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면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단편적인 사실 만으로 전해진 사건의 전모는 심지어는 주민들이 인민군을 위해 부역을 하다 폭격을 맞았다고도 왜곡되었다. 그러나 부역을 나간 사람들은 한창 교전 중에 포탄을 나르다 폭격을 맞은 것도 아니었다. 보국대라는 이름의 부역을 하다가 전쟁통에 억울하게 죽은 것이라고만 알려져 왔다.
그래서 전쟁 중에 일어났던 것인 만큼 별다른 문제제기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도 팽배했다. 지금까지 이 사건이 묻혀 있었던 것은 미군에 의한 오폭이라는 점, 이제 와서 그 문제를 거론해서 무엇하겠느냐는 패배주의적인 생각 등이 합쳐진 결과였다.
살상이 일어났던 시기가 청산이 인민군 치하에 있었던 때도 아니었고 무장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상황. 피난민과 뒤섞여 있었고 쉬는 동안 맛있는 담배 한 모금 빨고 있다가 당했던 이가 허다했다. 심지어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주택가에도 포탄이 떨어져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살상의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 중 3∼4명의 증언자가 아직 살아 있고 현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상 등 이해에 얽힌 부분을 떠나서라도 청산 폭격사건은 우리 현대사를 바르게 인식한다는 측면에서도 역사적으로도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전쟁 중에 오폭 사건이 청산에만 있었느냐는 말로 얼버무릴 것이 아니라 자치단체나 지역사회에서 총체적인 진상 규명작업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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