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드롬
옥천신드롬
오한흥의 옥천엿보기
  • 오한흥 ohhh@okinews.com
  • 승인 2001.05.19 00:00
  • 호수 5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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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비판의 대명사격인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이란 책 첫 머리에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말이 등장한다.

강 교수는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인질사건에서 비롯된 이 말에 대해 사건이 장기화될 경우 인질로 잡혀 있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설명하고 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인질이 오래 잡혀 있다 보면 나중엔 인질범들에게 동조적이고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심리상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절박한 상황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감으로부터 나온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100년이 넘게 외세와 군사독재의 인질이었던 우리의 현실로 연결시킨다. '코리아 신드롬'이라 부를 만하다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상당히 수긍이 간다. 여기서 나는 시야를 우리고장으로 돌려본다. 비록 나라는 다르나 스톡홀름 신드롬 있고, 강 교수의 코리아 신드롬이 있다면 옥천 신드롬도 있을 수 있겠다는 강한 호기심이 일기 때문이다. 또 전국단위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에 대해 옥천화시키는 작업의 필요성을 잠깐이나마 고민한 결과라고 봐 주면 고맙겠다.

옥천 신드롬에 접근하기 위해 먼저 우리고장 주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의 실체를 밝히는 일이다. 내 눈에는 이 실체가 명확히 감지된다. 근원이야 강 교수 주장대로 100년전쯤에다 초점을 맞추고, 우리고장에서 가장 큰 집단이며 주민생활과 가장 밀접한 공직사회를 들여다 보기로 하자.

얼마전까지 공직에 있다가 퇴직한 전직공무원의 말이다. "공무원의 생사는 인사와 직결돼 있다. 특히 구조조정이다 뭐다 하는 지금같은 시기엔 인사권자에게 찍혔다(?) 하면 '그 날로 끝'이라는 듣기에도 썰렁한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게 민선시대 공직사회의 현실"이라며 자신이 현직에 있을 때 느꼈던 공포에 가깝던 불안감을 털어놨다. 이 사람은 또 "상당수 공무원이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며 "퇴직한 지금이 오히려 홀가분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민선시대 출범후 특히 심화된 공직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불안과 공포. 옥천 신드롬이라 부를만 하지 않은가. 이 속에 갇힌 공무원들은 30년전 스톡홀름의 인질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인사권자나 그 끄나풀들의 눈치보는 일로 소일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송곳같은 손가락이 언제 뒤통수에 꽂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은 앞서 전직공무원의 말대로 공직을 그만두는 방법밖에 없다. 아니면 구체적인 방법은 잘모르나 인사권자로부터 귀여움을 사든지... 후자에 속하는 공무원도 물론 적지 않은 걸로 파악된다.

어쨌거나 공직사회에 불안과 공포가 존재하는 건 엄연한 현실이다. 나는 이걸 옥천신드롬이라 부르는 것이며 인질극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한다. 이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 공포와 불안이 존재하는 분위기에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믿음과 공직사회의 건강성이 곧 주민복지와 직결된다는 확신 때문이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몇 차례에 걸쳐 '옥천 신드롬'에 대해 원인을 규명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글쓰기를 시도할 생각이다. 독자여러분과 함께 고민하자는 제안을 드리며 비판과 고견을 기다린다. 아울러 탈출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기대하며 또 소개도 할 예정이다. 가장 늦게 발견된 옥천 신드롬이 가장 먼저 깨지길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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