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안남면 연주리 피실여울, 괴생이여울, 갈마골여울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안남면 연주리 피실여울, 괴생이여울, 갈마골여울
  •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 승인 2012.06.01 10:55
  • 호수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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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사무소-비들목재-주봉-피실여울-괴생이여울-갈마골여울-독락정-안남면사무소 구간 12km

피실여울은 전설적인 여울입니다. 아마도 이원면 원동리와 지탄리를 잇는 오배거리여울과 함께 우리 고장에서는 가장 많은 통행량을 자랑했을 뿐만 아니라 옛날에는 버스까지 건넜던 여울로 이름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피실여울을 건너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태 전 7월에 무릎까지 오르는 강물을 건너 피실여울을 건너는 소중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괴생이여울, 갈마골여울까지 이번에 보는 여울은 다들 예쁜 우리 말로 된 여울이지요. 여울에 볼거리, 먹을거리가 빠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 고장 제1의 주민자치 일번지 안남면을 다시 들여다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안남면 산수화권역추진위원회가 멀지 않은 과거에 섰던 안남 배바우장의 흔적을 더듬어 세운 안남장을 구경하고 전국적으로 관광 명소가 되어 있는 등주봉(둔주봉)에 올라 한반도 지형을 보며 우리 고장 아름다운 풍광도 되새겨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여울지기 정수병씨를 비롯해 서른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번 여울길에 동행했습니다. 늦었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느릿하게 걸어도 여유로운 편한 길이었습니다.

※6월부터 매달 둘째주 토요일로 여울길 걷기를 변경합니다. 6월9일(토) 오전 9시30분 옥천읍사무소 주차장. 석탄리 임도 따라 한반도 지형 속으로 청미리 갈마골로 걸어 갈마골 여울 갑니다.

■ 피실여울
안남면 연주리에서 금강을 건너 동이면 석탄리 피실마을로 건너가는 여울이었다. 면사무소가 있는 연주리 배바우에서 비들목재를 넘으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으로, 옛날부터 안남에서 옥천읍으로 나가는 큰 길이었다. 고향 안남에서 옥천읍으로 가려는 여울길 단골 손님 이병훈 옥천새마을금고 전 이사장도, 안후영 옥천향토사연구회장도, 여울지기 정수병씨도 이 여울을 건너 안남이나 안내로 향했다. 한국전쟁 후 버스가 피실여울에 와서는 큰 배에 올라타 안남으로 건넜던 기억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 피실여울에서 정수병씨가 여울 설명을 하고 있다.

■ 괴생이여울
안남면 연주리 괴생이마을에서 동이면 석탄리 피실로 건너갔던 여울, 피실여울에서 약 2km 가까이 금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괴생이여울이 있다. 연주리에 속해 있던 괴생이(고성)마을에는 옛날에 몇 가구 되지 않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지금은 빈 집이 한 두 채 남아 있다. 이 여울을 건너면 고개를 넘어 석탄리로 이어진다. 강 건너에서 보면 강변으로 올라서는 지점 쯤에 산등성이를 네모지게 깎아 만든 고개가 보이고, 그 고개를 씨구목이라 했다. 그 길로 내려가면 지금은 수몰되고 없어진 석탄리 덩기미 마을에 다다른다. 이 여울로는 연주리 독락정이나 도덕리, 종미리 쪽 사람들이 옥천읍에 갈 때 이용했음직한 여울이다.

■ 갈마골여울
안남면 연주리에서 동이면 청마리 갈마골로 건너가는 여울이다. 청마리 갈마골에서는 이 여울을 통해 건너오거나, 배를 이용해 건너오는 방법 밖에는 통행 방법이 없었고, 지금도 갈수기에는 수위가 낮아져 여울을 건널 수 있다.

■ 안남장이다. 배바우장.

안남이 한창 컸을 때는 인구가 1만명에 달했다 하니 한때 영화를 누렸던 시절도 있었음직하다. 안남 사람들의 기억으로는 불과 30년 전만 해도 우시장은 물론 닭전, 돼지전도 열렸고, 단오나 백중 때에는 씨름대회가 펼쳐졌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시기도 있었다.

장이 펼쳐져 있다. 우선 안남면 산수화권역추진위원회가 배바우장을 매달 한 번씩 넷째 주 토요일에 서기로 하고, 천막을 치고 물건을 내놓았다.

안남에서 나오는 토마토와 보리쌀-보리쌀은 햇보리가 나올 시기가 돼서 할인행사 중이다-에 콩, 집에서 담근 된장, 미나리 등 주로 농산물이고, 옆에서는 부침개와 막걸리도 판다. 주민들이 농산물 등 상품을 들고 나오고, 주민들이 사간다. 매월 한 번씩 토요일에 하는 것이니, 등주봉을 찾는 관광객들이 주요 고객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배바우장에서만 통용되는 지역화폐를 사서 장을 보면 기본으로 20%는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다.

송윤섭 위원장으로부터 배바우장을 되살린 설명을 듣고 장 구경을 하며 이것저것 구입하고 나니 저마다 한 보따리씩은 된다. 배바우장에서 산 물건을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장꾼들에게 맡기자고 하니 안남면사무소에 놓겠다 한다.

