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 전복돼 운전자 사망
경운기 전복돼 운전자 사망
  • 박누리 기자 nuri@okinews.com
  • 승인 2014.10.14 10:40
  • 댓글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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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에서 경운기가 전복돼 운전자가 사망했다. 10일 오후 5시50분 경 안내면 한 마을에서 농로를 내려오던 경운기가 길 옆 밭으로 떨어지면서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A(73)씨가 사망했다. 경찰은 현재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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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사랑 2015-01-21 21:48:40
沃川의 끝마을 方下目里 버스길 좁아 擴張 時急
방하목리 마을회관까지 시내버스가 오가고 있습니다만 처음부터 예산 관계로 겨우 오갈수 있도록 좁은 버스길로 늘 불편을 느끼고 있습니다 올해 도로보수 차원에서 예산좀 충분히 배정 버스노선을 확장 마을까지 버스가 왕래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관계기관의 협조 건의및 지난해 부터 건의 드린바 있는 방하목리에서~정구지밭골 농로 확장 함께 넓혀주심을 청원 재삼 건의 드립니다

고향사랑 2015-01-21 21:47:06
의형제 삼송정(삼성짐성촌) 방하목리 문화재가 없다,
안내면 방하목리에 삼송정(三松亭:三姓亭)이란 곳이 있다.그 터전은 지금 이장을 역임한 예관영씨가 거주하는 곳으로 뒤로는 아담한 산과 앞에는 마르지않는 샘과 논들이 있고 주변에는 묘소들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안이 혼란하던 때의 이야기다. 이 삼송정에 세가구가 피난을 와서 일시 난리를 피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최씨, 배씨, 황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이도 비슷하고 모두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 피난와서 살게 되었다. 이 세 성씨들은 모두가 화목하게 지냈으며 친형제 이상으로 정답게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깊은 산중이고 교통도 지극히 불편한 곳이어서 외부와의 연락도 되지않는 천연적인 요새로 피난하기 알맞은 곳이었다. 그래서 더욱 서로 아끼며 협조하여 나무도 하고, 밭농사도 공동으로 지으면서 편안히 임진왜란을 넘길 수가 있었다. 세월이 감에 따라 이 세 가구에는 식구가 늘어났고, 또 더욱 정다워져서 마침내 의형제를 맺게 되었으며 더욱 더 화목하게 살았다. 그리고 이 세 성씨는 의형제 결의를 기념하고 서로 더욱 돈독히 하여 자손들까지도 정답게 살아가자는 뜻에서 각기 소나무 한 그루씩을 나란히 심어 의로움을 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세 성씨는 새터, 질구지, 방하목 세 마을로 각각 나뉘어 살게 되었는데 그 뒤 세 성씨가 심은 소나무 중에서 맨 먼저 배씨가 심은 소나무가 고사(枯死)하고 이어서 황씨성, 그리고 마지막엔 최씨성 순으로 소나무가 모두 고사했다고 한다.
군지에는 배씨가 떠났다고 잘못 기록하고 있는데 방하목리 이장을 역임한 배석구씨가 그 후손이며 2구(월경)에는 선영이 있습니다, 방하목리의 역사는 의병대장 조중봉 선생이 몸을 숨겼 었다는 삼송정이의 밭과 피난봉의 전설로 생각할때1591년 이전에 삼성(최씨 황씨 배씨)이 세그루 소나무를 심고 살기 시작하여 오늘날 삼송정으로 불리며,
지금도 삼성이 터잡고 살아가는 현실로 초계최씨의 중시조 나복산인 崔山斗 丁丑年,중종 12년(1517) 1518년보은현감 이였으며, 초계최씨 낙향조가 거의 1600년대로 알고있다.
星山裵蘊 1417년(태종17) 司馬試에 합격하여 靑山縣監·淸州鎭管節制都尉를 지냈다.어디에 보니 배씨는 떠났다 라고 잘못 썼더군요 방하목리 이장님이 바로 그 후손으로 선영 역시 방하목리에 모셔져 있습니다 장수황씨는 잘모르겠으나 상세한 것은 장수황씨들에게 질문하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장수황씨 시조의 10대 손인 황계우 할아버지는 현재 27대손인 황대섭 포도작목반장대까지 17대, 약 580여년 동안 한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500여년 동안 장수황씨 집성촌으로 있던 옥천읍 귀화리는 점차 고향을 떠나는 주민이 많아짐에 따라 현재 황씨는 약 30가구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반드시 조중봉선생 사당,광산김씨열녀비,방하목에는 역사의 고장으로 문화재가 꼭 필요합니다.

고향사랑 2015-01-16 20:47:19
소리를 찾아서
시집살이
형님 형님 사춘형님시집살이 워떻던가꼬추겉은 다홍치마홧대뿔에 걸어놓고눈물딱기 세월일세형님 형님 사춘형님쌀한되만 제끼며는 성두먹구 나두먹지꾸정물이 나온다면성소주지 내소주나누른밥이 눋는다면성게주지 내게주나
■가창자 : 이경애(여, 73세, 안내면 방하목리)■ 2003년 1월 6일

일선에 가신 낭군님
깨끼깨끼 깨끼저고리 반달같이 짓을 달아동방마루 동정을 달아 품아명지로 고름달아은

고향사랑 2015-01-05 14:05:08
박누리 기자님
희망찬 을미년 하시는 일 모두 술술 풀리시고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제가 독자난에 글을 쓸수도 있지만 아직은 이렇게 댓글로 가름합니다만 다른 마을에 있는 문화재가
방하목리에는 없는 안타까움으로 '의형제 삼송정'은 후손들이 입향조및 삼성의 터전으로 비각을 세웠어야
함에도 고작 2구(월경:개밥골 초입)에 초계최씨세거비 하나 달랑 있고, 옥천군지는 배씨가 떠나갔다고 기록
되어있는데 아닙니다.

박누리 기자 2015-01-05 13:33:45
고향사랑님, 안내면 방하목리 길 확장 문제는 '사고 난 방하목리 농로 확포장 절실' 기사(링크 http://www.ok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4737)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