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적기업에 주목하다⑤>사회적경제, 가능한 것부터 행동하자
<지역,사회적기업에 주목하다⑤>사회적경제, 가능한 것부터 행동하자
프랑스 릴시 의회 부샤르 의원이 이야기하는 릴시의 사회연대경제 발전계획
  • 정순영 기자 soon@okinews.com
  • 승인 2009.12.18 02:33
  • 호수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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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과 연대, 사회적경제와 같은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유럽 현지의 활동가들을 만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다른 방식의 삶은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그들의 확고한 믿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에 감탄하면서도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과연 우리에게도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입니다. 프랑스 릴 시의 시 청사에서 만난 릴시 의회 크리스띠안 부샤르(Christiane Bouchart) 의원(릴시 및 광역 릴 시 의회 의원, 전 부시장)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어렵지만 가능한 것부터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릴시는 우리로 치면 '옥천군 경제개발계획'과 비슷한 '릴시 경제개발계획'에 사회적경제를 포함시킬 정도로 지역의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데 사회적경제를 중요한 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추진 중인 릴 시의 '사회연대경제 발전계획'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부샤르 의원은, 지역사회 구성원 간의 협동과 연대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경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민(주민)이 시 정책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사회적경제란 '주민들 스스로가 지역사회에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진단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다른 방식의 대답을 찾는 것'이므로 주민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릴시의 사회연대경제 발전계획은 그러한 주민의 참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행동방향과 방법들을 총 망라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릴시  릴시는 수도 파리에서 북쪽으로 220km 정도 떨어진 프랑스 북부의 중심 도시이다. 릴시 자체 인구는 23만명 정도이지만, 릴 시를 중심으로 한 광역 릴시(우리로 치면 수도권, 충청권과 비슷한 개념)까지 범위를 넓히면 150만명 가까운 주민이 릴 시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릴시는 오랫동안 프랑스 북부의 산업중심지로 기능해왔으며 전통적으로 좌파정부를 지지해 온 지역이다. 릴시에 따르면 시 고용인구의 12% 가량이 사회적경제와 관련된 조직에서 일하고 있으며 150여개의 조직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경제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광역 릴시에는  7천700개 정도의 사회적 기업에서 4만3천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연재 순서

ⓛ 지역과 사회적기업
② 지역 내 사회적경제 진단
③ 꿈틀대는 사회적기업의 맹아
④ 해외의 사회적기업(1)벨기에
⑤ 해외의 사회적기업(2)프랑스
⑥ <좌담회>지역살림과 사회적기업

릴시 의회의 부샤르 의원은 릴시가 추진하는 사회연대경제 발전계획의 주요 행동방향을 소개하며 "사회적 경제는 사회복지가 아닌 경제라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릴시에서는 사회적경제가 시 정책 전반과 관련돼 실천되는데 이는 보육·환경·교통 등, 시 정책 전반을 대안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고 운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릴시의 사회연대경제 발전계획 추진은 사회적 경제 주체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미 릴시 고용인구의 12%라는 적지 않은 비중이 사회적 경제 분야에 고용돼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기관과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릴시의 생각이다.

시의 또 다른 역할은 사회적 경제 조직들 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구조화하는 것. 그 일환으로 최근에는 다양한 부문별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시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

▲ 릴시 및 광역 릴시 의회 크리스띠안 부샤르 의원

릴시가 지원하는 사회적경제 시민네트워크는? 
릴시는 다양한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조직화되고 활성화되는 데 시 차원의 지원을 벌이고 있다. 그 예로 '책임 있는 소비활동을 하는 주민 네트워크'에 대한 지원하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 네트워크에서는 릴시에서 생산된 유기농 생산물을 정기적으로 일정한 양만큼 소비하는 로컬푸드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900가구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농업 부문에서 청년농민의 지역정착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청년들을 도시 주변 땅에 농민으로 자리 잡게 해 주고 이웃한 50여 가구가 그들의 농산물을 소비해줌으로써 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시의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 창업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를 지원하는 창업협동조합이나 학생들에 의한 창업지원 서클 지원, 시민 카페(협동조합 까페) 개설, 시민들 간 자동차를 공유하는 협동조합, 태양에너지보급협동조합 등도 릴시가 지원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이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이 대안금융시스템이 활성화되도록 시에서 지원하는 것. '대안적인 지역개발을 위한 저축 투자자 클럽'처럼 20여명의 시민이 모여 예금을 하고 일정금액이 되면 사회적경제 분야에 투자하는 작은 단위의 금융에서부터 큰 규모의 연대금고까지, 릴시는 지자체 차원에서 이러한 대안금융제도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감세 혜택 등을 주고 대안금고들 간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공공부문이 소비 주체로서 사회적 경제를 이용하는 것도 발전계획의 중요한 부분인데, 부샤르 의원은 "시 전체 GDP의 8%가 공공부문 지출일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크다"며 "시 예산을 집행할 때 구매 조건에 사회적기업의 물품을 구매하는 조항을 넣거나 공사를 할 때 환경을 중시하는 사회적기업에 사업을 우선 주도록 하는 조항 등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차원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할 때 사회적기업의 제품을 이용하는 것처럼, 릴시의 상당한 구매력이 사회적경제와 연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함께 계획을 만드는 것'
부샤르 의원은 릴시의 사회연대경제 발전계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이 중요한데, 그 첫째가 '함께 계획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 사업 분야별로 소위원회를 구성해 각 분야에 대한 방향을 설정해 계획을 만들고 실행과정에서도 4개월마다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회의'를 열어 시의 계획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부샤르 의원의 설명이다. 또 그러한 계획을 바탕으로 실행된 것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다.

