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고향의 맛 묵과 한평생을"
[인물] "고향의 맛 묵과 한평생을"
김양순 (65·옥천읍 문정리)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1990.03.24 11:03
  • 호수 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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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불과 얼마 전 「보릿고개」란 아픔이 우리들의 생활에 존재하고 있을 적만 하더라도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이 통속적인 대답으로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분명 판이한 세상이 되었음엔 틀림이 없다.

가난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은 채 오직, 삶을 걷기 위한 일념으로 묵과 함께 40여년을 살아온 할머니가 있다.

옥천읍 문정리 구읍의 김양순 할머니(65). 시집을 오면서 밭에서 거둔 메밀 한 말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어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이것을 선뜻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때 당시만 해도 쌀밥은 꿈에서나 볼 수 있었던 김씨 할머니에게는 2, 3일에 걸쳐 먹는 보리밥조차도 그저 황송할 따름이었다.

이러한 모진 어려움을 딛고 둑을 만들어와서 인지 이젠온 세상이 김씨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메밀을 한말 정도 맷돌에 갈아 묵을 만들어 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묵 맛이 일품이라는 소문을 내달라고 했지요'

하늘이 도운 탓인지 얼마후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세월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옥천의 명물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21년 전 남편을 여의고 오직 3남 2녀를 위해 묵과 산나물만을 의지한 채 고전분투해야만 했던 지난날을 떠올리기조차 싫다며 눈물을 훔친다.

살아도 살아도 가난은 지워질 줄 몰랐고 그래서인지 김씨 할머니의 생활은 더욱더 궁핍하기만 했다.

그러나 여기서 이대로 주저 앉을 수 만은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노력한 결과 '구읍갔다 묵을 먹지 않고 오면 숙맥'이라는 에피소드까지 남기게 되었다. 묵의 고유한 맛을 간직하기 위한 정성으로 묵을 만드는 과정은 김씨 할머니의 손을 모두 거쳐야만 한다. 그런 탓으로 하루에 4, 50명이 3평도 채 되지 못하는 조그마한 공간을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다.

이젠 그만두라는 자식들의 성화도 마다한 채 고향의 맛을 간직하며 내일 또 찾아올지 모를 손님들 때문에 문을 닫을 수도 없다는 김씨 할머니는 묵에서 잠시도 손을 떼지 않는다.

메밀묵이 끝나고 도토리묵이 시작될 수 있는 몇 개월간의 공백은 도시락 한 개 싸들고 고사리, 산도라지 버섯 등을 찾아 칡넝쿨을 헤치며 산을 넘는다는 김씨 할머니.

'묵은 쳐먹어야 제맛을 낼 수 있는 음식이지요. 하지만 이 쳐먹는다는 아리송한 말 때문에 결국에는 욕쟁이 할머니로까지 알려지게 되었지요'라며 싫지 않은 웃음을 짓는다.

삶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은 결코 아닐게다.

요즘같이 각박한 현실에서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적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고 보면 김씨 할머니의 순박한 삶은 시들어가는 오늘의 현실을 살리기 위한 마지막 몸짓인지도 모른다.

구수한 메밀묵의 향기가 온누리에 퍼질 즈음 우리들의 메마른 가슴 위에도 봄볕의 따스함처럼 그 향기가 간직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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