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산악인, 백두대간을 오르고 있다
4명의 산악인, 백두대간을 오르고 있다
함께사는 세상 [28]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3.31 00:00
  • 호수 5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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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룡산악회 회원들로 구성된 4명(좌로부터 박무종, 박대용, 김병일, 양기환)의 백두대간 종주팀이 지난 27일 삼봉산에 올랐다.
신풍령(일명 빼재) 휴게소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9시30분.

도로변에서 등산화의 끈을 고쳐 묶고 바로 산 아래를 치고 오른다. 잘 닦여진 등산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편하지 못한 길이다.

부지런히 일행을 쫓아 올랐지만 잠깐 사이에 일행을 놓쳐버리고 길도 잘못 들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에게 짐이 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초반부터 사고를 친 듯해 미안함이 가득하다. 휴대전화로 길을 확인해 올라간 길을 되짚어 오니 일행들이 기다려주고 있다.

수령봉에서 조금 더 오르자 큰 바위 두 개가 나타난다. 잠시 땀을 식히며 과일을 나눠 먹고 힘들지 않을 만큼 오르막길을 오르자 바로 삼봉산(1,254m)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나라에 얼마나 산이 많은지 실감이 난다. 어지럽게 얽혀 있는 산줄기들은 나름의 조화가 있는 듯하고 그 웅장함 놀랍기만 하다. 그 사이사이로 기대어 앉아 있는 마을들은 그렇게 편해 보일 수가 없다. 3월을 넘어 본격적인 봄소식이 들려오긴 해도 불어오는 산바람은 제법 차가워 금새 땀이 식어버린다.

11시40분, 소사고개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하산을 했다. 내려간다는 말에 오르는 길보다는 조금 편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절대로 아니었다.

경사가 급한 것은 둘째치고 녹지 않은 땅과 쌓여 있는 눈들로 두 다리와 팔이 잔뜩 긴장해 더욱 몸을 힘들게 한다. 산자락이 완만해지면서 나타난 수만 평의 밭길을 걸으니 몸만 피곤하지 않다면 친숙한 시골길을 걷는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소사고개에서 다시 대덕산으로
일행들보다 늦게 소사고개에 도착하니 시간은 12시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삼도봉으로 오르는 초입에서 점심을 먹고 긴 휴식을 가졌다.

1시30분, 다시 배낭을 짊어지고 먼저 백두대간을 종주한 산악인들이 나뭇가지에 묶어 놓은 리본을 따라 대덕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락 내리락을 얼마나 했을까 펼쳐져 있는 갈대밭이나 하늘에 눌려 제대로 자라지 못한 대나무밭을 구경할 겨를도 없이 대덕산(1,290m)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행들과 만났다.

숨이 턱에 차 올랐지만 이미 넘어온 삼봉산을 바라보니 쑥스럽게도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인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며 격려해주는 일행들의 말에 힘을 얻어 덕산재를 향한 하산길에 들어섰다.

삼봉산에서 내려올 때보다 길이 한결 편하기는 했지만 역시 어설프게 녹은 땅은 주변의 나무를 잡지 않으면 내려가기 힘들만큼 미끄러웠다. 멀리 차를 세워둔 덕산재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내려가는 길은 더욱 고달팠을 것이다. 차에 짐을 싣고 기다리는 일행들은 제일 늦게 산에서 내려서는 기자에게 `고생했다'며 환하게 웃어준다.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7시간동안 넘어온 산을 뒤돌아보며 귀까지 걸리는 입을 도저히 막을 수는 없었다. 산행을 마친 일행은 바로 경북 김천시 지례면으로 향했다. 지례면에서 유명한 지례돼지고기와 함께 하산주를 마시기 위해서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거쳐가는 각 지역의 향토음식과 함께 하산주를 마시는 재미가 없으면 아마 힘들어서 종주 못할걸요" 이렇게 하산주를 마시는 것으로 백두대간 종주 제6구간인 신풍령에서 덕산재(제12소구간)까지 13.4km 구간의 산행은 끝났다.

▶2년 계획으로 백두대간 종주길 나서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입술 밖으로 되뇌면 왠지 모를 친숙함과 함께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학교에서 배운 `태백산맥'이니 하는 `산맥'이라는 명칭과는 분명 그 격이 다르며 가슴에 닿는 느낌도 사뭇 다르다.

