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수수 부께미의 추억
<기고글>수수 부께미의 추억
이흥주(옥천읍 하계리)
  • 박수정 young@okinews.com
  • 승인 2014.04.18 11:11
  • 호수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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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부께미(부꾸미)라는 게 있다.

수수가루로 번철 가득히 아주 큼지막하게 전을 지졌다. 그 색깔은 붉었다. 거기엔 다른 재료는 아무것도 첨가 하는 것이 없었다. 수수가 원래 찰지기 때문에 이것을 철 가득히 한 장씩 지져내면 뜨거울 땐 철철 늘어진다. 그때 먹으면 두른 기름 맛의 고소함과 수수 맛이 어울려 독특한 맛을 냈다. 이게 식으면 단단하게 굳는데 그때 세모나 네모지게 썰어 놓았다가 설 명절에 흰 떡국에 같이 넣어서 끓였다. 설을 쇠려고 설음식을 장만할 때는 꼭 이 수수부께미를 함께 부쳤다.

쌀이 귀하던 시절에 떡국에 같이 넣어 끓이는 것이었다. 쌀밥에 보리나 조 같은 잡곡을 섞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쌀에 보리쌀 섞은 밥이 맛이 덜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어릴 때 그걸 넣은 떡국을 정말로 싫어했다. 그래도 아버지와 내 떡국엔 흰 떡이 많고 부께미는 얼마 안 들어 있는데 어머니나 누나들 떡국엔 흰떡보다 그것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어머니나 누나들은 싫단 소리 한번 안 하시고 그걸 맛있게 드셨다. 어머니나 누나들도 흰 떡국이 더 낫다는 것을 모르진 않으셨을 것이다. 어린 내가 어머니께서 드시는 것만 보고 그렇게 생각했던거지.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부께미 넣은 게 고소하니 더 맛있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어린 자식이 그걸 먹기 싫어하니 내 앞에서 괜히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그 부께미 넣은 떡국이 쌀밥에 보리쌀 섞은 것 모양으로 정말로 식감이 거칠고 맛이 없었다. 그걸 그리도 먹기 싫어한 걸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어릴 때의 아린 추억 중 하나다. 흰 떡국만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었으면 굳이 수수부께미를 넣었을까? 쌀이 풍족했다면 흰밥에 굳이 보리쌀을 섞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자식은 왜 맛없는 부께미를 넣어 주느냐고 짜증을 부렸으니 그걸 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이제 내가 부모의 마음으로 그때의 어머니 마음을 헤아려 보고 있다.

옛 어른들, 특히 어머니들은 집안의 조상님이나 어른들을 끔찍이 위하셨다. 집에서 무슨 색다른 음식을 한다든가 뉘 집에서 음식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윗목에다 상을 차려 조상님께 먼저 올리고 그것을 퇴하여 집안의 어른이 먼저 드셔야 가족들이 먹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전남 구례 산수유축제장을 들를 기회가 있었다. 그 때 내 눈을 확 뜨이게 하는 것이 있었다. 널찍하게 철 가득히 부치는 게 아니고 작게 전을 지져 거기에 고물을 얹고 끝을 오므려서 하는 수수전병을 부치고 있었는데 어찌하다 그걸 맛보지 못하고 온 게 지금까지도 너무 아쉽다. 내가 지금까지 얘기한 그 널찍하게 부치는 수수부께미와 밀가루로 만드는 밀전병은 알아도 수수전병은 어릴 때 보지를 못했고 따라서 그걸 먹어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때 그걸 그냥 지나쳐 온 것에 더욱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먹은 그 수수부께미는 아니었어도 수수전병을 만난 것이 60여년 만이었다. 앞으로 또 어디서 이것을 만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옛것이 자꾸 맥이 끊기고 있다. 요즘은 수수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이 수수 부께미도 결국엔 사라질 음식 중 하나일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요즘 세대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하고 바란다. 우리 옥천에서 전통 음식 하는 분 중에서 이걸 같이 해보면 구색도 갖추고 괜찮지 않을까? 수수부께미. 참으로 오래 된 음식, 먹을 것이 적었던 시절의 추억의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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