부샤르 의원은 "사회적경제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부의 불균형이나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라며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새로운 사회적 혁신을 이뤄낼 수 있는 주체로 사회적경제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릴시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이 처음부터 가능했던 것은 아니며 "자신도 주류가 아니고 이러한 변화를 이끌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 왔고 역사와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노력이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또, 전통적으로 릴시 인근은 좌파성향이 강한 지역이어서 현 사르코지 정부와 정치적 견해차이가 없지는 않지만 프랑스 사회 내에선 우파 정부일지라도 시민의 관심과 욕구가 모이는 것에 대한 지원을 무조건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샤르 의원의 설명이다.

이러한 시민의 참여 속에서 만들어진 릴시의 사회적경제는 릴시를 중심으로 한 광역 릴시 소속 자치단체들이 함께 '협동적이고 연대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특구' 지정을 추진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해가고 있다.

 <참고> 프랑스의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
1980년대이후 프랑스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들(협동조합, 상호공제조직, 민간단체 등)과 사회운동 조직들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개발하고 공급해 왔다. 이러한 조직들의 활동을 통해 실업자들의 직업훈련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졌고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통합'(IAE: Insertion par Activite Economique)'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사회적 기업들이 탄생하게 된다.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IAE 조직들은 국가와 협약을 체결해 노동통합이 필요한 실업자들을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각종 지원제도들을 연결해주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는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통합을 목표로 하는 5천 개 가량의 사회적기업(이하 노동통합기업으로 지칭)이 있으며 이들 조직에는 1만6천명의 실무자와 함께 30만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고용돼 있다.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노동통합형기업과 함께 '공익협동조합'이 그 두 번째 유형이다. 공익협동조합은 협동조합으로서의 기본적인 성격을 가지면서도 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사업을 수행하며 조합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협동조합과 차이가 있다. 공익협동조합은 광역도지사의 승인에 의해 설립이 가능하며 프랑스에는 2006년을 기준으로 79개의 공익협동조합이 있다.

 '태초의 시작은 지역이었다네'  - <인터뷰> 쟈끄 뒤게라 CNIAE 사무총장

▲ CNIAE 쟈끄 뒤게라 사무총장

프랑스의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통합 전국위원회'(CNIAE: Le Conseil National de l'Insetion par l'Activite Economique)는 프랑스 정부 고용부에 소속된 기구로, 40명의 자문위원이 프랑스 의회 의원과 기업가ㆍ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파트너, 민간단체와 국가 공무원들에게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통합'과 관련된 자문을 하는 기구이다. CNIAE 쟈끄 뒤게라 사무총장은 "노동통합기업은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고 일할 능력을 키우는 과정을 통해 노동시장에 다시 편입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며 "이러한 노동통합기업의 활동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시작됐고 지역개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시작됐음에도 2006년 이후로 프랑스의 노동통합기업은 지역개발이라는 목표가 희미해지고 고용창출의 측면만 강조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뒤게라 사무총장은 그 이유로 △고용을 포함한 프랑스의 정부 정책이 전반적으로 중앙화 되고 △노동통합기업의 주체들이 기업의 생존에만 매몰되다보니 지역개발에는 관심을 쏟지 않으며(프랑스 사회적기업은 수익의 80%를 시장에서 얻는다고 함) △지방정부와 같은 지역개발 주체들조차 지역개발은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따오는 데 달려있다고 생각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의식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뒤게라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이는 실업자들이 노동통합기업을 통해 임금을 받고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됨과 동시에 일부 IAE 조직들이 IAE의 활동과 지역개발이 좀 더 결합되도록 하는 방향의 법 개정을 이끌어 냄으로써 사회적기업이 지역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뒤게라 사무총장은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의원들이 예전에는 노동통합기업을 '고용을 위한 훈련기관' 정도로 인식한 데 비해 최근에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먹을거리, 기후, 에너지 문제 등에 대해 각 지역이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주체로 IAE 조직들을 인식하게 된 것도 중요한 변화라고 뒤게라 사무총장은 지적했다.

뒤게라 사무총장은 "CNIAE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사회적기업과 지역개발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인식을 전파하는 것"이라며 CNIAE를 통해 네트워크를 이룬 지방정부와 의회, IAE 조직들이 다양한 연구와 교육 활동을 벌이며 사회적기업이 지역 사회내에서 어떤 사회적가치를 실현할 것인지를 재인식하는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기업이 지역개발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고민은 우리나라 사회적기업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일 것이다. 사회적기업이 기업으로서의 생존이나 몇 명의 고용창출에만 매몰되어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시키기보단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어떤 공익적 기여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이어간다면 그 노력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데도, 또 사회적기업이 지역으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지지받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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