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사업 나눠 먹기 접근, 절대 실패
[기획] 사업 나눠 먹기 접근, 절대 실패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성공의 열쇠를 찾는다 (4) - 전문가에게 듣는다
  • 백정현 기자 jh100@okinews.com
  • 승인 2007.06.07 15:06
  • 호수 8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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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법인 지역재단의 유정규 박사를 지난달 25일 만났다. 지난 2004년 농림부가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처음 추진하던 때부터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이한구씨(현 한두레 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추진위원장)를 통해 우리 옥천과 인연을 가져왔던 유 박사는 이번 인터뷰에서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갖는 가능성과 문제점을 균형감 있게 정리했다.

70억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 규모에도 마을단위 사업이 아닌 여러 마을이 함께하는 권역 사업이라는 성격 때문에 많은 선진 농촌 마을조차 사업추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유정규 박사는 우리 옥천의 한두레 권역 주민들에게 ‘1권역이 1가구’라는 생각만 가진다면 충분히 이 사업을 통해 새로운 농촌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유정규 박사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그동안 농림부가 농민과 농촌을 대상으로 해왔던 사업들과 비교할 때 새롭고 다르다.
=우선 농림부 사업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90년대 말부터 농림사업은 지역 농업정책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전의 농림사업의 기본 단위가 한 개의 농가였다면 이때부터 서서히 1개의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농촌개발이니 지역개발이니 하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즈음 이다. 구체적으로는 광역자치단체인 강원도가 시행한 강원도 새농어촌건설운동을 그 효시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당시 김진선 도지사는 매년 15개 마을을 선정해 마을마다 5억 원씩 이른바 꼬리표 없는 돈, 그러니까 주민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당시 강원도가 시도했던 이 새로운 정책은 조건을 단 돈이 아니면 주민들이 낭비하거나 나눠 먹기로 소모할 수 있다는 불안을 극복하고 주민의 자율성과 창의성에 투자했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그렇게 탄생한 마을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화천의 토고미 마을이다. 강원도의 이러한 성공사례는 2002년부터 중앙정부의 각종 사업에 이른바 ‘상향식 사업’으로 확대됐다.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 전통 테마마을, 녹색농촌체험마을, 어촌관광마을 등이 이런 사업이다.

상향식 농촌사업의 기원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80년대 후반 일본의 새로운 지방활성화 정책이었던 후루사토(고향) 창생(활성화) 사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역이 지혜를 내면 중앙이 돈을 대 지역을 활성화 시키는 정책이 그 뿌리에 있다. 유럽의 농촌정책도 금액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이런 형태로 이뤄지고 있고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다만, 기존의 상향식 사업이 마을을 기본단위로 함으로써 나오는 한계를 여러 마을을 권역으로 묶어 해결하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마을의 자원은 한정돼 있고 마을을 찾아오는 도시인들의 욕구는 다양한데 한 개의 마을이 이것을 다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권역 사업의 필요성과 취지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참가 권역들이 마을 간의 이해관계로 인한 다툼으로 사업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는데?
=권역 사업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 바로 그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사업에 대한 이해관계의 다툼은 권역 사업뿐 아니라 마을단위 사업에도 얼마든지 나타나는 문제다. 그렇다면, 사업의 단위가 무엇이 됐던 그 단위가 권역이라서 문제라기보다는 사업의 대상 주민들을 마을 리더와 행정이 어떻게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느냐 라는 문제가 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사업대상 주민들을 어떻게 공동의 목표를 향해 모아갈 것이냐의 과정이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본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을의 기본적인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부분의 농촌마을이 비슷한 상황에서 주민의 역량이란 것이 마을별로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한두레 권역이나 다른 어떤 곳도 사업 초기 주민 일반의 수준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마을이나 권역을 이끄는 주민 리더의 역량은 차이를 가질 수 있고 이것이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여건이 바로 자치단체의 수준이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의미와 가치를 담당자부터 군수까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자치단체라면 사업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본다.

사업비의 규모가 70억 원에 이르고 소득사업이 아닌 경우는 주민의 자부담 비율도 거의 없거나 매우 낮은 수준이다. 사업비가 대규모다 보니 많은 경우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이 농촌의 관광자원 개발사업으로 비치기도 한다.
=도시와 농촌이 교류하는 데 있어 관광자원의 개발은 분명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관광 중심으로 이해하게 되면 공통으로 생기는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첫째로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인 성공사례의 모방이 따를 수 있다는 점, 둘째로 성공사례도 그 속사정을 알고 보면 주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별로 없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난개발이 오히려 그나마 아쉬운 농촌의 자원을 고갈시켜 버리는 문제점이 나오고 있다.

관광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도시가 농촌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존재해야 하며 어느 정도 지역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활성화된다는 수준에서 절제돼야 한다. 또 관광으로 얻는 소득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문제다. 농촌마을이 이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당연히 마을의 농산물을 팔아서 얻는 것이 주가 되어야 한다.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의 중요한 목표는 지역 농특산물이 안정적이고 확실한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업이 친환경농업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이 사업에 대한 이해를 가진 전문가로서 옥천 한두레 권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부탁드린다.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수지만 이런 자세는 주민들이 이 사업을 알고 이해해야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사업설명회나 교육에는 반드시 참석하시라는 말씀을 가장 먼저 드리고 싶다. 이 사업의 성격을 이해하실 때 기본적으로 명심하셔야 할 것은 이 사업은 절대 마을이 좋은 사업을 사이좋게 나눠갖는 사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두레 권역 전체가 한 농가라는 생각을 못하면 이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 내가 내 땅에 창고를 짓는다면 창고가 가장 필요한 땅을 정해서 지을 것이 아닌가? 한두레 권역에 어떤 사업이 시행되더라도 권역 전체를 주민 모두가 내 땅으로 생각하고 설계할 수 있어야 멋진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똑같은 말이지만 우리 말에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이 있다.

사업에 대해 배 아픈 사람이 많아지면 사업이 성공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치단체의 관심이다. 이 사업을 하는 전국 마을 주민수준은 어디나 비슷하다. 그러나 자치단체의 담당자로부터 군수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이해하고 관심을 두고 있는 권역은 그렇지 않은 권역과 역량에서 대단한 차이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유정규 박사는
경제학 전공으로 건국대학교를 졸업했고 일본 교토 대학에서 식료환경정책과정을 마쳤다. 96년부터 한국농업정착학회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유 박사는 2000년 군 단위 자치단체로는 진안군이 처음 시도한 사무관급 농촌전문가로 채용돼 3년간 진안군 군정기획평가단 단장을 맡기도 했다. 농림부가 2004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시작할 때 이 사업의 실무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그가 일하는 지역재단은 최근 청성면 장수리 만명마을의 농촌전통테마 마을 사업의 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농촌공사에서 기본설계를 진행 중인 청성 한두레 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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