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29] 옥천읍 귀화리(I)
신마을탐방[29] 옥천읍 귀화리(I)
  • 류영우 기자 ywryu@okinews.com
  • 승인 2001.06.30 00:00
  • 호수 5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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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주민의 아침을 열어주는 돌람산 아래 포도재배 부농의 꿈을 이룬 귀화리. 화정골(사진)과 자고티에 85가구가 거주하며 지난해 충북 최우수 마을과 농촌진흥청의 잘사는 마을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옥천 주민의 아침을 열어주는 돌람산 아래에 위치한 옥천읍 귀화리. 동이면 세산리와 더불어 포도 하면 생각나는 마을 귀화리는 구일 농공단지와 함께 한우단지까지 조성돼 이곳은 이제 우리지역 경제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지역으로 변모하였고, 60년부터 재배를 시작한 포도로 부농의 꿈을 이룬 마을이기도 하다.

아홉 개의 자연마을이 모여 구일리. 구일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지난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면서다.

자구티, 화정골, 진말랑, 새보루, 증골, 터골, 고사리골, 회총골, 방고개 등 아홉 개의 마을로 이루어졌다는 뜻으로 아홉구(九)에 놓을 일(逸)자를 써서 구일리라 불리게 되었다.

구일리의 아홉 개 자연마을은 다시 귀화, 귀죽, 귀현 마을로 나뉘어 불리고 있으며 구일리를 구성한 자연마을 중 방고개를 제외한 8개 마을은 진말랑, 새보루, 증골, 터골, 고사리골은 귀현리로, 회총골은 귀죽리, 자구티와 화정골은 귀화리에 포함되었다.

화정골과 자구티 85가구 거주
군남초등학교 뒷길을 따라 서대리와 귀현, 귀죽리을 지나면 귀화리에 접어들게 된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포도하우스를 비롯해 커다란 집하장 건물이 이 마을이 포도 주 생산지임을 알려준다.

이곳 귀화리에 거주하고 있는 가구는 모두 85가구다. 자고티에 25가구, 화정골에 55가구가 거주하고 있고 구일농공단지에 들어서 있는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100여 가구에 이른다.

지난 1739년 귀일리(貴日里)라 불리던 당시에는 50여 가구가 거주하였고 또 1890년 64가구가 거주하던 시절에 비해 가구수가 크게 늘어나 점차 가구수가 감소하는 다른 지역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종 때 황계우 할아버지 첫 거주, 500년간 장수황씨 집성촌
귀화리에 가장 먼저 정착해 마을 형성의 기반을 이룬 사람은 조선 세종 때 지금의 차관급인 좌찬성 벼슬을 지낸 황계우 할아버지라고 전해진다.

장수황씨 시조인 황규수 할아버지로부터 10대 손인 황계우 할아버지는 현재 27대손인 황대섭 포도작목반장대까지 17대, 약 580여년 동안 한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500여년 동안 장수황씨 집성촌으로 있던 귀화리는 점차 고향을 떠나는 주민이 많아짐에 따라 현재 황씨는 약 30가구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고, 지난 80여년 전부터는 밀양박씨, 은진송씨 등의 문중이 들어와 장수황씨 문중과 함께 어우러져 생활하고 있다.

주소득원 포도, 4억여원 수입
귀화리에 포도가 들어온 것은 지난 60년도이다. 황한지(68)씨가 대전 판암동에서 처음 포도 묘목을 들여와 재배를 시작하였고 이후 함께 재배에 동참한 7명이 모여 62년 작목반이 구성되었다.

7명이 시작한 귀화리 포도 작목반은 이제 50여 명의 회원에 올해 5kg 포장지를 2만8천900상자를 주문할 정도로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는 한 상자에 8∼9송이씩 하루 1천200상자가 출하되는 양으로 지난해 작목반 총 수입도 4억원을 넘어섰다.

이러한 수입을 바탕으로 귀화리은 지난해 `충북 최우수 마을'로 선정되었고 또 농촌진흥청의 `잘 사는 마을'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포도 수입 증가되면서 한우 사육 시작
귀화리에서 현재 한우를 사육하고 있는 가구는 5가구 정도다. 그 중 순수한 주민은 2가구이며 3가구가 다른 지역에서 들어와 축사를 빌려 한우를 사육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이 마을의 소 사육 비율이 70%에 이를 만큼 포도 다음가는 수입원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하지만 소 값 하락과 수입 소에 대한 우려로 지금은 한우 사육 가구가 축소된 상태다. 구일리에 들어서 있는 한우단지를 제외하고 마을의 최정태, 황의홍씨 등이 50∼60두의 한우를 사육하고 있는 정도다.

포도재배와 함께 한우사육도 귀화마을 85가구 중 2가구를 제외한 모든 주민이 입식으로 주택을 개량하게 된 기반을 마련해 줄만큼 소득증대에 기여했다. 이밖에 포도 농사와 한우사육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귀화리 주민들은 옥천읍 지역에 조금씩 토지를 사들였고, 현재 충북과학대학 주위의 토지와 아파트 등을 구입해 주위 마을의 부러움을 사고있다.

이제는 신용으로 승부
이처럼 마을에 많은 수입을 가져다 준 포도재배가 최근 가격 폭락으로 많은 농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40여 년의 오랜 경험과 신용을 바탕으로 귀화리 포도작목반은 꾸준히 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황의설 이장은 "지난해 황만섭 새마을지도자가 5kg 한 상자에 3만5천원을 받은 것을 비롯해 그래도 귀화리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다른 지역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며 "이러한 신용을 바탕으로 더욱 품질 좋은 포도 생산과 함께 최근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소포장재 개발과 보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소포장재를 선호하는 소비자 취향에 따라 올해 귀화리 포도작목반에서는 5kg 포장지 2만8천900상자를 주문, 귀화리에서 출하되는 포도는 5kg 소포장으로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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