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봉
관성봉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0.03.24 11:03
  • 호수 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어떤 두 가지의 사물을 놓고 그 우열을 가리기가 몹시 어려울 때에 한자숙어로 난형난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비단 한자숙어를 많이 알아서 쓰는 말이 아닐지라도 어느덧 우리 주위에서 자주 쓰고 자주 접하게 됨으로써 자연스레 귀에 익은 말이 되었다.

▲본래 난형난제란 말은 중국의 후한말에서부터 유래되었다. 후한말에 가장 낮은 벼슬을 하고 있었으나 덕망에 대해서는 소문이 자자했던 진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들의 이름은 진기와 진심으로 이들은 아버지 진식과 함께 세 군자로 불려졌었다.

어느 날 집에 손님이 와서 진식은 형제에게 밥을 짓도록 한다음 손님과의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밥을 짓는 형제가 이 토론에 귀를 귀울이다가 실수를 저질러 죽을 만들어놓고 말았다. 형제는 이 같은 사실을 고하고 용서를 빌었고, 이에 진식은 형제에게 토론내용을 말해보라 했는데 놀랍게도 토론의 요점만을 얘기하니 웃으며 용서했다 한다.

또 다른 예가 있다. 진식이 그의 친구와 더불어 길을 떠나기로 약속했던 일이 있었는데 약속시간이 되어도 친구가 나타나지 않아 할 수 없이 진식이 혼자 출발하게 되었다. 그 후에 친구가 찾아와 혼자만 떠났다고 화를 내자 진기는 약속시간에 나타나지 않은 면에서 신의를 아들 앞에서 아버지를 욕했다는 면에서 예의를 들어을 바르지 못함을 얘기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이처럼 총명했던 이들의 아들들도 역시 수재여서 진기의 아들 진군과 진심의 아들 진충 사이에 서로 아버지의 덕행에 대해 자랑하여 우열을 다투었으나 가리기 힘들게 되자 할아버지인 진식의 도움을 청하게 되기에 이르렀는데 진식이 '형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동생이라고 하기도 어렵다'라고 말한 데서 난형난제란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때로는 이러한 고사성어를 대하면서 비록 2천년 전부터 유래되었던 일이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문명인에게 아직도 가치기준의 척도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고 느끼곤 한다. 그만큼 2천년 동안 인간이 나름대로 쌓아온 문화적 업적은 오늘의 초현대문명의 기초를 이룩한 것이며, 오늘날 모든 사상의 기초가 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요즘 들어 있었던 두 번에 걸친 눈물의 이산가족 상봉이 제3국에서나 가능했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한가지 바램은 남과 북이 하나로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들이 어느 쪽이 더 진지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