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사는 세상 [157] 안내면 정방리 '지렁이 농장' 이상수씨
함께사는 세상 [157] 안내면 정방리 '지렁이 농장' 이상수씨
땅속에서 찾아낸 희망품고 귀향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08.04.10 15:58
  • 호수 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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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지락 꼼지락' 보온재로 덮어 놓은 흙덩어리를 떼어내자 살구빛과 주황빛의 중간색쯤 되는 고운 빛깔의 지렁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쑤시개 정도 굵기에 성인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지렁이들은 '예뻤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꿈틀꿈틀 하는 그놈들이 징그럽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이상수씨의 눈에 그놈들은 '예뻤다.' 작은 생명체 안에 그의 꿈과 도전, 희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57년생 지렁이띠'이상수씨 얘기다.

◆왜 하필 지렁이냐?

그도 한 때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안내면 정방리가 고향인 그는 인하대학교 화공과를 졸업했다. 한 때는 반듯한 직장인으로 또 한 때는 사업가로 살던 그가, 지렁이를 데리고 지난해 3월 고향 안내면 방곡리를 찾았다. 아버지는 "대학까지 나온 놈이 할 짓이 아니"라며 반대했고 처자식은 "먹고 살 걱정은 안 하냐"며 만류했다. 아버지의 반대와 가족의 만류를 극복하고 찾아낸 지렁이는 그에게 어떤 존재일까?

"저놈들이 땅속에서 뭐하는 지 우리는 몰랐던 겁니다." 이른 봄볕에 탄 얼굴은 새까맸지만 그의 희망만은 푸른빛으로 가득했다. "우리 사는 땅 속에는 수많은 유기물이 있습니다. 지렁이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기물을 먹고 자랍니다. 지렁이가 사는 곳은 살아있는 흙입니다. 생명을 품은 토양입니다."

지렁이는 땅 속에 있는 유기물을 먹고 이를 우리 몸에 덜 유해한 탄소와 질소, 황 등의 성분으로 배출한다.

▲ 안내면 방곡리가 고향인 이상수씨는 지난해 3월 도시 생활을 접고 귀농했다. 지렁이를 통한 순환농업의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싶어 왔다는 그는 "지렁이의 경제적 효용성보다 생태적 가치를 더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 김태정 기자
◆지렁이는 블루오션이다

블루오션(blue ocean).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전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는 경영전략을 뜻하는 말이다. 남들이 이미 시작한 영역에 들어가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한 '푸른 바다'를 찾아나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상수씨는 지렁이야 말로 우리가 찾던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지렁이 하면 낚시에 쓰는 미끼 정도로 알지만 그건 지렁이에 대해 몰라도 한 참 모르는 말입니다. 전통 보양식인 토룡탕을 비롯해서 요즘은 각종 기능식품과 화장품의 원료로 각광 받고 있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는 지렁이를 이용한 음료수가 개발될 정도로 '지렁이'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이 한창입니다."

◆지렁이가 살아야 사람도 살고 송어도 산다

이상수씨의 말을 빌리자면 지렁이의 소비시장은 현재보다 넓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투입되는 자원도 인건비와 지렁이 먹이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3~4년만 고생해서 자리를 잡으면 고소득이 가능하다. 경제적으로 따져 봐도 나쁘지 않다. 이씨는 '최소한 같은 면적의 농사를 지을 때보다는 낫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환경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 사진: 김태정 기자
그가 귀농을 택한 결정적 계기도 단순히 '돈벌이'에 있지 않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15년 전에 만난 김채룡 목사로부터 환경과 생태를 살리는 '순환농업'에 관한 공부를 했다. 지렁이는 순환농업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지렁이의 먹이가 되는 것은 대부분 먹다 남은 음식물이나 축분, 하수종말슬러지 같은 쓰레기들이다. 지렁이는 이 같은 '무가치한 쓰레기'를 밑천 삼아 부지런히 땅을 갈고 엎는다.

지렁이가 사는 땅은 통기성이 좋아지고 농약으로 찌든 산성화에서 해방된다. 지렁이가 뱉어내는 '분변토'는 화학비료와 비교되지 않는 천연의 기름진 거름이다. 깨끗한 땅에서 건강한 농산물이 나오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럽다.

지렁이가 직접 먹이가 되기도 한다. 닭, 잉어, 송어에게 지렁이를 먹이면 육질이 탱탱해진다. 건초에 섞어 소나 돼지의 사료로 쓸 수도 있다. 인간과 가축을 위협하는 각종 전염병, AI라든가 구제역 등에서 자유로운 친환경적 먹이라는 얘기다. "지렁이를 잘 활용한다면 음식물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토양을 살리고 질병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지렁이가 살아야 사람도 살고 송어도 살고 닭도 살고 소도 살 수 있는 겁니다"

◆탱탱하게 서 있을 수 있어야

그렇다면 이런 지렁이는 어떻게 키우는 것일까? 김씨는 현재 안내면 방곡리에 1천650평방미터(약 5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서 지렁이를 사육하고 있다. 고추밭과 비슷한 모양의 '이랑'에 지렁이를 키운다. 먹이는 각종 음식물쓰레기와 축분을 발효해서 만든다. 수거한 음식물쓰레기에서 수분을 제거한 뒤 이씨가 직접 제작한 5마력의 모터가 달린 '교반기'에서 48시간 가량의 숙성과정을 거친다. 이 때 EM균이라는 유용성 미생물과 깻묵, 왕겨, 건초 등을 첨가한다.

