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을 속으로 들어간 장흥문화마당
다시 마을 속으로 들어간 장흥문화마당
품앗이를 꿈꾸는 도농 공동체 ③지역 문화 운동으로 대안 공동체 만들다
삶이 곧 문화', 대안 문화 시골마을에서 꿈꾸기
  • 황민호 기자 minho@okinews.com
  • 승인 2008.08.28 15:44
  • 호수 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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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군 유치면 조양2리 인암마을에 건립된 한옥 경로당, 인암마을 주민들은 올해 장흥군에서 주최한 살기좋은 만들기 사업에 응모해 3천만원의 사업예산을 받아 마을가꾸기를 진행중이다. 장흥문화마당 전대표인 김효문씨가 인암마을 홍보부장을 맡고 홍보를 책임지고 있다. <사진 제공=마동욱>

품앗이를 꿈꾸는 도농 공동체

   1회: 지역화폐로 도농 공동체 하나된다
   2회: 공동체로 엮어가는 한옥마을의 가능성
▶3회: 지역 문화 운동으로 대안 공동체 만들다
   4회: 마을 신문과 도서관 만든 주민의 저력
   5회: 미래 대안에너지 접목시킨 마을 공동체
   6회: 지역의 의료 문제, 공동체로 풀어낸다

시골에서 지역과 고향에 애착을 갖고 부유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것은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굵직한 책임감이기도 했고, 무척이나 하고 싶은 작업이기도 했고, 그들이 모여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뜻 있는 사람들 하나 둘 모여 각자의 재능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과 결합했다. 그들이 아닌 우리들의 아픔과 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행사를 같이 만들었고, 신명나게 판을 벌려 같이 어우러질 수 있었다.

인구 4만3천여 명의 3개읍 7개 면의 행정구역을 갖고 있는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장흥문화마당이 갖는 의미는 컸다. 장흥문화마당은 1999년 전남대 앞에서 청년글방이라는 책방을 운영했던 문충선씨가 고향에 귀향하면서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이미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마동욱씨, 전라도닷컴 기자를 했던 이정우씨, 닭키우는 시인이었던 김효문씨, 지역음악활동을 하는 정명석씨, 포크레인 기사를 하면서 풍물을 했던 윤순철씨, 그림을 그리는 서영완씨 등 다양한 멤버들이 2002년 2월 장흥문화마당이란 이름으로 엮어졌다. 그들은 2002년 8월 탐진댐으로 인해 수몰된 마을을 위로하는 수몰마을 문화제 '아! 물에 잠길 내고향'을 장흥군 유치면 덕산마을에서 열었다.

이 날 행사에는 장흥문화마당이 잔치를 준비했고, 강진의 강진문예마당, 광주 원각사 풍물패, 고흥 문화모임 등 인근 지역 문화패들이 참석해 흥을 돋궈 주었다. 주민들이 풍물패와 함께 당산제, 지신밟기, 진혼굿 등을 벌이고, 농기구와 살림살이를 꺼내 오래된 생활용품 전시회를 열었다. 장롱속 가족사진을 들고 나와 담벼락에 전시하고, 허물어진 대문을 세우며 그리운 고향을 담은 시를 전시하기도 했다. 2003년 어린이 날 행사에 차없는 거리 문화제를 개최했고, 장흥청년풍물패 모둠이 벌이는 남산공원 화전놀이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복합문화판을 벌이기도 했다.

◆장흥문화 한단계 업그레이드
' 길게 오래 흥한다'는 장흥의 한자를 풀이한 그들은 본격적으로 장흥 문화를 다시 찾는데 나서기 시작한다. 2004년 1월에는 장흥군에서 유명한 휴양림인 유치 휴양림을 위탁 운영해 휴양림 문화를 놀고 먹는 문화에서 숲과 대화하고, 깊게 사유하는 문화로 바꾸기 시작했다. 닭키우며 사는 시인 김효문씨가 휴양림으로 살림집을 아예 옮기면서 휴양림에 '더불어 숲'이라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매달 휴양림에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렸다. 2월에는 통키타 가수와 국악인이 출연하는 숲속음악회를 열었고, 3월에는 고향에 내려와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 한승원씨를 초청해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 4월에는 야생화 전시, 천연염색 전시, 5월에는 일본 록그룹 곱창 전골이 멋진 공연을 펼치는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휴양림에서 매월 열리면서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2005년에는 문충선씨가 문화관광부의 생활친화적 문화 공간 조성사업에 응모해 100여 년된 고가를 1억원에 매입, 리모델링 해 '오래된 숲'이라는 공간으로 탈바꿈, 장흥지역 학생들의 문화체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폐교될 위기에 놓여있던 전교생 50여 명의 장흥남초등학교에 희망의 작은도서관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학교를 살리기 위해 당시 장흥남초 박노천 학교운영위원장과 장흥문화마당 문충선씨가 결합하면서 희망의 작은도서관 만들기는 더 탄력을 받았다. 2005년부터 순천기적의 도서관 소풍, 2006년 어린이날 기념 이동도서관 운영, 스스로 책읽고 싶은 책 구입하기 등을 진행하면서 희망의 작은도서관 운동을 불지폈고, 2007년 7월 탐진강에 사는 은어처럼 자유롭게 꿈을 꾸라는 뜻으로 '꿈꾸는 은어'라는 작은 도서관이 건립되기도 했다.

