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질러간 꼴통들의 부활
시대를 앞질러간 꼴통들의 부활
  • 옥천신문 webmaster@okinews.com
  • 승인 2000.12.09 00:00
  • 호수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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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화로서의 "춤"
학교 생활문제를 가지고 학생들과 짜증스럽고 어이없는 싸움을 하고, 학부모와 신경질적인 언쟁을 하고난 오후 문득 한떼의 학생들이 내년 2월 달에 콘서트를 하고 싶다며 계획표를 가지고 왔다.
`FOD'의 대를 잇는 춤패 `천년일화'팀의 공연기획서였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무언가를 하려는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력한 교사에게 작은 힘이 된다.
 
올 2월 FOD가 옥천에서는 처음으로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춤' 공연을 열었다. 그 때 공연을 보고 아이들과 잠깐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그들에게 뭔가 힘이 되고자 생각했는데 아이들 스스로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갈곳이 없다거나 청소년들이 누릴 문화가 없다는 얘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그래도 청소년들이 좋아하고 스스로 참여하는 하나의 문화로서 `춤'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문화의 생산자로 나선 "청소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영상과 음향으로만 만나는 스타들을 향하여 흥분과 감상적 경도 현상을 보이곤 하는 청소년들(지금의 청소년만으로 한정된 의미가 아니라 모든 시대의 청소년)에 대해 우리가 우려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문화 생산자와 문화 향유자가 완전히 나누어진 것이라는 점에 있다. 스타들을 향하여 자신의 속옷을 벗어 집어던지는 그 무아지경이 무서운 것은 실제로 자신을 내팽개친다는 데 있다.
 
그것이 곧 스타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존재를 제로로 만들어버리는 데까지 나아가며 그것은 곧 실재하는 자신을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자신이 소멸된 가상 세계를 현실로 인정하는 데까지 이르른다.
그것은 정신 착란의 변종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들은 자신을 던지는 행위를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주요 행위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말에서 2000년에 이르는 시기,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문화의 생산자로 세워나가고 있다. 이것은 한국 현대 청소년 문화사에서 하나의 반란이다. 이른바 70년대와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며 꼴통으로 취급 당하던 한세대가 어른이 되어 자신들이 추구했던 문화를 당당한 주류 문화로 일구어 내면서 이를 청소년들에게 감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감염은 종래의 감염과 다른 성격이다. 우리 세대가 송창식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비틀즈의 노래를 듣는 것에 만족하던 것과는 분명 다르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뭔가를 저지르고 있다는 판단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두발 자유화 논란 역시 이런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가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만들며 실제적인 여론의 중심에 서서 행정부의 움직임을 이끌어낸 것이다.
 
두발 자유화에 대한 찬반 의견은 그 다음 문제이다.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은 학생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학생들의 자발성, 능동성이 서서히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짓밟히기 시작한 청소년의 자기 정체성이 3.1운동을 거쳐 광주학생운동을 체험하고 4.19와 광주 민중 항쟁을 통하여 확인되고 확대되어 가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불과 10년 전에 참교육 운동으로 정부의 탄압을 받던 전교조 교사들을 향하여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외치던 모습도 같은 맥락으로 나는 이해한다.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몸짓, 그들의 의미가 분명 한 세계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운동의 중심은 아니었어도 우리의 사회 변혁기마다 10대가 이미 충분히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여기서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동학의 지도자 가운데 10대들이 있었고, 유관순이 십대였으며, 4.19의 거리에 고등학생들이 들끓었으며, 5월 광주의 시위 차량위에서 교련복을 입은 학생들이 외치고 있었다. 10대는 결코 관리의 대상이거나 통제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완벽한 인격체는 아닐 지언정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고 있어야 하며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애써 부인해 온 것이 근대사 100년의 왜곡된 역사였다.
 
그 부인의 주체는 외세일 수도 있고, 지배계층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정치가일수도 있으며, 때로는 부모의 이름으로 때로는 교사의 얼굴로 나타나기도 한다. 소위 미성년자보다 더 깨끗하게 살거나 아름답게 살지도 못하는 기성세력이 스스로의 아집과 무능을 권위로 착각한 채 청소년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해 왔다. 나는 단순히 청소년은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말을 해대며 그들을 마치 자기의 과거형인듯 간주하는 자세를 싫어한다.

▶중앙에서 지역으로
청소년을 학교에 가두어두려는 발상, 청소년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만으로 보거나 그리하여 미성숙한, 그래서 지금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설픈 것이라는 해석 따위는 사실 모두 불온한 사상들이다.
 
청소년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하나의 흐름이 지금 이시기 인터넷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고 청소년들이 스스로 문화 활동의 주체로 나서는 데서 보여지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청소년 문화의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와 같은 중앙 중심적이 아니라 범 지역적이라는 점이다. 그 가능성이 우리에게도, 이 지역에서도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문화의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몇가지 징후들이 지금 옥천에서 벌어지고 있다. 과장하여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찬양되어야 할 것이 비판되어야 할 것보다 많기에 이 자리에서는 가능성과 희망을 어루만지며 지나가고 싶다. 지금 옥천에서 댄스와 보컬, 그리고 문학이 청소년문화의 한 흐름으로 거론될만한 것이라 하겠다.
 
앞에서 얘기한 FOD를 축으로 하는 크고 작은 춤동아리들이 산재해 있다. 물론 많은 부분 기존의 것들을 흉내내고 있는 듯 하지만 그들 스스로 창작을 해내고 있다. 모여서 머리를 짜내고 있다. 작년에 시작된 학생들의 춤 공연은 현재의 청소년들이 텔레비전 영상 문화의 단순한 향유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케 한다.

