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쌤의 놀이이야기>쌍륙, 조선 강철심장 김시습을 놀래키다
<아자쌤의 놀이이야기>쌍륙, 조선 강철심장 김시습을 놀래키다
고갑준(사단법인 한국전래놀이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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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18 10:32
  • 호수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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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비켜나는 울음소리 역력한데, 인적은 고요하고 물시계 소리만 아득하다."

이 시는 탕건까지 벗어재낀 한량이 죽장을 입에 물고 기생과 함께 어떤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혜원 신윤복(1758~?)의 그림에 실려 있다. 어떤 놀이기에 저토록 넋이 나간 것일까? '쌍륙'이라는 놀이다. 이 그림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135호 '쌍륙삼매(28.2×35.6)'라는 그림이다.

쌍륙은 서양의 체스와 비슷하게 두 편이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나오는 사위대로 말을 놀려 먼저 궁에 들여보내는 쪽이 이기는 놀이다.

쌍륙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경으로 올라가는데 바빌론의 아브라함 성지에서 쌍륙의 형태가 발견된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 이후로도 나일강의 피라미드, 고대 그리스, 로마제국의 여러 유적과 폼페이에서도 놀이판이 발견되고 있다. 북사 백제국지부에는 '백제에는 투호와 저포와 롱주와 악삭(쌍륙)등의 잡희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들어와 백제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며, 다시 일본에 전해져서 "스고로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에는 '세종 14년(1943년)에 명의 사신이 쌍륙을 요청하여 왕이 보내 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성종 때는 '종부시어실에서 술내기로 쌍륙을 놀다가 싸움이 나 화로를 차서 지의를 태우고만 입직 당사자를 국문하라'는 어명을 내린 기록도 있다.

그 외에도 이규보의 '견한잡록'과 송나라 학자 홍준의 '쌍인보'·'재물보'·'조선적' 등에서도 언급되는 것을 보면 아시아 곳곳에서 상당히 대중적으로 유행한 놀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명조의 수필집인 오잡조에는 '호주(胡主)의 아우가 죄를 지어 죽게 되었는데, 옥에서 쌍륙을 만들어 형에게 바쳤다. 말이 하나만 있으면 잡힐 수 있고 2개 이상 있으면 살 수 있는 쌍륙을 본 형은 형제의 중요함을 깨달아 동생을 죽이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김시습의 매월당집(梅月堂集)에 보면 '육대호래우몽성(六大呼來牛夢醒)'이라는 시가 나온다. '육이야! 하고 부르는 소리에 달게 자던 낮잠을 깨었다.'라는 글이다. 쌍륙을 치던 한 친구가 어찌나 다급하고 시끄럽게 '줄륙!'하고 고함을 질렀는지 곤히 자고 있던 당대의 강철심장 김시습이 깜짝 놀라서 깊은 잠에서 깨었다는 것이다.

쌍륙놀이를 해 본 사람은 이 상황이 얼마나 급하고 밀리는 사람이 얼마나 요란하게 '줄륙'을 외쳤을지 익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유교적 세계관에 따라 바깥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반가의 아낙들과 규수들 사이에서는 그 갑갑함을 달래는 실내놀이로 큰 인기를 끌었다.

쌍륙놀이는 놀이 과정이 복잡하지만 한 번 익히면 그 재미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 쌍륙은 말과 쌍륙판, 주사위 2개로 구성되는데 나무나 상아를 정육면체로 깍아 만든 투자라는 주사위에는 면마다 점으로 1~6의 숫자가 새겨져 있다.

쌍륙판에는 1~6까지 숫자가 4개 그려져 있는데 편을 갈라서 쌍륙판을 가운데 놓고 검은 말과 흰 말을 각각 16개씩 쥔다. 그리고 양편이 번갈아 던지는 주사위의 숫자에 따라서 말을 움직이게 된다. 다른 편이 숫자를 쓰지 않은 넓은 공간에 주사위를 던져 말의 이동을 거듭한다.

간혹 중국 영화를 보면 양 쪽 장수들이 장기나 쌍륙을 통해 진을 펼치고 병사들은 그움직이는 것은 전쟁에 버금가는 고도의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쌍륙은 군사를 움직여 싸우는 전법과 같다.'고 쓰고 있다.

요즘 사람들 거의 움직이지 않고 산다. 실내 활동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앉아서 천지를 움직이는 운동성을 발현할 수 있는 쌍륙놀이를 권한다. 공명의 지혜와 관우의 용맹이 안에서 움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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