등주봉에 올라가 먹을 부침개와 막걸리를 사들고 오르는 길. 고갯마루에 오르니 바로 비들목재다. 이름이 비둘기와 비슷하다, 비둘기가 많다는 등의 설명이 있던 곳인데, 안남에서 흔히 비가 오려면 비구름이 이 고개를 넘어야 안남에 비를 뿌린다는 말에서 유래를 찾아 '비들목재'라고 했다는 설명을 덧붙이니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비들목재. 참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정수병씨는 비들목재에 전하는 또하나의 전설을 입에 올린다. 옛날 아무 것도 가진게 없이 가난했던 어떤 사람이 이 고개에 올라 "여기도, 저기도 내땅" 하며 잘 될 날을 소망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을 떠난 그 자리에 산소를 썼음에도 자손들이 잘돼 양조장을 운영하는 등 안남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는 얘기다. 안남면에 실제 살고 있는 이가 주인공이 된 얘기라 더 재미있고, 솔깃하게 들린다.
▲ 등주봉에 오르기 전 참가자들이 배바우장터에서 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


■ 등주봉에 오르는 길.

둔주봉(屯駐峯)은 머문다는 의미 밖에는 없는 지명이지만 등주봉(登舟峯)은 배가 오른 산이란 의미이니, 배와 연관된 지명이 많은 안남면과 확실한 연계성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에 동감하며 등주봉이라는 지명을 더 쓰려 의식적으로 노력을 한다. 배바우는 배를 묶는 바위라는 의미에서였고, 곧 대청호가 생기면서 면사무소 앞까지 물이 들어차는 상황을 미리 내다봤다는 말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었다.

등주봉은 이많은 사람들을 안고도 전망대를 통해 한반도 절경을 보여주며, 또 전망대 바로 아래 황금소나무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정상은 성터여서 연주리 고성이라는 마을이 있게 했고, 고성은 나중에 음운변화로 인해 괴생이라는 새 지명을 얻게 되었다.

등주봉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인증샷을 날린 후 일행들은 본격적으로 여울을 찾아나섰다.

비들목재로 돌아와 피실여울로 내려가는 길.

▲ 산뽕나무에서 발견한 산누에 모습
뽕나무에 달린 오디가 익어가는 모양을 보느라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늦어졌고, 드디어는 산누에를 발견하게 되었다. 신기하다. 사람들이 기르는 누에만 생각했지, 아직 산뽕나무에 산누에가 살고 있으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일행은 영낙없이 나뭇가지와 똑같은 보호색을 가진 이 신기한 산누에를 사진기에 담기에 바빴고, 카카오스토리에서는 산누에 사진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피실여울이다.

여울지기 정수병씨가 피실여울에 대한 설명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여울 건너 피실에 가있다. 이곳이 옛날에는 버스까지 다니던 길이란 사실이 사람들은 잘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인 걸.

피실여울 옆 등주봉 산기슭에서 맛난 점심을 나눈 일행은 이제 금강을 따라 등주봉 둘레를 걷기에 나선다. 강기슭을 따라 안남 사람들이 개설해놓은 등주봉 둘레길은 아름답다. 시원하다. 가끔은 산인가 싶지 않게 갈대가 나 있어 금강변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등 운치까지 있다.

괴생이마을을 지나 갈마골여울, 독락정을 거쳐 일행들의 발걸음은 안남면사무소 앞에 돌아와서 다음 여울길을 기약했다.
 
▲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있는 참가자들의 모습.


▲ 박무순, 이경수, 김경자씨
30년만에 만난 고향 친구


"우리 30년만에 처음 만나 등주봉에 올라오게 됐어요." "저는 고향이 여기지만 등주봉에 오르기는 처음이에요."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고향에 와서 이렇게 걸어보니."

고향 친구 세 사람이 30년만에 만나 함께 길을 걸었다. 안남면 도덕리 출신 이경수(관성지업사 대표. 사진 가운데)씨와 고향 친구인 박무순(청주, 사진 왼쪽), 김경자(대전, 사진 오른쪽)씨 세 사람이 만난 것은 5월 여울길이 거두어 올린 최대 수확이다.

"저로서야 이번 여울길이 최고지요. 그동안 가끔 통화만 했는데 여울길이 있다고 함께 갈까 했더니 이렇게 왔어요. 제일 큰 수확이었어요. 다음에도 연락을 주면 온다고 하니 반갑게 맞아야지요."

각자 느낌이 똑같을 수는 없으나 이들은 서로 반가워했고, 기뻐했다. 여울길을 통해 만난 고향 친구들의 우정이 앞으로도 지속되길 기원하는 마음 한가득이다.

 

▲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에 참가한 주민들이 피실여울을 지나 안남면 생태탐방로를 걷고 있다. 

▲ 피실여울.

▲ 이날 여울길에 참가한 두 중학생이 역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안남면 등주봉 정자에서 바라 본 역한반도 지형.

▲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 막바지에 지난 독락정.

▲ 여울길에 참가한 주민들이 등주봉 정상에 올라 피실여울을 바라보고 있다.

▲ 정수병씨가 괴생이여울 앞에서 여울과 관련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고 있다.

▲ 여울길에 참가한 주민들이 등주봉 정상에서 찍은 단체사진.

▲ 안남면 생태탐방로를 걷고 있는 여울길 참가자들의 모습.

▲ 안남면 연주리 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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