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채소 재배농가 이중·삼중고
시설채소 재배농가 이중·삼중고
  • 이안재 ajlee@okinews.com
  • 승인 2000.11.18 00:00
  • 호수 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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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라도 얻어서 고쳐야 그나마 비닐하우스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겨울 농사는 짓지 않더라도 내년 봄 농사지을 준비는 해야 되잖아요. 빚얻어 시설까지 해놓았는데 땅을 놀릴 수는 없는 거고요."

안남면 지수리 최아무개씨는 지난 96년부터 안남면내 10농가(현재는 9농가)와 함께 시설채소 자동화하우스를 지어 농사를 짓고 있는 농사꾼이다. 지금 최씨는 비닐하우스를 대규모로 보수하는 중이다. 비닐 교체작업은 물론이고 부직포 까지 하우스 뼈대만을 남겨놓고는 대수술을 하고 있다.

하우스 보수를 가장 큰 명목으로 올 겨울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우선 올해들어 기름값이 엄청나게 올랐다. 하우스 시설농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경유 면세유는 기름값 인상 이전 1드럼에 6만9천원에서 8만9천원으로 2만원이 올라 29%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일례로 한 해에 1천만원어치의 기름을 때는 농가라면 290만원의 기름값을 올해보다 더 부담해야 한다. 또 수입오렌지의 영향으로 그가 주작목으로 재배하던 방울토마토 시세가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아 겸사겸사 겨울 농사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기름값이 터무니없이 올랐고 정부에서는 농민들에 대한 별도 지원대책도 없는 데다 농산물 가격도 방울토마토가 지난해 상품의 경우 3만원을 상회했으나 올해는 좋은 상품이라야 1만원, 보통 7천원에서 8천원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폭락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농가들은 손해를 예상하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하우스 농사에 매달리고 있다.

청산면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청산면 지전리에 있는 시설하우스단지에서 시설채소를 재배하고 있는 농가는 9농가. 이들 가운데 한아무개(47)씨는 시설하우스 재배를 시작한 후 빚에 시달리다 살던 집마저 팔았으나 충당을 하지 못했다. 결국은 자신이 어렵사리 샀던 시골의 땅까지 하우스 시설비를 200여만원을 제때 주지 못해 법원 경매에 넘어갔다.

올 겨울 농사때 외상을 진 기름값도 갚지 못한 한씨는 지난해까지 하던 방울토마토를 그만두고 기름값 아끼기 위해 겨울철 작목 중 가장 낮은 기온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딸기를 심었다. 그러나 중국산 딸기묘가 대량으로 수입돼 가격대 형성은 극히 불안한 상황. 청산면 9농가 가운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2농가가 했던 오이 재배는 올해는 1농가로 줄었고 방울토마토 재배농가도 줄었다.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농가도 역시 기름값에 가장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인건비가 오른 것도 이들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안남면의 경우 겨울 동안 내내 써야 하는 일꾼을 하루에 2만5천원은 주어야 구할 수 있다. 지난해 2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25%가 올랐다. 비싼 기름값으로 인해 온도를 낮춰 저온성 병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차라리 놀면서 돈이나 더 이상 까먹지 않는 것이 더 나아요, 괜히 힘만 들이고 돈은 돈대로 들어가서 빚져야 하는 농사에 더 이상 매달린다는 것이 헛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라고 호소하는 한 농민의 말에서 농촌의 현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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