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쌤의 놀이이야기>장기, 정승이 하인에게 고개 숙인 놀이
<아자쌤의 놀이이야기>장기, 정승이 하인에게 고개 숙인 놀이
고갑준(사단법인 한국전래놀이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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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22 13:04
  • 호수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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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컨대 노정승의 '차'처럼 불로장생하였으면 좋겠다."

15세기 한양바닥에서 유행하던 속담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왕 외에는 고개 숙일 일 없는 정승 노사신이 수시로 아랫사람에게 '애걸복걸'하는 괴이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노사신은 장기를 즐겨 양반, 천민 가리지 않고 신분과 관계없이 놀았다. 그런데 '차'가 죽게 되면 물려달라고 매달리며 사정해 기어이 물렸다고 한다.

장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장기는 '두 사람이 장기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알을 번갈아 가며 두어서 승부를 내는 민속놀이' 라고 기록되어 있다.

명창 이호연선생과 안비취 선생이 즐겨 불렀던 경기잡가 '장기타령'이 있다.

"…서른 두 짝 장기 만들어 장기 일판 두어보자. 한수(漢水) 한자 유황숙(劉皇叔)이요, 초(楚)나라 초자 조맹덕(曹孟德)이라. 이 차(車) 저 차 관운장(關雲長)이요. 이 포(包) 저 포 여포(呂布)로다. 코끼리 상(象)자 조자룡(趙子龍)이요, 말 마(馬)자 마초(馬超)로다. 양사(兩士)로 모사(謀士)를 삼고, 오졸(五卒)로 군졸(軍卒)을 삼아 양진(兩陣)이 상접(相接)하니 적벽대전(赤璧大戰)이 예로구나. 조조(曹操)가 대패하여, 화용도로 도망을 할 제 관운장의 후덕으로 조맹덕이 살아만 가노라 에∼(후렴) 지화자 에―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널 너리고 나리소사. 에∼."

장기는 4000여 년 전 고대 인도의 서북부에서 즐겨하던 차투랑가(chaturanga)라는 놀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차투랑가는 산스크리트어로서 차투(chatur)는 넷, 앙가(anga)는 원을 의미하는데 4원은 군대의 기본 구성인 상(象), 마(馬), 차(車), 보병(步兵)의 4가지로 이는 코끼리부대, 기마부대, 전차부대, 보졸부대를 의미한다. 또한 인도불교의 수행자들이 전쟁과 살생 못하게 하는 계율을 지키기 위해 인간 본연의 파괴본능을 달래고 수행 중 잠시 쉬는 시간에 즐기던 놀이가 불교전파와 함께 중국에 전해 졌다는 설도 있다.

옛 시절 마을입구 당산나무 아래 모시적삼을 입은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뒤섞여 '장이야!', '멍이야!' 왁자지껄하던 시절이 그립다. 장기는 긴 겨울 새끼 꼬던 동네 머슴들이 잠시 쉬면서 넘치는 기운을 발산하는 놀이이기도 했다.

우리민족에게 놀이는 따로 준비하고 시간 내어 판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일상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일상생활이었고, 발산이었고, 소통이었다. 그 시절 그 추억을 다시 우리 일상으로 되돌리는 일, 아자학교와 함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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