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 순례 23
유적지 순례 23
층암절벽의 '명월암'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0.03.24 11:03
  • 호수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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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면 구건리에서 우측으로 향하여 나 있는 길을 따라 대청호반을 따라 들어가다 보니 4km 남짓한 지점에서 작은 산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이곳으로부터는 낯선 곳이어서 이 마을 김씨(65) 할아버지의 길안내를 받으며 대청호의 수면 근처로 내려갔다.

위를 올려다보니 4미터나 될까한 지점의 층암절벽 위에는 명월암(明月岩)이란 세 글자가 음각되어져 있었다. 이 글자는 구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의 작품으로 알려져오고 있다.

때는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업식 연회를 기회로 김옥균이 박영효, 홍영식 등과 협력하여 사대당 거두들을 제거한 후 신정부를 조직하고 호조참판겸 혜상공국당상이 되었다. 그러나 뜻밖에 청의 개입이 있고 김옥균의 천하는 3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이에 옥균은 명월이란 어여쁜 기녀를 데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권토중래 정치적 야망을 키우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명월은 옥균과 함께 이곳에서 소일하고 있는 것이 일생의 영화를 누린 것처럼 행복하였다. 그러나 훌륭하신 분이 자신으로 인하여 장부의 기개틀 펴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여 옥균이 잠든 자정시간을 이용하여 청풍정으로 나와 언덕 아래 푸른 물위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이튿날 눈을 뜬 옥균은 선생을 지극히 사모하는 나머지 선생의 앞날을 위하여 자기는 먼저 간다는 내용의 명월의 글을 발견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그녀의 시체를 거두어 장사를 지내고 층암절벽 위에 명월암이란 글자를 새겼다. 이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일본으로 향했다 한다. 명월암이 새겨진 절벽 옆으로 빈 터가 보이며 기와조각들이 나뒹굴고 있었는데 이곳에는 청풍정이란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86년 3월경 옥천군에서는 2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구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의 유서깊은 사연이 담긴 이 청풍정을 복원키로 계획하였으나 이 내 그 계획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바람이 시원하고 공기가 맑으며 인적이 많지 않아 고려때부터 선비들이 자주 찾아 실향의 한을 달랬다는 이곳 청풍정, 그리고 명월암.

지금은 잔잔한 대청호반의 수면위로 불어오는 바람만이 이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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