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소녀 천경아 양
'시' 쓰는 소녀 천경아 양
함께사는 세상 [34]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5.12 00:00
  • 호수 5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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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용청소년문학상 수상자 천경아. 경아에게 있어 시는 세상과 연결된 탯줄과도 같았다. 시를 통해서 세상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을 바라보는 경아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나방은 쉽게 찢어지는 날개를 탓하며
깃털처럼 날리는 눈을
날개 위에 쌓고 있어
빛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천경아 `나방과 아버지' 중에서-

"사람들은 흔히 시를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한가한 사람들이나 읽는 것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시를 읽으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나 아픔을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시를 읽으면 더해요. 시를 통해 느끼는 감동은 장황하게 설명된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감동보다도 때로는 더 큰 감동을 주죠."

그래서 경아(천경아·옥천고 3)는 시를 좋아한다고 한다.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시를 쓴다. 경아의 시는 대전대학교 지산문학상 시부문 장원과 올 지용청소년문학상 대상이라는 수상경력을 통해서 그 문학적 수준을 엿볼 수 있지만 한 시간 남짓 나눈 대화에서 느낀 생각의 깊이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경아는 이원중학교를 졸업하고 옥천고등학교에 진학해 이미 뛰어난 실력으로 정평이 나있던 옥천고등학교 문학 동아리 `할'에 가입한 후 신동인(옥천고 국어교사) 지도교사 그리고 선배들과 함께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시작한다.

▶시는 결핍을 메우는 과정
경아가 시를 쓰면서 애써 떨쳐버리려 하는 것은 `소녀적 감수성'(경아의 표현)이다. 경아는 시를 읽고 쓰면서 이제야 분노와 외로움에 푹 빠져서 쓰던 푸념적 글쓰기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다며, 감상에서 벗어나 현실과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쑥스럽게 웃는다.

더군다나 직·간접적으로 절실하게 경험해보지 않은 채 소녀적 감성과 상상력으로만 시를 쓰면 금새 들켜버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시를 읽고 생각하는 것이 결핍의 구덩이를 파서 메워가는 작업인 것 같아요." `결핍의 구덩이' 18살 소녀에게 도대체 `결핍의 구덩이'가 무엇일까 의아한 마음에 되물었다.

"언젠가 김명인 시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어요. 시인은 원래 그 자체로서의 결핍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공유할 수 있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고통이나 외로움의 구덩이를 파야 한데요. 그리고 그 구덩이를 끊임없이 메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 기성시인의 긴 강의 내용 중 한 부분이었을 얘기를 조목조목 설명하는 경아의 모습에서 직접경험의 크기는 작을지 몰라도 `결핍'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아가 `소녀적 감수성'이라고 표현한 것이 자신의 내면에만 파묻혀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눈을 갖지 못하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사고의 태도라면 이제 경아는 `시'를 통해 자연과 이웃의 삶에서 자신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사고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태도가 경아가 시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인 것처럼 보였다.

"항상 스스로에게 자만하지 말라고 얘기해요. 상 하나 받았다고 자만하지 말자구요. 항상 부끄럽거든요. 동아리에서 공부하기 위해 내 놓은 시도 항상 부끄러워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쓰자고 얘기하지만 그래도 작품을 내 놓을 때마다 항상 부끄러워요."

▶시에 대한 `절실감'
경아는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고3'이라는 위치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공부를 하다가도 `내가 이걸 배워서 무엇에 쓸까?' 하는 생각이 들면 시집이나 소설책을 펴들었거든요. 그래도 아무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3학년이 되니까 시집을 펴들면 `내가 이게 무슨 짓이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과거처럼 마음 편하게 시집을 읽거나 소설책을 읽지는 못한다고 경아는 얘기한다. 이런 절박감 속에서 경아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계기가 되었다고 얘기한다.

편안하게 쓰고 싶을 때 쓰고 읽고 싶을 때 읽으면서 지낼 때는 내가 얼마나 시를 쓰고 싶고 책을 읽고 싶어하는지 절실하게 깨닫지 못했는데 3학년이 되어버린 지금 그 절실함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학교에서 딱딱한 책상에 앉아 책과 씨름하고 친구들과 싸우고, 웃고 떠드는 것이 삶의 전부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이런 삶을 살게 한 이 사회가 밉다. 여느 고등학생과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경아에게 요즘의 청소년 문화에 대해 물어 보았다.

"컴퓨터 게임이나 채팅 같은 것을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 것이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좁은 공간에서 컴퓨터와 지내면 의식이 많이 좁아질 것 같아요. 우리 나이는 의식이 최대한 팽창해야 할 시기잖아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자신만의 공간으로 스며드는 친구들이 이해는 되지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경아는 얘기한다. 그래서인지 경아는 옥천에서 놀만한 곳을 많이 알고 있다. 간혹 동아리 후배들을 이끌고 지용 생가를 찾아가면서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관성회관도 오른다.

시간이 좀더 있으면 시내버스에 올라 금강 유원지를 찾기도 한다. 또 여성회관 옆 육영수 여사 동상이 서 있는 작은 공원도 경아에게는 좋은 놀이터다. 쉬는 날이면 집과 가까운 강을 찾거나 들과 산을 쏘다니기도 한다. 손에는 작은 수첩을 들고...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똑같아 보이는 강도 각 계절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많이 다르다는 사실도 알아버렸다.

▶시는 세상과 연결된 `탯줄'
"대학교는 국문과를 가고 싶어요. 그 곳에서 시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체계적으로 우리 언어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어요. 그러면 시와 좀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경아의 꿈은 국어 선생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엉뚱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조용한 산에서 산장지기 하고 싶어요."

조금 쑥스러웠는지 웃음을 지으며 덧붙인 얘기가 자신의 일(절대로 생계유지를 위한 직장생활은 아니라고 강조했다)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시로 그리고 싶단다.

그리고 사람들이 시는 사양사업이라고 얘기하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또 혼자만을 위한 시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가슴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시를 썼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들춰냈다.

경아에게 있어 시는 세상과 연결된 탯줄 같았다. 시를 통해서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고 시를 통해서 세상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소중한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경아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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