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장터는 옥천닷컴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고객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
현재 옥천신문과 옥천닷컴 사이트 간 게시판 정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 나은 정보 교류와 장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것을 약속드립니다.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옥천닷컴 바로가기

'알립니다' 게시판은 옥천닷컴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고객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
더 나은 정보 교류와 게시판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것을 약속드립니다.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옥천닷컴 바로가기
마을탐방 취재 기자들의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
마을탐방 취재 기자들의 못다한 이야기 보따리
  • 이수정 객원기자
  • 승인 2009.10.01 09:31
  • 호수 99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20주년 특집 방담

행정리와  자연마을  개념  몰라  헤매던  신입 시절의  추억
마을마다  숨어있는  보석같은  이야기에  감탄하고
마을마다  담겨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가슴  먹먹
다시 쓸  마을 탐방엔  농촌  희망  보여주는  이야기  담고파


지난 2000년 9월 청성면 산계2리로 시작된 '다시 쓰는 마을탐방'은 지난 998호 오대리 보내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의 삶을 생생한 음성으로 증언해 주었던 '다시 쓰는 우리마을'이 지나온 자리에는 고향을 지키고 있는 촌로의 오래된 소망도 담겨있었고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지켜본 역사의 증언자도 함께했습니다. 이 지면을 가을 들녘의 넉넉함처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우리 고장 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주민 여러분이 들려주는 목소리 앞에서 옥천신문 기자들은 마을의 역사와 오늘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9년 동안 마을탐방을 진행해온 기자들은 많은 이야기를 지면에 담으면서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번 신문에는 마을의 한복판에 섰던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왼쪽부터 옥천신문 백정현 취재부장, 박진희 기자, 장재원 수습기자, 황민호 편집국장, 정순영 기자, 정창영 기자

■ 도시에서 온 기자
신입기자 시절, 마을탐방을 진행하며 가장 큰 어려움을 느낀 것은 행정리동과 자연마을이 달랐던 점이다. 도시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낯섦이었다.

"제 첫 마을탐방은 삼청리였어요. 이 마을은 상삼, 중삼, 하삼으로 나뉘는데 한 마을에 있는 다른 구역이라고만 생각했죠. 취재를 마치고 선배 기자들에게 혼이 났어요. 자연마을을 취재해야 하는데 자연마을이 뭔 지 몰랐던 거에요. 다시 취재할 수밖에 없었죠." (백정현 기자)

자연마을의 개념보다 더욱 어려웠던 점은 어쩌면 농촌의 삶이 아니었을까. TV를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거리감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저 도시에서 온 이방인이었어요. 구수하다는 느낌이랄까요. 농사를 짓고 땀을 흘리는 것이 분명 귀한 가치인데도, 처음 마을에 들어갔을 때는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초가집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마을에 사람이 자꾸만 줄어 마음이 아프다는 이야기도 공감하지 못했어요. 아! 물론 처음에만요.(웃음)" (정창영 기자)

도시가 아닌 시골의 삶을 좀 '아는', 박진희 기자는 마을탐방을 해 나갈 수록 발굴 정신이 강해졌다고 한다.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난 박진희 기자는 마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을마다 지명에 대한 유래가 있잖아요. 그 점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마을의 유래와 역사를 짚어 나가다 보면 자부심도 생겨요. 제 고향은 아니지만, 고향마을을 탐험하는 마음이 돼요." (박진희 기자)

■ 우리고장의 정서, '그리움…'
사람이 떠나가는 농촌, 빈집이 늘어가는 마을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타인의 일일 때 우리는 그저 '그런가 보다'라고 수긍한다. 오순도순 함께 살던 내 이웃이 고향을 떠나갈 때, 수긍은 부정이 되고 그리움은 눈물을 동반한다.

"운전이 미숙했던 때였는데, 가는 길이 쉽지 않은 동이면 우산1리 메쥐골에 찾아갔어요. 이장님과 주민 두 분이 제 차를 함께 타고 한참을 가다 산길로 들어섰는데 할머니 두 분이 계셨어요. 할머니들께서 아래 마을 사람들이 놀러 온 지가 꽤 오래되었는지 무척 반가워하셨어요.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들이 제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시는 거에요. 더 놀다 가라고.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제가 '또 놀러 올게요' 말하고 돌아왔어요. 그리곤 한 번도 가지 못했어요. 차라리 그렇게 말하지 말 걸. 후회했고 많이 죄송했어요." (정순영 기자)

"청성면 귀곡리 지령마을을 취재할 때였어요. 할머니들이 새댁이었을 때 자신을 꽃으로 이름 지어준 30대 선생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게 40~50년 전의 일이었음에도, 그분을 그리워하면서 꽃이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선해요. 자식에 대한 그리움, 젊은 사람들이 많았을 때에 대한 그리움···마을탐방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 것 같아요."  (백정현 기자)

■ 기자와 주민 사이
마을, 주민 삶의 터전에 들어선 기자들은 항상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 작은 목소리 하나에 우리 고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기관이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기자의 기사 한 줄은 큰 힘을 쏟아 놓기도 했다.

