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옥천현대사 - 청산 교평리 6.25 미군 오폭사건
발굴 옥천현대사 - 청산 교평리 6.25 미군 오폭사건
  •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 승인 2000.06.24 00:00
  • 호수 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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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지금 생각해도 징그러워. 오죽했으면 산이 온통 불탔고 여기저기 사람과 장작더미가 함께 불에 타서 뒹굴고 마치 지옥 같았어. 잿더미만 남은 거지. 신작로가 새카맸어!"

청산면 교평리 노루목재에서 살던 손윤임(84)씨는 당시의 참상을 기억해내고는 그 징그러운 현장을 다시 생각하기 싫은 듯 손을 내젓는다. 노루목재는 청산면 교평리에서 보청천을 따라 대성리를 통해 속리산과 보은, 상주로 가는 도로에 있는 고개. 또 예곡·삼방·법화·명티리로 가려면 넘어가야 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고개다. 손씨의 집은 노루목 고개마루에 있던 당시 두 채의 집 가운데 한 채.

마침 손씨는 절구통에 보리를 넣고 절구대로 찧어 저녁에 먹을 보리쌀을 준비하고 있었고 당시 다섯 살 난 둘째 아들에게는 바로 밑에 있었던 콩밭에서 콩을 하나 뽑아서 구워 먹으라고 던져주었던 때였다고 기억한다.

"장로골(삼방리 자연마을 중 하나)에선가 경찰이 밥해먹고 땔 장작을 가져왔다고 하는 것 같은데. 장작을 가져온 사람들이 40명이라고 했나? 그 숫자에 피난민들이 많이 뒤엉켜 신작로 길 양 옆으로 쭉 앉아서 담배들 피우고 쉬고 있었어. 그 때 비행기가 한 대 오데.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공중을 한바퀴 돌아. 비행기가 공중을 도는 폼이 수상쩍어.

수상쩍다고 했는데 피난민 중 한 사람인 한 할아버지가 `태극기가 꽂혀 있는데 안심이야, 괜찮아!' 그래. 그런데 그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동 쪽에서 비행기 네 대가 날아오면서 폭탄을 떨어뜨리는데 드럼통 같은 것이 떨어지고 집마당에도 드럼통이 두 조각이 난 채 떨어졌어. 사방이 온통 불바다가 됐어. 우리 집은 물론이고 노루목 고개 산이 다 탔어. 오죽하면 멀쩡한 흙에도 불이 붙어 타더라고."

군 비행기라고 안심하다 당해

당시 미군 비행기의 폭격이 처음 이루어지던 상황에 대해 손씨가 상세하게 설명한다. 처음에 안심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 고개마루에서 잠시 편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즈음 난데없이 비행기가 의지리 쪽에서 보청천을 건너왔고 마침 아군이 들어와 있던 상황인지라 폭격을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때였다.

다행히 손씨는 집 옆에 있었던 방공호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방공호 앞에서 울고 있던 다섯 살난 아들을 굴 속에 집어 던지고 생각해보니 불이 붙어 타는 집 안에 젖먹이 갓난 딸이 있다는 걸 경황 중에 생각해냈다. 불이 붙은 집 속에서 딸을 꺼내 함께 방공호로 들어간 후에야 자신이 보리를 찧던 절구대를 갖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는 걸 알았다.

"오죽 경황이 없었으면 그랬겠어. 집은 다 불에 타고 수확했던 보리나 양식까지 모두 불타 버렸지만 손에 들고 다니는 바람에 절구대 하나만 건졌지"라며 손씨는 웃었다. 비행기의 폭격이 끝난 후 나와본 현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참혹함 그대로였다.

"불에 탄 사람들이 새까맣게 돼서 개 그슬린 것처럼 되어 있어. 신작로가 새까맣게 되어 있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새까맣게 탄 채로 부르르 떨기도 했는데 아마도 죽었을 거야. 또 그 와중에서도 물을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어. 밭에도 나뒹구는 사람이 허옇고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지경이었지. 얼마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엄청 죽었어"

나중에 폭격 소식을 듣고는 청산에서 사람들이 달려왔다. 새까맣게 탄 시체 중에서 가족들을 찾느라고 애를 태웠다. 구분이 안되자 얼굴을 비벼 구분하기도 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손씨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평상목 마을에도 포탄세례 2명 죽고 3명이상 부상

노루목재를 거쳐 보청천 변으로 내려가다 보면 평상목 마을이 있다. 20여호가 거주하던 이 마을에도 폭격의 충격이 미쳤다. 특히 강창규씨(사망)는 가족들이 죽거나 부상당하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다. 아내가 어린애를 끌어안고 포탄에 맞아 숨졌고 큰 딸은 파편을 맞아 팔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구제황(청산게이트볼회 회장)씨의 아버지 구봉학(당시 65세, 또는 66세)씨는 비행기에서 쏜 기관총 총탄이 엉덩이를 관통해 움직이지도 못한 채 1년간 고생하다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비행기 폭격이 원인이 된 죽음이었다. 또 구제중씨의 어머니도 팔꿈치를 부상당해 한평생장애를 안은 채 살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피난을 갔던 상황이라 당시 마을에는 12∼13명 정도의 사람밖에 남지 않았던 사실이라고 마을에 남아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구경서(74)씨는 증언한다.

