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달라진 의회를 기대한다
<편집국에서>달라진 의회를 기대한다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14.06.27 07:59
  • 호수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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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나카 헤이스케라는 일본의 수학자가 있다. 그는 열다섯 남매의 일곱번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지독한 가난과 맞서야 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따라 장사꾼이 되거나 아니면 농사꾼이 되기를 바랐다.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통을 들어야 했던 그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책을 읽곤 했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를 한 끝에 헤이스케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 미국 하버드 대학으로 가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끈기 하나를 유일한 밑천으로 삼았던 그는 1970년 '위수 0인 체 상에서 정의된 대수다양체의 특이점 해소 정리'라는 보통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를 내용으로 필즈 메달을 수상하게 된다. 필즈 메달은 국제 수학 연맹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수학자 대회에서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만 수여하는 권위있는 상이다. 수학의 노벨상으로도 불리며 수학자들에게는 가장 큰 영예로 여겨지는 상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단 한 명의 수상자도 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처음 헤이스케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창 대학 입시 준비로 찌들어 있을 때 우연히 그가 쓴 '학문의 즐거움'이란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학문이 즐거워?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이 책이 지겹도록 공부를 싫어한 나를 바꿔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구절과 맞딱뜨렸을 때 나는 '이제부터라도 착실히 수능 공부를 하며 진지하게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한 가지 문제를 택하면 처음부터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한다. 인간은 1백40억개나 되는 뇌 세포 중에서 보통 10퍼센트, 많아야 20퍼센트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잠자고 있는 세포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두세 배의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보통 두뇌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대단히 뛰어난 문장이거나 특별한 통찰력이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당시 이 구절을 읽고 받았던 충격은 상당했다. 특히, '그것이 보통 두뇌를 가진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말은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하나의 큰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지금도 어떤 일을 하는데 두려움이 앞서거나 게으름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학문의 즐거움'이 일깨워준 삶의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곤 한다.

지난 23일 옥천문화원 문화교실에서 열린 '풀뿌리 지역자치 아카데미'를 보며 이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풀뿌리 지역자치 아카데미는 옥천신문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민선 6기와 제7대 옥천군의회를 이끌어갈 당선자들에게 '지역을 위해 주민과 함께 공부하자'고 손을 내민 자리였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4월 당시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사람들에게 당선이 된다면 우리고장에 올바른 지방자치와 풀뿌리민주주의를 꽃 피우기 위해 지역의 현안과 정책, 예산, 자치법규 등을 함께 공부하는 자리를 마련할테니 참가 의향을 밝혀달라고 있다. 당시 몇몇 후보를 제외한 대부분이 공부에 응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실제 첫 번째 강연이 열린 23일 저녁. 새누리당 최연호, 유재숙, 이재헌, 유재목. 새정치민주연합 임만재. 무소속 문병관, 안효익 당선자 등 민경술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이 주민과 함께 강연석에 모습을 보였다. 김영만 군수도 현장을 찾아 인사말을 나누었지만 일정을 이유로 강연은 듣지 않았다. 옥천신문에서는 그동안 매년 꾸준히 주민과 함께 하는 강연을 마련해 오고 있지만 올해처럼 현역 정치인들이 대거 자리를 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의 당선자들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을 끝까지 들었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7대 의회는 지나치게 많은 의원이 새누리당이라는 점에서 큰 우려를 사고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초선 의원이 많고 상대적으로 젊은 의회가 구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지난 구태와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의회로 변신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게 품고 있는 것이다.

공부하는 의회를 통해 달라진 모습을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이 여기에 있다. 600여 공직자를 상대로 8명의 의원이 예산과 정책을 제대로 톺아보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공부가 필요하다.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처음부터 두세 배의 시간을 들일 각오로 시작해야 한다.

다음 강연은 지방자치단체 예산 구조(월요일 저녁 6시30분)와 지역이 함께 지켜야 할 공공성(화요일 저녁 6시30분)을 주제로 진행될 예정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진지한 자세로 주민과 함께 공부하는 당선자들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열심히 한다고 늘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노력하는 그 과정은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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