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탐방(55)옥천읍 양수2리>양수2리 마을회관이 마을의 보배인 사연은?
<마을탐방(55)옥천읍 양수2리>양수2리 마을회관이 마을의 보배인 사연은?
  • 황민호 객원기자 ijazz@naver.com
  • 승인 2013.09.13 14:58
  • 호수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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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주민들의 염원이 담긴 마을회관도 2009년에 생겼다.
■ 흔한 마을회관 하나 없었던 양수2리

누군가 그렇게 삽을 들고 우물을 파지 않았다면, 누군가 그렇게 깃발을 들고 서 있지 않았더라면 삽시간에 읍내 시가지의 번화한 물결 속에 마을의 구심점 하나 마련 못하고 마을의 정체성도 고스란히 사라질 터였다.

아주 오래된 역사가 있던 마을도 아니었고 맨 처음에는 경부고속도로 개발하면서 이래저래 밀려나고 쫓겨난 사람들의 거처로 화전민들이 모여살던 곳이었다.

이름하여 새마을 주택이다. 이 새마을 주택은 양수1리와 경계지점인 끝자락에 위치한다. '새마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 주택들은 옥천읍 양수2리에서 제일 오래된 집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마을 터줏대감들이 모여 산다.
▲ 양수2리 마을회관에 모인 주민들이 담소를 나누는 모습

마을회관에 찾아간 날도 양수2리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는 여든 일곱 우종남 할머니를 비롯해 이기준(67), 배춘자(77)씨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기준씨는 "우리 마을은 다 좋은데 새마을 주택 올라가는 길이 너무 좁아 불이 나면 소방차도 못 들어와 홀라당 타게 생겼다"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연신 이야기 한다. 이사할 때도 다 손으로 집어 날라야 한다고 이야기 좀 신문에 꼭 써달라 부탁하신다.

새마을 주택이 끄트머리라면 군인 주택은 그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양수2리 시작점 근처이다.

군인주택의 어원은 이렇다. 예전에 월전리 군부대 하사관들이 양수2리에 모여 살았다. 똑같이 비스듬한 집을 짓고 살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군인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이름은 군인주택이다. 읍내에서 택시타고 군인주택 가자고 하면 택시기사가 알 정도다.

군인주택과 새마을 주택의 가구수는 열다섯가구 정도로 비슷하다.

■ 도심 변두리 개발로 새로 만들어진 마을

이처럼 1970년대 새마을 주택과 군인주택 건립을 계기로 조성된 마을인 옥천읍 양수2리는 현재 200여 가구에 600여 명 이상이 살고 있지만 마을 일에 관심있는 사람은 적다고. 그래도 마을에 뼈를 묻고 살 사람들은 어찌 됐든 같이 모일 곳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만나서 모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을회관을 짓자고19년 만년 이장 염동오 이장은 깃발을 들었다. 수몰된 강 건너 고향 군북면 용호리의 아픔을 또 재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2009년 3월 그는 도로가에 허름한 게시판을 직접 만들어 펼침막을 내건다.

'양수 2리 마을회관 신축기금을 모금합니다'

■ 흩어진 주민 마음, 마을회관 신축기금으로 모아져

거기에 기적같이 빼곡하게 이름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손글씨로 삐뚤빼뚤 이름과 기금이 나란히 적혔다. 십시일반하면 된다는 뚝심으로 그는 그렇게 마을주민들과 더불어 3천150만원을 모아냈다.

그 때 일을 도왔고 8년 넘게 호홉을 맞춰왔던 박명자(68) 새마을 부녀회장은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한다. "동네 방네 고샅고샅을 다니면서 마을 기금을 모으러 다녔던 때에요. 다 어려운 살림 살이에 그래도 마을 회관 하나 만들겠다고 쌈짓돈을 모두들 꺼내 주었지요. 참 감사해요."

그녀는 그 때도 앞장서서 같이 했지만 요즘도 수,목요일마다 복지관에서 밑반찬 봉사 일을 하는 등 마을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는 살림꾼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들이 모아진 것이다. 그렇게 해 2009년 8월28일 동네 뒷산 삼성산 정기를 오롯이 받아낸 양수2리 마을회관을 신축했다.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가서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모였다.

아파트건 주택이건 마을회관 안에서는 다 같은 주민이었다. 아파트 주민 대표자 회의도 했고 동네 마을 할머니들 단골 놀이터가 됐다. 할머니들은 따로 돈을 내지 않았다. 마을회관에서 먹을거리를 스스로 충당했다. 열 대여섯명의 마을회관 터줏대감 할머니들은 양수2리에 있는 빈 종이 상자를 죄다 수거해서 모아냈다.

모아놓은 것은 고물상에서 알아서 수거해 갔다. 그렇게 해서 한달에 많이는 20만원 적게는 6-7만원 정도 수입을 냈다.

