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소방파출소 응급구조사 김병흠씨
옥천소방파출소 응급구조사 김병흠씨
함께사는 세상[9]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0.09.23 00:00
  • 호수 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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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이웃에게 애정이 각별하다는 옥천소방파출소 응급구조사 김병흠씨
안방극장에는 지금은 종영된 `응급구조 119'라는 프로그램이 한동안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흥미로운(?) 실수가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계도용 프로그램을 표방했지만 곳곳에 적절한 긴장장치를 배치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아 두었다.

최근에는 사회적 변화 탓인지 좀더 자극적이고 극적인 연출이 가능한 범죄 수사 프로에 방송국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119관련 프로그램도 다시 방송될 여지는 충분히 남아있을 것이다.(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둘 만한 흥미로운(?) 사고들이 쌓인다면...)

그러나 역시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그 제목과 같이 마지막 부분에 숨가쁘게 나타나는 119 응급구조사들이나 구급대원들이었다. 어릴 적 이 세계를 지키는 자들로 믿었던 `독수리 5형제', `로보트 태권브이'는 바로 119응급구조대원들이나 구급대원일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들의 등장은 극적이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사였다.

▶아빠를 낯설어 하는 아들

옥천소방파출소(소장 유회강) 김병흠(34)소방교도 구급대원이다. 지난 94년 8월1일 소방공무원의 길로 들어서 95년부터 옥천소방파출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김병흠씨는 관련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응급구조사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 2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소방공무원의 길로 들어섰고 그 이유라는 것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직장생활보다는 공무원생활이 조금 더 안정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는 밤샘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서 자다가 동네 이장님이 방송을 위해 틀어 놓은 음악소리에 깜짝 놀라 출동준비를 하기도 했어요." 그만큼 늦게 시작한 소방공무원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고, 가족들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 직장 동료들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간혹 3∼4일씩 연속 근무를 하고 들어가면 아들(영관, 2살) 녀석이 저를 낯설어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럴 때는 많이 섭섭하죠. 그래도 뭐 제가 맡은 일이니까 최선을 다 해야죠." 이틀에 한 번씩 들어가는 집. 그나마 휴무일 소방점검이나 교육, 출장 등이 겹치면 3일씩 연속근무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 보니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김병흠씨.

"소방공무원 아내가 되려면 마음이 넓어야 돼요. 그래서 그런 여자 찾느라 제가 결혼을 늦게 했잖아요." 김병흠씨는 결혼을 늦게 한 이유를 설명하며 아내 김옥련(30)씨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최선 다했는데 "보따리 내놔라"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란다'는 정말 어이없는 상황을 표현한 우리의 속담이 있다. 구급대원들에게는 흔히 생각하는 그들의 멋진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이런 속담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들이 허다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최선을 다해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아쉽게도 환자가 목숨을 잃을 경우 그 가족들에게 받는 원망, 곡예운전을 하며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대원에게 `빨리 가지 않는다'고 재촉하며 터져 나오는 원성...

애써 힘들게 병원으로 옮긴 응급환자가 생명을 건지지 못했을 경우에는 가족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좀더 노력했으면 소중한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또 빗길과 눈길 위에서 모든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면서 최선을 다한 것을 생각하면 `보따리 내 놓으라'는 주민들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김병흠씨는 이런 억울한 일들도 `위급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일'이라고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 두 손을 꼭 붙잡고 몇 번씩이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주민들에게서 그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는 자신의 모습과 최선을 다하면 귀중한 생명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느끼는 보람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주민들 곁에 가까이 있는 '119'

"거기 119죠? 장을 봐야 되는데, 버스를 타기 힘들어서 그런데 차 좀 보내 줄 수 있나?"

"버스를 이용해 주세요,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면 구급차가 꼭 필요한 환자가 이용할 수 없게 되잖아요"

"아이구 알았어."

퉁명스러운 대답과 함께 전화기를 내려놓는 한 할머니. 최근 들어 119에 구급차를 요청하는 전화가 많이 늘고 있다. 119구급대가 홍보가 많이 되었고 그만큼 주민들에게 가깝게 다가갔다는 것이 신고전화가 늘어난 원인이 되겠지만 한동안 각 보험회사에서 구급차를 이용할 경우 보상금이 지급되었던 것도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감기환자나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환자들도 119구급대로 전화를 걸어오곤 한다. 딸꾹질이 멈추지 않는다는 전화에서부터 속이 쓰리다는 전화까지.. 심지어는 싸움이 일어났다는 전화도 소방파출소로 걸려오곤 한다. 김병흠씨는 "시간을 다투지 않는 환자들이나 경찰서로 해야 할 신고전화도 많이 걸려와 간혹 진짜로 위급한 환자들이 옥천읍에 한 대밖에 없는 구급차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소방파출소에서 얘기를 나눈 김병흠 구급대원은 수퍼맨이나 독수리 5형제처럼 남다른 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이웃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외모를 갖은 평범한 이웃,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자신의 업무에 보람을 갖고 있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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