그들은 구경꾼으로만 존재하기에는 이미 만족할 수 없는 상태이며 자신의 내부로부터 퍼내야 하는 무엇인가가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옥천상고에만도 5개 정도의 남녀 춤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음악 연주 단체가 활동을 전개하여 자신들의 대중을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 연주단체 `낙오자'가 연주회를 한 것을 앞세워 `PH'가 그 뒤에 섰으며, 옥천상고에서도 보컬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몇 년 전부터 지금 옥천의 젊은 글쟁이들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옥천이 정지용의 고향이라는 문학적 토양을 염두에 둔다면 모두가 관심을 가질만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옥천 고등학교 할문학회가 그들이다.
 
옥천지역의 고등학생들이 전국의 문예상을 거머쥐고 그를 바탕으로 수시 입학을 하거나 특차 입학하는 현상은 어디든 지역 나름대로의 청소년 문학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점치게 하는 증거물이다.
그리고 현재 내부 사정으로 주춤거리고 있지만 10년 넘게 지역 청소년 문화행사로 자리매김 되어 온 관성문학회의 시낭송회도 있다.
 
얼마전에는 옥천신문이 주관이 되어 지역 청소년 신문을 만들고자 기자를 모집하였다. 이것 역시 지역 청소년 문화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핵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의 저변에는 교육 당국이 현장 학교를 향하여 학생문화를 키우도록 요구하고 서울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는 그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점도 한 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행되는 이 지역의 청소년 문화 현상의 공통점은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고 있다는 것, 개인 활동 영역이라기보다 단체 활동 영역이라는 점, 학교 밖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옥천의 청소년 문화를 거론하는 중요한 이유는 청소년들이 공연을 기획할 의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스스로 기획하여 진행하는 것도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일들이 어른들의 도움이 없이는 좀 버거운 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금 청소년들의 자발성을 확대시키는 일을 어른들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한다면 청소년들은 쉽게 발판을 마련하여 자신들의 세계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규제가 아닌 지원으로
지역 사회가 지역 청소년의 문화에 관심두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고 청소년들의 움직임에 엔진을 달아주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지역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강력한 동인을 제공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의욕이 없는 아이들에게 의욕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뭔가를 하려는 학생들의 뒤를 밀어주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 교육의 병폐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하려는 일에 대해서, 그것이 공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것이 학생이 할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때로는 어린 것들이 까분다는 이유로, 막으려 하는 일이 더러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불과 십년전에 불량 취급을 당하던 오락이 산업이 되고 만화가 문화가 되는 지금의 현실을 예측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음을 이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청소년들이 하고 있는 일이 옳으냐 그르냐는 가친 판단을 따져 문화를 만들기에는 실제 문화적으로 너무나 황량한 벌판에 있다. 시행착오를 무릅쓰고 하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방향의 교육과 함께 학습자가 스스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밀어주는 역할도 해야하는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청년들의 머리를 정부가 규제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
 
문화가 개인의 자연스런 선택에 의해서 형성되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무식한 군인들의 발상이었음이 그 후 20년의 세월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 장발보다 단발이 더 많다. 그건 하나의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선택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문화 현상인 것. 우리는 청소년들을 향해서도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한다.
 
문화라는 것, 그것은 개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모양을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힘인 것이다. 마침 일부 학교에서 금년에 학생 동아리 활동비를 지급하여 왔다. 내가 근무하는 옥천상고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물론 학생들의 참여도가 낮은 편이다. 아직 그들의 능동성은 더 자극 받아야 할 대상임을 알게 하는 부분이다. 다만 당국은 당국 나름대로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다른 학교에 더 파급되어야 할 것이다. 중학교, 나아가서는 초등학교에도 말이다.
 
우리들의 학생 시절 춤추는 애들은 소위 꼴통이었다. 그 꼴통들이 이제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공개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들은 2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 천재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제 누구도 그것을 `문제'로 거론하지 않는다. 이제 그것은 당당히 그들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당구치는 동아리를 허용하는 오늘의 학교 모습은 불과 10년 전에 하나의 이상이었다.
 
꼴통들이 모여서 하는 가장 불량한 짓으로 간주되어 부정적 청소년의 대표주자로 간주되던 오락실 출입생들이 결국 오락이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해준 것 아닌가. 그들이 10대 아닌가 말이다. 세상은 정말 우리가 예측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아주 빠르게 다른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모여서 할 것이라고는 술마시고 노래방에 가거나 고스톱 치는 정도의 문화를 가진 어른들을 향하여 청소년들이 지금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은 문제점보다 가능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금은 그것으로 벅차다. 좀더 시간이 되면 다른 이야기도 해야할 것이다. 이것 말고도 지역에는 이미 청소년 어울마당을 비롯한 많은 학생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것이 청소년들을 자극하고 옥천 지역의 청소년 문화 활동의 영역을 넓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지역 사회가 이런 청소년들의 활동에 힘을 실어 주기를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나는 지금 내년 2월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후원회를 결성할 것을 제안한다.
 
가장 일차적인 주체는 활동 의욕을 가진 학생들의 학부모들이고 이에 뜻을 같이 하는 단체나 옥천 주민 모두이다. 어른과 학생들이 어울려 연주회를 하고 공연을 하는 홀랜드 오퍼스의 영화 속 이야기를 그야말로 영화 속의 이야기이거나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해버리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내년 2월 학생들의 춤공연이 학생들과 어른들이 모여 한판 춤을 추는 것으로 막을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성장 <옥천상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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