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면 답양리 양지골~보은군 회남면 은운리~회남면 분저리 대청호-가산천 합수지점~회남면 분저리 마을회관 구간 9km |
하늘이 맑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이런 날씨는 걷기에 최고다. 옥천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옥천읍사무소 주차장. 참가자들이 다소 썰렁해보인다. 아무래도 전날 늦게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산수원산악회 멤버들이 누적된 여행 피로 때문에 참가하지 못한 탓이다. 꾸준히 참가해 활력소를 제공하던 멤버들이 나오지 않아 버스가 출발할 시간대쯤 연락을 해보니 돌아온 답변이었다.
그래도 19명의 일행이 버스에 들어찼다.
옥천읍내를 빠져나와 안내면 답양리를 향해 버스는 달리고 있는데 지난 여울길에 함께 했던 조명수(공무원 퇴직)씨가 떡을 한 상자 갖다놓으며 '지난번 정말로 잘 얻어먹어서 해왔는데 한 개씩 나눠먹으라' 한다. 웬 떡이야?
이번 여울길을 지난달 군북면 용호리부터 걸어 마감했던 안내면 답양리 양지골부터 걸으려 했지만 양지골부터 보은군 회남면 은운리 경계까지는 아스팔트 길인데다 사실 거리도 얼마 되지 않기에 시내버스가 갈 수 있는 한계인 은운리에서 버스를 내렸다. 안내면 답양리와 경계라, 자연마을 이름이 '지경리'이다. 땅의 경계라는 얘기일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 일행들에게 나누어주는 백설기는 조씨의 마음을 아는 듯 따뜻했고, 걷기에 앞서 일행들의 마음은 물론 뱃속까지 따스하게 덥혀준다. 백설기와 대청호주민연대가 준비한 물과 간식 등을 각자 챙겨 걷기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오늘 확인하려는 여울은 군북면 대정리와 용호리를 잇는 방개여울(쑥개여울)과 안내면 답양리와 보은군 회남면 서탄리를 잇는 배내미여울, 서당편여울 등 세 곳. 그러나 이들 세 여울을 걸어서 접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청호 수몰로 인해 강변을 따라 갈 수 있는 길이 없는데다 가려 해도 산 등성이를 따라 등산로도 없는 성골로 내려서는 등산을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멀리서나마 여울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길을 택했다.
그 길은 보은군 은운리를 출발해 가산천을 따라 분저리까지 이어지는 산길이다. 이 길은 대청호가 생긴 후 은운리와 분저리를 이을 목적으로 새로 낸 이설도로이다. 충청북도 지방도로 지정돼 있긴 하지만 비포장에다 이번 여름 세찬 비로 인해 노면이 많이 패여 승용차로 가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 길이다. 그런데 승용차로 가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이 길이 걷는 데에는 그만이다.
은운리, 말그대로 구름도 숨어간다는 은운리 아닌가. 길은 가산천을 따라 대청호로 흘러들 듯이 흐른다. 가산천을 왼쪽에 두고 걸으면 보은 땅이요, 가산천이 오른쪽으로 있으면 그건 옥천땅이다. 그렇게 보은과 옥천땅을 번갈아 걷기를 몇 번. 은운리 언목마을로 올라서며 비로소 하류로 내달리는 가산천과 방향을 달리해서 산길로 향한다.
산길은 그동안 바삐 살아오느라, 돈 걱정에다 자식 걱정에다, 온갖 걱정에 시달리느라 가을을 느끼지 못한 일행에게 문뜩 가을을 선물한다. 은운리-분저리간 산길은 대청호의 절경을 감상하며 걷는 최고의 가을길이다. 벌써부터 길가 대추나무 밑에 떨어진(?) 진짜 달콤한 대추를 주워먹고, 가산천 주변에선 으름에다, 밤 주워먹고, 은운리 언목마을에서는 호두와, 길에서 산초 열매까지 수확한 일행들에게는 여유로운 여울길.
이런 여유를 언제 가졌더라?
산길에 문뜩문뜩 피어난 쑥부쟁이에, 길가를 하얀 색으로 도배하고 있는 청초한 구절초 무리들이 '왜 이제야 가을을 느끼나'라고 말하는 듯 하다.
어느덧 여울길 최고의 전망대에 다다랐다. 앞이 탁 트인 산소 자리가 자연스러운 전망대이다. 여기서 보면 답양리에 걸쳐 있는 여울 현장을 어림잡아 설명할 수 있으니 최고의 자리다.
가을은 산길에 널려 있고, 일행은 지친 기색없이 분저리에 도착한다.
보은군 서탄리 서당편, 배내미 사람들이 대청호 수몰 이후까지 배를 타고 분저리로 건너와서 회남을 나갔던 호젓한 길을 걸어 가산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이렀다.
가산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지점 절벽에 이르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강 건너는 안내면 답양리다. 가산천이 흘러온 쪽 위를 보니 점심 때 여울 현장을 한꺼번에 조망했던 산소 자리가 올려다보인다. 여울길 답사를 위해 합수지점을 찾았을 때 우연히 만난 김연옥(82, 분저리)씨에 의하면 대청호가 생긴 후 합수지점으로 서탄리 사람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분저리를 통해 외부로 통행했던 길이란다. 한 병 남은 막걸리로 가을 오후의 넋두리를 한다. 대청호 수몰로 인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애환이 어딘들 다를까만 불과 30~40년 전 금강에 살던 사람들이 걸었던 그 길에 퍼질러 앉아 막걸리 한 잔 기울이는 기분은 아쉬움 반, 회한 반이었다.
대정리-서탄리 여울길 추억 들려주는 유지우씨
"여기로 돌아가면 방개여울이 있어요. 용호리 방개마을로 건너는 여울이라 그렇게 불렀고, 여기서는 쑥개여울이라고도 했어요. 그 밑으로 배내미여울, 서당편여울까지 보은 경계까지는 세 개의 여울이 있었어요."
금강 여울길 답사에 나선 기자에게 유지우(76, 군북면 대정리 대촌)씨는 사람좋은 웃음을 보이며 추억 들추기에 나섰다. 방개여울을 건넌 용호리 사람들이 대정리에 와서는 농사를 많이 지었단다. 배내미, 서당편은 보은 서탄리 자연마을 지명이었다는 것도 유씨의 말.
답양리에는 용호리와 경계 산 정상에 삼국시대 성터가 하나 있는데 그 날등으로 골짜기가 깊었고, 성골이라고 불렀다. 성골을 기준으로 상류에는 배내미여울, 하류에는 서당편여울이 있었다. 배내미여울은 용호리 사람들이 주로 서탄리 땅에 들어가 농사짓는 길로, 서당편여울은 반대로 서탄리 사람들이 답양리 성골에 와서 농사를 짓는 용도로 많이 사용됐다.
"막 대청호 건설이 시작됐을 때 용호리, 답양리 산에서 나무를 해서 뗏목을 만들어 그걸 타고 보은 송포리라고 하는 데까지 왔어요. 거기서 차를 타고 오면 되니까. 그때 방개여울을 건너 나무를 하러 갔지요. 고기도 많았고, 참게도 많았지."
유씨가 추억하는 여울에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