"동이면 금암리에 하수관 공사의 뒷마무리가 잘 안된 적이 있어요.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마을탐방을 위해 찾아간 제게 해결해 달라고 부탁을 하시는 거에요. 1년 이상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요. 마을에서 접수한 민원에 대해 기사를 썼죠. 기사가 나가고 바로 해결이 되었어요. 주민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정창영 기자)

삶의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기에 현실적 어려움에 해결이 안 되었을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안남면 지수2리 수동마을에 갔을 때 수은이라는 아이를 알게 되었어요. 다문화가정이라 엄마가 아이에게 우리 말과 글을 잘 가르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마음 아파해서 '수은이도 유치원에 가고 싶다'라는 내용으로 글을 썼어요. 이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기뻤겠지만, 잘 안되었어요. 그리고 나서 한참 후에 수은이와 엄마를 읍에서 만났어요. 결국 읍내로 이사를 왔다고 하더라고요." (정순영 기자)

■ 마을탐방이 내게 준 '과제'
"삼청리 마을탐방을 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한국전쟁 당시에 가풍리에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이 있었다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걸 아직 취재하지 못했어요. 언젠가 꼭 취재하고 싶어요." (백정현 기자)

마을탐방은 흥미롭다. 취재를 하다 보면, 어느덧 어스름이 깔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저는 청성면 조천리 마을탐방이 기억에 남아요. 이 마을은 마을이 없을 것 같은 곳에 있어요. 아침에 일찍 가서 오후 일곱여덟시까지 있었어요. 마을회관에서 하룻밤 자고갈까 생각하기도 했죠. 그러다가 취재에 요령이 생겨서 첫 마을탐방 때 글을 가져가서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에게 구연동화하듯이 읽어 드린 다음에 틀린 것, 덧붙일 것 물어서 쓰기도 했어요. 어르신들이 듣고 '맞어, 맞어' 호응해 주기도 했었죠(웃음). 그 이후에는 살집을 찾으면서 마을을 취재하기도 했어요. 청산으로 이사를 하기 전에 의동리, 효림리, 장위리, 한곡리를 취재하면서 빈집이 있는지 유심히 살피기도 했죠." (황민호 기자)

■ 희망사항, 다시 마을 이야기를!
"마을에 가면 마음이 좋아져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을 챙겨주기도 하고, 숙원사업, 불편사항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그 이야기를 제게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항상 감사하죠. 마을탐방은 제게 기자생활을 할 수 있는 양분이 되어주고 있어요. 다시 쓰는 마을탐방은 끝났지만, 앞으로도 잘하고 싶어요."
(장재원 수습기자)

"마을에 들어가 마주한 마을의 현실은 정부차원의 정책 없이는 연명이 안 되는 상황이에요. 최근에 청년실업을 귀농으로 해결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어요. 이런 제안이 정책이 되어서 변화된 마을을 취재하고 싶어요. 마을마다 젊은이들이 들어와 '농촌에 희망을 심고 있다.'라는 농촌에 미래를 건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는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어요." (백정현 기자)

"농촌은 항상 위기였어요.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도 농촌의 위기는 계속 될 것인데, 힘들고 어려워도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 마을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를 둘러싼 객관적인 조건이 아무리 안 좋다고 하더라도, 내일은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안고 살고 싶어요." (정창영 기자)

글/ 사진 이수정 객원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옥천 2009-10-08 21:57:19
외국에서 살고 있는 옥천 토박이입니다. 7순을 쳐다 보고 있으나 뒤돌아 보니 외국에 이민와서 살아 온 세월이 모국에서 살아 온 기간보다 더 깁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고향은 더욱 그리워지네요. 마을 탐방 기사 정말 재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취재에 수고 하신 기자님들 너무 젊으신 분들이네요. 어쩌면 그렇게 필력들이 좋으십니까, 젊은 나이에?
이곳에 옥천 사람들이 몇 가정 살고 있습니다. "먹뱅이(이원면 개심리)는 안 나오네?!"하면서 마을 탐방 기사에 관하여 담소하기도 했지요. 저도, 옥천 사람이지만,연재 해주신 마을 탐방 기사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삼청리 편에 실린 사진 속에서 초등학교 동창 '이도현'을 발견했던 순간도 저에게는 압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