그 돈으로 가끔가다 고기도 먹으며 몸 보신을 했던 것이다. 마을회관에 들른 그날 점심도 폐지 모은 돈으로 오리고기를 사서 모처럼 몸보신을 두둑히 하고 계셨다. 그리고 나서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나란히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스르르 베개를 베고 잠에 빠지신다. 맛있기로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꿀맛같은 낮잠이다.

이렇게 같이 모여 재미지게 사는데 돈 하나도 안 들면서 먹고 자고 이야기도 하면서 지내는데 마을회관이 없더라면 지금의 삶은 어땠을까? 마을회관은 정말 주인처럼 사는 사람들을 주인처럼 대접받게 했다.

늘 귀퉁이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하게 한게 아니라 마을 한 가운데 가장 전망 좋은 곳에서 주인처럼 대접받게 한 것이다. 양수2리의 시계는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 2009년 훤하게 4차선으로 뚫린 마을 앞 도로

■ 2009년 도로 확포장으로 마을 풍경 달라져

기실 양수2리는 몇 년 새 상전벽해 격세지감으로 변한 마을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한 할머니 사촌이 몇 년 새 와서 그 마을이 아닌가벼 하고 다시 돌아갔던 일화를 아주 구수하게 늘어놓으신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커녕 좁다란 2차선도 제대로 못그은 채 간신히 지나갔던 먼지만 풀풀날리고 다녔던 자동차 도로가 무지막지하게 커진 4차선에다 인도와 자전거도로까지 덤으로 생겨났던 것이다. 너무 넓게 감플 정도로 도로가 생겨나긴 했지만 그 전에는 인도가 한 뼘도 없어 등교하던 아이들이 늘 아슬아슬 위태롭기 그지 없었다. 걸어가는 아이를 보던 학부모 마음이 조마조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뻥 뚤릴 줄 누가 알았더냐. 후미진 골목골목의 마을이 느닷없이 4차선 대로를 가진 마을이 되버린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무엇보다 너른 인도가 생겨서 좋다. 그리고 마을 회관이 마을 한가운데 삼성산 정기를 받는 곳에 생겨서 더할 나위없이 좋다.

마을회관에 태양광 발전기도 설치되고 마을 이장은 수계기금으로 마을회관 살림살이를 최신식으로 장만하는데 재미가 들렸다. 2009년은 그야말로 새로운 양수2리가 태어난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생기고 마을회관이 만들어지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은 많이 올라갔다고 말한다. 이제 떠나고 싶은 마을에서 머무르고 싶은 마을로 조금씩 변모된 것이다.

▲ 양수2리 전용 게시판. 올해 어버이날 찬조금 명단이 적혀있다.



■ 정겨운 친구같고 자식같은 마을 이장

▲ 염동오 이장
58세 홀로 사는 총각 이장은 나이든 할머니들한테 서슴없이 엄마라고 부른다. 이물 없어 그렇게 둥글둥글 지낸다. 할머니들이 그렇게 모여 밥해 먹고 폐지줍고 스스로의 일상을 상부상조하며 자립적으로 해오신 것을 보면 그냥 그대로 마음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단다.

"마을 할머니들한테 두 가지만 당부하고 있어요. 어머님들 외부에서 높으신 양반들 와도 뭐해달라 뭐해달라 절대 말하지 마셔요. 그리고 마을회관에서 우리끼리 한 이야기들은 외부에 또 이야기하지 마시고요." 이장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자립을 지키고 고연한 험담으로 갈등을 일으키지 말자는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모았던 이장이 손수 만들었다는 그 게시판에는 지난 어버이날 찬조를 했던 마을 주민 이름들이 빛 바랜 채로 쓰여있다.

이번에는 금액이 안 적혀 있다.

"괜히 금액을 적어놓았더니 누구는 얼마내고 누구는 얼마냈다더라며 마을 인심만 사나워지더라구요."

그래서 안 적었단다. 하긴 누가 얼마냈는지 무엇이 중요할까 그리 마음을 보탠 것만으로도 배부른 것을.
마을 이장은 그 게시판을 지우지 않는다. 가만히 햇볕에 놓아두면 절로 지워진단다. 지워질 때쯤 또 행사가 열리고 새로 또 적는다. 말하자면 사람이 쓰되 자연이 지워주는 것이다. 게시판은 마을을 그렇게 지켜내고 있었다. 모두에게 알리고 모두의 마음을 모아낸 게시판은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오롯하게 적은 채로 지워질 날을 또 새롭게 적혀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수2리 마을회관 입구에는 '꿈과 희망이 있는 양수2리 마을'이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만년 이장 염동오 이장은 양수2리 마을에서 마을을 지켜낸 산과 주민들의 정기를 받아 훌륭한 사람이 이제 태어날 거라고 그래서 그렇게 또 마을을 살릴거라고 기대를 넘어 확신을 가지며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마을회관 옆 양수2리 마을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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