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산물의 지역소비, 협동조합이면 가능하다!
지역농산물의 지역소비, 협동조합이면 가능하다!
④협동조합의 연대 - 농협과 생협의 만남
풀무생협이 만드는 지역순환농업의 꿈, 생산자와 소비자 연대로 지역농업 희망을 그린다
  • 정순영 기자 soon@okinews.com
  • 승인 2008.07.03 16:42
  • 호수 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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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농협개혁, 지역농업 희망의 시작
2회: 지역농협 성공전략…괴산군 불정농협
3회: 지역농협의 성공전략…청원군 오창농협
4회: 협동조합의 연대 - 농협과 생협의 만남
5회: 일본에서 지역농협의 경쟁력을 배운다①
6회: 일본에서 지역농협의 경쟁력을 배운다②
7회: 지역농협 발전을 위한 토론회

옥천읍의 20대~60대 주부 50명에게 ‘농산물 구입 시 농약, 화학비료, 유전자 조작 유무 등을 포함한 안전성을 얼마나 고려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중 29명의 주부가 안전성을 ‘항상 생각한다(58%)’고 밝혔고 17명(34%)은 ‘가끔 생각한다’고 밝혀 먹을거리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이미 많은 가정의 식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지역의 농산물을 포함해 친환경인증농산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매장이 옥천에 생기면 이용하겠느냐는 물음에 대해선, 27명(54%)의 주부가 ‘식재료의 주 구매처로 이용하겠다’고 답했고 20명(40%)의 주부도 ‘가끔 이용하겠다’고 밝혀 친환경인증농산물에 대한 지역의 수요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옥천장터(www.ocjangter.com)를 제외하곤 우리고장 어디에서도 지역 친환경농산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을 찾을 수 없고 지산지소(地産地消)니 로컬푸드(Local Food)니 하는 것도 우리에겐 요원한 소리일 뿐이다.

그렇다고 지역농산물의 지역소비 구조가 마련되지 않은 현실을 ‘현재의 유통구조로는 어쩔 수 없어’라는 말로 포기해야하는 것일까? 지역농산물의 지역소비를 실현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노력하며 지역농업의 미래를 그려가고 있는 충남 홍성 풀무생협의 사례는 위 물음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참좋은 풀무매장’ 인기 좋네

▲ 홍성읍에 위치한 '참좋은 풀무매장'

 

홍성읍 우체국 뒤편, 홍성교회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참좋은 풀무매장’(홍성군 홍성읍 옥암리 1042 소재, 이하 풀무매장).

바로 우리나라 최대의 유기농산물 생산조합인 풀무생협(홍성군 홍동면 금평리 소재)의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포함해 100% 친환경농산물과 친환경가공식품만을 판매하는 매장이다.

풀무매장을 찾은 지난달 27일, ‘주변에 마트들도 많고 이렇게 찾기도 힘든데다 가격도 싸지 않은 친환경농산물만을 판매하는 매장에 손님이 올까?’란 기자의 섣부른 판단은 매장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이유인즉슨,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표현처럼, 풀무매장은 끊임없이 오가는 손님들의 발길로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 풀무매장에서 소비자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는 모습. 이곳에는 식재료부터 세제, 속옷 등의 공산품까지 모든 것이 '친환경'으로 구비돼 있다.

세 아이의 엄마로 홍성읍에 살고 있다는 박은영(36)씨. 저녁 찬거리를 사가는 것인지, 각종 채소와 식재료 등을 한 아름 계산대로 들고 온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풀무매장 자주 오세요?”

“(웃으며)매일 오지요.”

“왜요? 물품 종류도 마트만 못하고 가격이 싼 것도 아닌데......”

“마트는 싸긴 하지만 원산지 표기도 못 믿겠고 일반농산물은 농약을 너무 많이 치는 것 같아서요. 가격차이가 좀 난다지만, 지역에서 생산한 친환경농산물이 여기 다 있는데 이용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너무나 ‘정답’같은 대답을 내놓는 그녀의 말에 기자의 말문이 막히자 웃으며 듣고 있던 풀무매장 운영대표 손정희(48)씨가 “이이는 원래 단골”이라며 풀무매장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래 풀무매장은 풀무생협이 직접 운영하는 매장이었다. 하지만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협동조합이 판매장을 운영하는 데 있어 여러 한계에 부딪혔고 계속된 누적적자로 풀무생협은 매장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풀무매장의 한계는 곧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계기를 가져다준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먹을거리를 지역소비자에게 공급하는 풀무매장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뜻을 가진 손정희씨를 포함한 8명의 조합원이 3년 전 공동으로 출자해 풀무매장을 인수했고, 매장을 이용하는 지역회원을 600명까지 확보, 현재는 누적적자를 해소한 것은 물론 월 매출 3천만 원이라는 알짜 매장으로 성장하게 된다.

▲ 홍성 지역내에서 생산된 친환경농산물은 언제나 1순위로 소비자를 만난다. 풀무매장 야채코너에 풀무생협의 농산물이 진열돼 있는 모습

◆지역생협이 꿈틀댄다

이러한 풀무매장의 노력은 운영정상화를 넘어 지역생활협동조합을 건설하자는 고민으로까지 한 발 더 나아가게 된다.

대한민국 최대 유기농 단지를 옆에 끼고 살면서도 지역주민이 그것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의식을 공유하는 지역주민들이 ‘홍성지역생협준비모임’을 꾸리고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 중인 상태다.