더군다나 분단으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민족의 줄기를 한번에 밟아 올라가지 못한다는 아픈 현실이 이런 설레임에 무게를 더하는지도 모르겠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리산 종주를 끝내고 한번쯤 백두대간 종주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도상거리 640km의 백두대간 종주는 섣불리 시작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옥천에서 처음으로 이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산악인들이 있다. 장룡산악회(회장 이옥환) 회원들로 구성된 박무종(55), 양기환(53), 박대용(47), 김병일(42)씨가 그들이다. 작년 10월30일, 2박3일간의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이들의 백두대간 종주는 내년 11월까지 2년간의 계획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팀의 팀장격인 박무종씨가 장룡산악회의 동료회원인 이들에게 백두대간 종주계획과 함께 동참의 뜻을 물었을 때 망설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모두들 그만큼 산을 사랑하고 가슴 속으로 이미 백두대간 종주의 꿈을 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 종주는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죠.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우리나라의 등줄기를 걸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팀 중 가장 연장자인 박 팀장이 밝힌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이유다.

▶`산의 매력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몰라요'
이렇게 산에 대한 애정으로 4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적지 않은 나이의 옥천지역 산악인들 4명은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한 산악인의 `그곳에 산이 있어서 오른다'는 말처럼 힘들게 넘어온 산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쾌감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느끼지 못하죠."

이번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4명의 산악인들은 모두 산이 주는 이러한 매력에 흠뻑 빠져 있기 때문에 백두대간 종주라는 쉽지 않은 일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팀의 막내인 김병일씨는 산에 오르면서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올라야 하는 산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그 준비가 항상 철저해야 돼요. 자연에 순응하지 못하고 교만하면 반드시 낭패를 보죠. 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겸손한 마음으로 산에 오르면 산은 반드시 마음을 열어 줍니다."

4명이 함께 진행하고 있는 큰 계획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배려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한 사람이 낙오하거나 몸이 아프면 전체 계획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백두대간 종주에서 팀웍이 상당히 중요해요. 그 만큼 자신의 생활에 대한 절제를 하게 되죠. 산행이 계획되어 있으면 스스로 알아서 컨디션 조절을 해야하니까요."

27일 산행에서 시종일관 선두에서 묵묵히 일행을 이끌었던 박대용씨의 얘기다. 이들이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후배 산악인들을 위해서다.

"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젊은 세대들은 아직도 등산의 참 맛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번 우리의 백두대간 종주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늘리고 후배 산악인들에게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양기환씨의 말대로 옥천에서 뒤를 이어 백두대간을 종주할 후배 산악인들을 위해 이들은 경비와 계획, 구간별 종주시간과 주의점 등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아내와 장룡산악회 회원들의 격려 큰 힘
이들에게는 장룡산악회 회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관심과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다. 장룡산악회 기구에 백두대간 종주팀을 꾸려주고 격려금을 모아 주는 것까지 모든 것이 고맙기만 하다.

"얼마 전에 약 30만원 가량의 격려금을 모아 주었어요.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쓰겠어요" 이들 백두대간 종주팀은 동료 산악인들이 모아주는 격려금은 사용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아직 격려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획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그 돈을 모아 상을 제정하는 등 산악인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데는 의견을 모은 상태다. 또 이들이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산에 오를 때마다 따뜻한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챙겨주는 아내다.

"보통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출발하면 도시락과 아침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서 아내들은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일어나야 되거든요."

한 달에 두 세 번씩 산을 찾아 떠났다 돌아오는 남편을 이해해주는 것도 고맙지만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과 아침식사를 챙겨주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 구간을 총 29구간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55 소구간으로 나누는 것을 기본계획으로 이들은 지리산, 봉화산, 백운산, 남덕유산을 지나 27일 현재 제6구간(12소구간)인 대덕산을 넘어 덕산재까지 약 130km 구간의 종주를 마친 상태다.

남북 분단으로 백두대간의 절반밖에는 종주를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이들이 종착지점으로 계획하고 있는 진부령(529m)까지 무사히 종주를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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