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세요?] '여기는 훈장 없는 서당'
[어떻게 지내세요?] '여기는 훈장 없는 서당'
서각교실 연 백우서당 김인철
  • 최해신 기자 hschoi@okinews.com
  • 승인 2007.03.29 15:09
  • 호수 8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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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학생들을 보며 김인철씨는 즐겁다. 서당문을 열고 찾은 큰 기쁨이다.
어느 광고에서 요즘 가장 필요한 건 ‘스피드’라고 했던가. 빠름의 미학은 배움의 공간에도 여지없이 적용됐다. 인터넷 하나면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첨단의 세상에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배움의 터, ‘서당’이라…. 구읍의 한 골목, 백우서당(옥천읍 문정리)이란 이름표를 내 걸고 세상 대세를 용감(?)하게 거스르고 있는 ‘그곳’을 찾았다.
 
“서당이란 이름이 촌스럽지만 여기가 진짜 서당이니 마땅히 다른 이름을 찾을 필요가 있어야 말이죠” 

백우서당의 주인 김인철(58)씨. 서당의 주인이니 그의 직함은 훈장이려나. 그러나 서당이라는 공간 어디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다는 글 외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뚝딱뚝딱∼하는 끌로 나무 파는 둔탁한 소리만 들릴 뿐.
 
“꼭 글 외는 곳만 서당인가. 붓으로 글씨를 쓰든, 끌로 글씨를 새기든 어쨌든 ‘글을 쓰는 집’이니 여기가 서당(書堂)이죠. 이름 정말 정직하지 않아요?”
 
서당에서는 5일 수업이 이뤄진단다. 3일은 서예수업, 나머지는 서각수업. 알고 보니 김인철씨는 유명한 서예가이자 서각가였다. 대한민국 서예대전 입선경력만도 수차례이고, 그의 서각작품을 기다리는 곳만도 다섯 군데가 넘는단다.  부산이 고향인 그가 옥천에 정착한 것은 18년 전이란다.
 
나이 마흔에 시작한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서각이었는데 놀랍지 않은가. 취미가 ‘업’이 되고, 삶의 이유가 되었으니 말이다.
 
“친구에게 처음 서각을 배울 때 미쳐있었던 것 같아요. 한풀이랄까. 끌로 나무를 수십, 수백, 수천 번 두드려 파내면서 옥천 내려오기 전에 맛보았던 실패의 흔적을 그렇게 내 마음에서 파내버렸던 것 같아요. 어느 날 보니 상처는 깨끗하게 아물어있고, 새로운 삶도 시작되어 있더라고요.”
 
지금의 서당자리에 공방을 짓고, 혼자 작업해온 지 10년이란다. 그동안 문을 열어달라고 찾아오는 이도 많았지만 쉽사리 열지 못했다는 그. 그러다 6개월 전 지금 서당에서 서각을 배우고 있는 강현순 서예가와 정진철 사진작가가 찾아와 대문을 열어달라 간곡히 요청했고, 그는 “뭐 잘났다고 똥고집 피우냐”는 생각에 ‘열린 (門)’을 대문에 써서 부쳐 단다.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즐겁단다. 좋단다. 아마도 그가 마음까지 활짝 열었기 때문이 아닐까.
 
“서당인데 가르치는 훈장은 없어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서로 배우는 거죠. 내가 글씨를 쓰거나 파내는 기술이 우리 학생들보다 조금 나아 알려주고 있지만, 마음 부리는 기술은 우리 학생들에게 나 또한 배우고 있거든요. 이렇게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바로 백우서당이에요. 막걸리 한 주전자 받아오시는 분께 언제든 서당문 열려있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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