풀무매장이 구상하고 있는 홍성지역생협의 틀을 살짝 들여다보면, 우선 현재의 600명 매장회원을 조합원 체계로 개편하고 매장은 오직 조합원이 내는 월 회비 1만원만으로 운영한다.

대신 조합원은 매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품을 원가로 구매하는데 만약, 조합원 ‘갑’씨가 조합매장에서 한달에 20만원어치의 물품을 원가로 구입한다면, 일반매장의 평균 마진이 20%정도라고 봤을 때 갑씨는 4만원을 절약하게 되고, 결국 운영비는 1만원만을 냈지만 3만원의 이득을 보는 구매활동을 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즉, 조합원은 조합을 이용하면 할수록 이득을 많이 보게 되고 협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합은 조합원들의 이용률이 높아지면 질수록 성장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협동조합이라는 틀을 통해 끊임없이 조합원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소비자가 농업과 생산자를 이해하고 자신이 이용하는 물품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풀무매장의 생각이다.

또, 협동조합 속에서 성장한 조합원은 한 발 더 나아가 지역의 교육문제와 삶의 질 등을 함께 고민하게 되고 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건강한 시민사회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홍성읍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 7백여명의 주민이 나올 수 있었던 힘도 지금까지 풀무생협과 풀무매장이 생산자와 소비자 간 연대의식의 구심점으로 끊임없이 활동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풀무생협 박종권 이사장이 남긴 다음의 말은 우리고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4천만이 넘는 인구가 일부 도시에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에선 분명 어려움이 있지만 지역의 농산물이 지역에서 소비되는 이상을 놓쳐선 안됩니다. 현실에서 가능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보는 것이 중요하고 농민과 소비자가 공생하는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생활협동조합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풀무생협] 생산자ㆍ소비자의 희망공동체
엄격한 생산기준 속에서 유기농업 가치 지켜가

일반적으로 생활협동조합은 식재료 등의 재화를 구매ㆍ공급하거나 의료, 주택 등의 서비스를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조직으로 많이 인식된다.

하지만 풀무생협은 조합원들이 공동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지역의 생협에 공급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면서 조합원들이 필요로 하는 공산품과 농자재 등을 공동구매하는, 농민 즉 생산자들의 생활협동조합이다.

어차피 풀무생협의 주된 기능이 생산의 협동이라면 풀무생협과 지역농협의 차이가 무엇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풀무생협의 설립배경을 아는 데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풀무생협 박종권 이사장
풀무생협 박종권 이사장에 따르면 풀무생협의 모태는 1960년 풀무학교에 설립된 ‘무인구판장’의 운영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의 구판장은 학생들이 학용품, 먹을거리 등을 공동구매해 갖다놓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돈을 내고 가지고 가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풀무학교 졸업생들은 이 같은 조합정신에 영향을 받아 1980년 ‘풀무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창립하는데 이 당시의 조합은 이름 그대로 소비자협동조합의 기능을 가진 조직이었다.

박 이사장은 “80년대에는 면 단위 가게들이 담합을 해 농민을 상대로 물건을 엄청 비싸게 팔았다”며 “그래서 협동조합을 통해 농민이 필요한 생산도구와 식료품 등의 생필품을 공동구매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그 용어조차 생소했던 농약과 화학비료를 거부하는 유기농업을 고수해온 풀무생협 조합원들의 요구는 자연스럽게 생산의 협동부터 유통, 판매의 협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1992년에는 풀무생협 유기농업생산자회를 발족하고 1994년부터 유기농산물의 안정적 판로 확보를 위해 수도권 도시소비자협동조합과 직거래를 시작해 현재는 한국생협연대, 두레생협연합, 한국여성민우회생협 등 50여 곳, 5만 가정 도시소비자조합원들에게 풀무생협의 농산물이 공급되고 있으며 www.kongseal.com을 통해 온라인판매도 하고 있다.

풀무생협은 생산농민들의 협동을 통한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특히,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도농공동체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는데, 풀무생협 교육홍보ㆍ도농교류 담당 윤해경 대리의 설명에 따르면 연중 도시소비자와 학생들 4천~5천명이 풀무생협을 방문해 생산자와 함께 유기농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대표적인 예로 ‘볍씨학교’를 들 수 있는데, 도시의 어린이들이 풀무생협을 방문해 패트병 화분에 볍씨심기 체험을 하고 집으로 가지고 간 후 돌아오는 가을에 벼를 다 키워 다시 홍성을 방문하면 상을 주는 체험프로그램이다.

윤해경 대리는 “생산자생협과 소비자생협과의 연대는 굉장히 중요하다”며 “(도시)아이들이 한번 홍성에 와서 홍성을 알게 된다는 건 미래의 ‘홍성매니아’를 양성하는 것으로 상호교육을 통한 협동조합간의 연대는 농업의 든든한 지원군을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풀무생협은 어떤 곳?>

충남 홍성군 홍동면 금평리 223번지에 위치한 풀무생협은 쌀 마을별 작목반 33개와 채소 품목별 작목반 23개, 축산 한우ㆍ양돈ㆍ자연 닭 6개 등 총 62개 작목반에 소속된 6백여명의 생산자들이 유기농농산물과 무항생제 고기 및 유정란, 각종 천연양념 등의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협동조합이다. 약 160만평(528만㎡)의 면적에 저농약을 제외한 국내 최대 규모 유기농 산지를 이루고 있는 풀무생협은 ‘지역순환농업’ 추구하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농업과 환경의 의의를 함께 지켜나가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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