이틀이 지나면 냄새나던 음식물 쓰레기가 구수한 향 가득한 '톱밥'이 되어 나온다. 진짜 톱밥이 되는 것은 아니고 모양과 빛깔, 질감 등이 톱밥과 비슷하다. 이 '원료'를 축분과 섞어 다시 숙성 과정을 거치면 비로소 지렁이 먹이가 되는 '사육토'가 완성된다. 지렁이는 사육토 안에서 밤에는 유기물을 섭취하며 부지런히 살을 찌우고 낮에는 쉰다.

습식성 표피를 가지고 있는 지렁이를 위해 수분 조절은 필수다. 이렇게 지렁이들은 밤에 '먹고' 낮에 '싸는' 일을 반복하며 분변토를 뱉어내는데 이씨는 그것의 높이가 지렁이의 품질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육토를 먹고 분변토를 뱉어낸 만큼 다시 유기질이 풍부한 사육토를 얹어줘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사육토와 분변토의 높이가 점점 높아지겠죠? 밥을 많이 먹은 만큼 크고 건강한 지렁이들이 사육되는 겁니다. 개체수도 당연히 늘어나겠죠."

그는 지렁이를 세웠을 때 넘어지지 않고 탱탱하게 서 있을 수 있어야 1등급 지렁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물론, 과장이 포함된 표현이다. 반년 남짓 자란 이씨의 지렁이들은 아직은 크기와 길이, 굵기 등 모든 면에서 만족할 만큼 자라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최초 노지 지렁이를 키우자

그가 지렁이를 택한 이유는 앞서 밝혔듯, 생태와 환경, 순환농업을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사업가적 동기 또한 그에 못지 않다. 인천에서의 삶을 접고 귀농을 택했을 때 단순히 '선량한 가치'에 대한 실천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돈이 된다고 믿었다. 그것은 이씨 삶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인 지역 농가 소득 창출과 신앙 공동체 구현를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였다.

▲ 사진: 김태정 기자
"지렁이를 키워서 충분히 밥 먹고 살 수 있어야 사람들이 환경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배 부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고프지는 않아야 신앙도 섬기고,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지렁이를 이용해 배 곯지 않으며 살기 위해 그가 택한 전략은 대한민국 최초의 노지 지렁이 사육이었다.

"지렁이 사육은 온도, 습도 관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하우스에서 이뤄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천적인 두더쥐를 막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죠. 하지만, 지렁이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려면 노지 사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규모화 측면에서도 수익성을 가지려면 비닐하우스보다 노지가 유리합니다."

그는 현재 지렁이를 사육하는 하우스 뒤쪽에 2천310평방미터(약 700평) 규모의 노지 사육장을 확보한 상태다. 하우스는 씨지렁이를 키우는 곳으로 용도를 제한하고 진짜 승부는 노지 사육에 걸어볼 작정이다. 밭을 몇 개의 구간으로 나눠 한 쪽에는 지렁이를 사육하고 다른 한 쪽에는 지렁이를 쪼아 먹는 토종닭을 키운다.

아래 쪽에는 송어, 잉어 양식장도 만든다. 분변토는 주변 농가에 공급해 친환경농업으로 전환을 유도한다. 여기까지가 그가 구상한 노지 지렁이 사육 계획이다.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웃는 얼굴로 따끔한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는 그동안 양심을 잃어버리고 환경을 외면하고 공동체를 져버리며 많은 가치를 잊었습니다." 4월의 햇살에 새까맣게 탄 그의 얼굴이지만 그 선선한 웃음은 57년생, 지렁이띠 이상수씨의 희망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지렁이 넌 누구냐 (2004년 가축지위 획득)


 김상수씨  <사진: 김태정 기자>

지렁이는 여러 개의 환절체로 이뤄진 가늘고 긴 몸체를 가진 환형동물을 통틀어 이른다. 작은 것은 2㎜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지만 큰 것은 2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암수 한몸의 자웅동체로 재생력과 번식력이 강하다. 한해살이와 여러해살이가 있는데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10년 동안 산 기록이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약 5천500종이, 한국에는 약 60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특이한 사실은 자웅동체이면서도 생식에는 두 마리 개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교미를 통해 '알'을 낳으며 왕줄지렁이는 1~2개의 알을 낳는 반면 줄지렁이는 10~60개의 알을 낳는다. 앞쪽 마디에 입이 있고 뒤쪽 마디에는 항문이 있다. 그 사이에 소화관이 있는데 먹이를 먹으면 모래주머니 속에 있는 모래알로 먹이를 갈고 부순다.

빛, 압력, 냄새, 맛 등에 민감하며 단맛이 나는 먹이를 가장 좋아한다. 대부분 피부로 호흡하며 심장의 개수는 종에 따라 다양하지만 보통 5쌍을 가지고 있다.

비가 온 뒤에 죽은 지렁이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몇 가지 설이 있다. 땅속으로 들어간 빗물을 피하기 위해 밖으로 나와 기어 다니는 동안 자외선에 쏘여 몸이 마비되고 결국 수분을 잃고 죽는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낚시 미끼와 관상용 금붕어 미끼로 즐겨 사용된다.

지난 2004년 2월에는 지렁이의 지위가 '그냥' 지렁이에서 '가축' 지렁이로 법적인 보장을 받기도 했다. 소나 말, 돼지처럼 지렁이도 '사육되는 유용한 생명체'라는 의미를 획득한 것이다.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은 약 4천46㎡에 약 5만 마리의 지렁이가 살고 있으며 이들이 퍼 올리는 흙의 무게가 연간 18t 이상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동의보감은 '지렁이는 성질이 차갑고 맛이 짜고 독이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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