이날 폭격으로 평상목 마을은 완파되지는 않았어도 절반 또는 조금씩 파손된 집까지 포함하면 6∼7채에 달한다는 것이 생존자들의 증언. 어머니 구경서씨와 함께 집에 남아 있던 아들 김동헌(54·청산면 교평리 평상목)씨는 당시 폭격으로 집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며 경황 중에도 어머니가 자신의 귀를 꼭 막고 껴안아 주었던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

청산시내 폭격으로 민간인 사상

다시 손윤임씨의 증언으로 돌아가보면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미군 비행기는 이날 노루목 고개 뿐만 아니라 청산시내도 폭격했다고 했다. 그 폭격으로 손씨 고모의 아들이 즉사했다. 청산시내 폭격으로 남편을 잃은 이도 확인되었다.

청산면 대성리에 살고 있는 이기님(73)씨는 당시 29살이던 남편 양철우씨가 마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찰들이 쓸 장작을 가져간다며 음력 8월24일 집을 나섰다가 미군 비행기의 청산시내 폭격으로 인해 숨진 채 돌아왔다며 50년 한맺힌 세월을 살아왔다.

"아침에 장작 날라간다고 하기에 쌀 되박에 좁쌀로 지은 밥을 점심으로 싸주었어요. 전날에는 먹는다며 된장을 걷어갔어요. 어쨌든 낮인데 비행기가 요란하고 폭격 소리가 나고 그래요. 남편이 청산을 나갔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생각하며 절구통에 좁쌀을 넣고 찧고 있었어요. 어둠 무렵에 다 죽은 채로 실려 왔어요. 얘기를 들으니 청산지서 옆에서 폭격에 맞았다고 그래요. 그런데 무슨 정신이 있어서인지 그 와중에도 `대한민국 만세'를 세 번 부르더니 쓰러졌다고 하더라고요."

그해 음력 정월 이씨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 하나를 낳았다. 아들이 불과 8개월. 그렇게 남편은 허망하게 이씨 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이씨는 남편이 죽었던 현장에서 가져온 도시락통 대신 싸주었던 되박을 버리지 않고 50년간이나 보관해오고 있다.

"몰라요. 내 생전 쓰다가 버리는거지 뭐! 며느리가 오래된 되박 쓰려고 하겠어요?" 폭격당한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은태(70·청산면 목동리)씨는 경찰과 군인들이 쓰려던 장작을 옮겨주는 부역에 나섰다가 폭격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현장 생존자이다.

베트남전 사용했던 '네이팜탄' 사용 가능성 제기

남편을 잃은 날짜를 기억하고 있는 이기님씨의 기억과 이은태씨의 기억이 일치하는 것으로 보아 미군기에 의한 폭격은 음력 8월24일이었다. 청산면 교평리 노루목재와 평상목, 청산시내 미군기 오폭 사실은 60세 중반 이상의 노인들이라면 거의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이날 인민군들이 물러난 후 경찰과 군인들이 쓸 장작을 구하러 동원되었던 아무런 잘못도 없는 주민들과 명티리 쪽 팔음산으로 집결해 속리산과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북상, 후퇴하는 인민군들을 피해 피난나왔던 피난민들에 쏟아진 포탄은 `주위가 온통 불바다였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네이팜탄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드럼통이 집 안에 떨어졌고 불이 사람 몸에 붙으면 떨어지지도 않아 `찍찍이불'이라고 불렀던 얘기가 있었던 점을 상기하면 네이팜탄일 가능성이 많다. 네이팜탄은 베트남전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상하는 주요 무기로 활용된다는 세계의 지적 때문에 폐기해야 한다는 논란을 빚었던 무서운 무기.

주민들은 당시는 전쟁통이라 경황이 없었기도 했었고 지금까지는 말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니었지만 이제 말할 수 있는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특히 영동 노근리 사건에서 무고한 양민이 미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사실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과 청산 미군 폭격 사건이 무엇이 다르냐고 말하고 있다. 이제라도 그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암묵적인 요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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