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띠 귀농인 전갑수씨
뱀띠 귀농인 전갑수씨
함께사는 세상 [20]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1.01.20 00:00
  • 호수 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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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안고 귀농한지 1년째인 전갑수씨. 그동안 남은 것은 1억원의 빚 뿐이라고 말한다.
"뱀띠 해라고 해서 뭐 특별한 것은 없어요. 계획을 세워봤자 더 큰 빚만 생기는데 계획을 세울 수 있겠어요."

신사년 설을 앞두고 만난, 1965년생 뱀띠 농민 전갑수씨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올해의 계획이다.

애초에는 버섯 막사를 4동 정도 더 지을 생각이었지만 지금 버섯 시세로는 또 한 번 큰 배신을 당할 것 같아 그것도 포기했다.

이제 더 이상 귀농 첫 해처럼 `열심히 일 하면 성공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숙맥처럼 믿지 않는다. 몇 년의 경험을 통해 그 슬픈 진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씨는 한 때 사회적 관심을 받았던 바로 그 귀농인이다. 아이엠에프 시대에 자신의 직장을 잃고 고향을 찾아가 땅에서 또 다른 `희망'을 찾는다며 호들갑스럽게 소개되곤 했던 바로 그 `귀농인'.

하지만 우리는 그 때만큼 `귀농인들이 다시 도시로 향하고 있다'거나 `엄청난 빚을 지고 가진 것을 모두 날려버렸다'는 뉴스를 호들갑스럽게 듣지 못했다.

"저는 그렇게 일찍 `희망'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요. 1년도 채 못 버티고 받았던 귀농정책자금을 일반대출로 갚아버리고 떠난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희망을 찾아 귀농한 지 1년째, 하지만 남은 것은 1억원의 빚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고향을 떠났던 전갑수씨는 대전에서 자리를 잡고 버스운전과 화물차 운전을 하면서 생활했지만 고향인 군서면 은행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었다.

그러던 중 교통사고로 8년간 투병생활을 하던 전씨의 아버지를 간호하다 어머니마저 식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게되었다. 5남매 중 막내였던 전씨는 결혼 전 약속대로 아내 박미라(33)씨와 용현(11), 성현(7)형제를 데리고 97년 고향에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와 전씨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집 한 채와 땅 한 마지기. 평생 `경운기' 하나 사는 것도 큰 일로 생각하시며 열심히 사셨던 부모님에게서 받은 전부다. 그것으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전씨는 농협에서 2천만원의 일반대출을 받아 농사지을 준비를 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조금 있으니 교육만 받으면 5% 저리의 귀농정책자금을 빌려준다고 해서 교육도 받고 2천만원의 자금도 지원 받았다. 여기에 농업경영인 신청을 해서 3천500만원을 받아 땅도 샀다.

또 버섯이 괜찮을 것 같아 버섯 막사 짓느라고 일반대출 2천만원, 버섯막사에 수막시설 하느라 일반대출 1천250만원, 거기에 호박농사 짓고 농기계 구입하느라 일반대출 1천만원.

이렇게 더하다 보니 어느덧 빚은 1억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 때는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열심히만 노력하면 빚도 갚고 살기 힘들다는 농촌에서 떳떳이 살수 있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로 정책 자금 받지 말아라' 후배 귀농인에게 해줄 수 있는 말
아내 박미라씨와 함께 호박 하우스에서 살다시피 하며 뼈 빠지도록 일을 했다.

하지만 호박 농사와 채소 농사를 져서 손에 쥔 것을 계산해보니 150만원 남짓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인건비, 하우스 재료비 등을 주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면 뭐해요. 땅에서 하루종일 뒹굴며 최상품을 만들어내도 그 해가 풍년이면 나만 풍년이 아니더라구요. 또 흉년이면 다 같이 흉년이구요(웃음)"
농사를 지어보니 풍년이면 가격 떨어져 울상, 흉년이면 생산량 떨어져 울상. 이래저래 농민들은 울 일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전씨는 결국 귀농 첫 해에 꿈꾸었던 `희망'의 거의 대부분을 지금은 버렸다. 얘기 끝에 전씨는 만일 시골에 농사 지으러 오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단다.

정부에서 `30% 보조'니 `저리 자금이니' 하면서 쓰라고 건네주는 정책자금은 절대로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게 사람 발목잡고 자살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돈이더라는 것이다.

정책자금은 연체이자를 낳고 결국 상환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중에 농기계며 집이며 논이며 전부 빼앗기고 신용 불량자 되어서 절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돈이라고 전씨는 생각하고 있다.

차라리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놀고 있는 땅 찾아서 열심히 개간하고 농사져서 스스로 일어서라는 말을 하고 싶단다. 이것이 먼저 농촌에 돌아온 전씨가 귀농 4년 차에 혹시라도 있을 후배(?) `귀농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얘기다.

▶도시로 나가고 싶지만 실낱같이 붙들고 있는 땅에 대한 `희망'
전씨는 지금도 매일 도시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긴 하지만 아직도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지금 짓고 있는 벼농사의 규모를 2만이나 3만평까지만 늘리면 10년 안에 빚도 갚고 도시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 정도로 어지간히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전씨는 포도농사도 호박농사도 모두 걷어 치웠다. 그리고 돌밭이 되어버린 산밑에 비탈논과 천수답 등 1만평을 얻어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흙투성이로 뒹굴며 벼농사를 짓고 있다.

"나가는 것이 현명한 것일 수도 있어요. 가지고 있는 재산 처분해 빚도 갚고...아내는 지금이라도 아이들하고 도시에 나가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쉽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꼭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고향에서 살고 싶었거든요."

전씨가 고향과 땅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붙들고 있는 그 실낱같은 희망과 고향에 대한 애정이 무모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주는 것은 전씨 혼자만의 몫은 아니다.

`농정을 펼치는 윗사람들을 데려다 논바닥에 열흘만 쳐 박아두면 지금과 같은 농정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크게 웃는 전씨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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