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세요?] “옥천포도, 승산 있습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옥천포도, 승산 있습니다”
농업기술센터 한관만 농촌지도사
  • 정창영 기자 young@okinews.com
  • 승인 2007.06.28 15:03
  • 호수 8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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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관만 농촌지도사
옥천군농업기술센터의 한관만 농촌지도사가 환히 ‘떴다’ 전국 168개 시군을 대상으로 단 10명만 선발하는 ‘스타 농촌지도사’에 선발된 것이다. 우리 고장에서는 한씨가 최초이다. 

스타 농촌지도사란 해당 지역 농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농촌지도사를 뽑는 농업진흥청의 주요 행사다. 전국의 농촌지도사들을 대상으로 1차 서류심사와 2차 현지심사를 통해 선발한다. 현지 농업인들의 여론청취도 중요한 기준이다.  16.8대 1의 녹록치 않은 경쟁률을 뚫은 비결이 뭘까?
 
“제 나이 또래가 대부분 그렇듯 저도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자랐습니다. 누구보다도 농민들의 아픔과 바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진천에서 농사를 짓는 어머니를 대하듯 농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이 과분한 상을 받게 도와주었나 봅니다.”
 
한씨는 1976년 진천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줄곧 농업 관련 업무를 맡았다. 1983년 옥천군농촌지도소에서 첫 근무를 시작해 1994년 영동군농촌지도소에 1년 나가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24년 동안 옥천에서만 근무한 ‘옥천통’이다.
 
△옥천군농업인대학 지도교수 △포도특화작목 산학협력단 △포도전문지도연구회 회장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며 현재는 옥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포도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처음 농촌지도소에 발령받았을 때는 과수와 채소를 같이 맡았었는데 1995년 옥천군농업기술센터 근무와 함께 포도업무를 전담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포도박사가 다 됐습니다. 전국 최초로 포도농사를 시작한 옥천 포도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밤낮 없이 고민 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그가 가장 큰 애정을 쏟는 일은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포도대학이다. 본인이 직접 강의를 맡기도 하는 포도대학은 옥천포도의 진로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기에 한씨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농사라는 것이 책에 나와 있는 데로 따라한다고 잘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토양이 다르고 물이 다르면 농사짓는 방법도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집니다. 제가 할 일이란 그분들이 자기 밭에 맞는 농사법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저 도와주는 정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포도대학은 그 일을 하기 위한 중요한 통로이구요.”
 
옥천 포도는 1943년 이래 같은 땅에 쉬지 않고 농사를 지어 현재는 토양이 산성화되고 연작 장해가 발생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한·미 FTA가 체결되어 국회비준을 앞두고 있는 현실에서 옥천 포도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한씨의 생각은 달랐다.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포도 가격은 다른 과수에 비해 괜찮은 편입니다. FTA가 큰 위기이긴 하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품종을 육성하고 친환경적인 생산기술을 개발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습니다.” 힘이 넘치는 한씨의 목소리에 옥천 포도의 희망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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