희망제작소가 발행하는 지역희망찾기의 하나로 책을 내기도 했다. 장흥환경운동연합 천승룡 사무국장과 문화공간 오래된 숲 주인 문충선씨, 녹차 농사를 짓는 미술작가 정찬용씨가 같이 장흥읍 덕제리 송산마을에서 일구는 지역 희망에 대해 썼다. 이 책은 지역 희망찾기 총서 1권으로 '송산마을속으로 들어가다'(출판사 이매진)라는 이름으로 2007년 10월에 펴냈다. 당시 장흥문화마당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삶의 문화와 지역 문화를 소중히 여기며 창의적으로 만들어 갑니다. 탐진강과 마을공동체의 생태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고 표현합니다. 옛집과 같은 자연과 문화의 행복한 만남을 꿈꿉니다"

◆2007년 장흥문화마당 해체
22일 오후 2시, 세차게 내리는 빗속을 뚫고, 네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장흥군 유치면 조양2리 인암마을로 들어갔다. 인암마을에 사는 장흥문화마당 전 대표인 김효문씨는 장흥문화마당이 올해초에 해체됐다고 말했다. 장흥문화마당을 취재하러 갔는데, 해체를 했다니 참으로 난감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봤다. 뒤늦게 오래된 숲 주인인 문충선씨도 이야기 마당에 합류했다.

"장흥문화마당은 2007년 12월31일자로 발전적인 해체를 했습니다. 그리고 위탁 운영하던 장흥군 유치휴양림도 더이상 위탁하지 않습니다." 많은 문화활동이 벌어졌던 유치휴양림과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이끌었던 장흥문화마당이 동시에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장흥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숨고르기를 하고, 또 다른 삶의 문화를 꿈꾼다고 했다. 그들은 마을속으로 잦아들었다. 각자 시골 마을속으로 들어가 삶의 문화를 일궈나가고 있었다.

"기존의 문화는 겉으로 보이는 조금 특이한 음악이나 미술 위주의 공연, 전시, 극 활동을 문화라고 합니다. 그것은 보이는 문화이고, 일부분일 뿐입니다. 삶 자체가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어떤 특정한 문화의 틀에 얽매여 애쓰지 말고, 게릴라처럼 각 마을에 들어가 삶의 문화를 가꿔보자는 것이 우리 장흥문화마당의 발전적 해체의 이유였습니다." 문충선씨는 한마디 덧붙인다.

"여러가지 활동을 하느라 자체 동력이 많이 소진됐고, 버겁기도 했습니다. 지역 문화활동이 그만큼 값진 것이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다 나가 떨어질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과감하게 발전적인 해체를 선언하고, 정말 산골 마을 속으로 들어가 각자의 삶을 문화로 바꿔나가자고 이야기를 했지요."

마동욱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힘에 부쳤고, 오히려 마을에 들어가 마을의 오래된 문화를 복원하는 일이 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나는 장흥군 각 마을의 사라져 가는 마을의 역사, 소리, 문화 등을 사진에 담아 기록을 계속 할 것 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효문씨는 9가구 밖에 되지 않는 유치면 인암마을에 귀농을 했고, 현재 한봉을 열심히 배우면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 유치면 인암마을 홍보국장 구실을 맡고, 유치면 농민회 교육부장, 유치초중학교 방과후 교사 등을 하면서 지역 삶의 문화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었다. 문충선씨도 곧 김효문씨와 마찬가지로 인암마을로 들어와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에 곧 합류할 계획이다. 장흥군이라는 거대한 틀에서 문화를 끄집어내려 했던 그들은 이제 더 깊숙한 장흥군의 마을로 각자 들어갔다. 장흥문화마당은 해체됐지만, 해체되지 않았다. 각 마을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었다. 그들은 이제 본인의 삶과 밀접한 공간에서 또 다른 공동체 문화의 꿈을 꾸고 있다.

▲2007년 7월 장흥남초등학교에 '꿈꾸는 은어'라는 작은 도서관이 건립되었다. 이 도서관 역시 장흥문화마당 활동가인 문충선씨가 중심이 되어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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