 아이들의 미국공연 준비를 위해 올해도 영순씨의 여름휴가는 없을 것 같다.

"답답하면 시내에 한번 갔다 오면 되죠, 여기가 집인데 집에 있으면 됐지 무슨 휴가예요."

자리를 옮긴 방안에서 아이들의 공연모습을 담은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설명하는 영순씨의 모습은 천상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자식 자랑에 정신 없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실애육원의 한 가족으로 30여년이 넘게 살아온 영순씨는 애육원을 떠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조금이라도 벗어나 자신의 어린 기억에는 없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대신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기억을 담고 자랄 아이들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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