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특집] 영실애육원 아이들
[어린이날 특집] 영실애육원 아이들
  • 이용원 yolee@okinews.com
  • 승인 2000.05.06 00:00
  • 호수 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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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3개, 좁지 않은 베란다, 화장실, 그리고 아이들이 둘러앉기 충분한 거실,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생활하는 곳의 구조다. 그곳에 앉아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심장병을 앓아 성장이 더딘 다섯 살 먹은 아이가 계속 기자에게 빵을 가져다주며 까질 까실한 턱수염을 더듬는다.

아빠와 단 둘이 살다가 형편이 여의치 않아 이곳에 맡겨진 그 아이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기자의 턱수염으로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눈을 빤히 쳐다보며 자신의 진짜 아빠가 아니라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자의 목을 자신의 팔로 꼭 감아버린다. 잠시 후 계단을 쿵쾅거리며 밟는 소리와 함께 방문을 연 아이들은 인사를 한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들어오기 전에 신고 갔던 양말을 벗어 화장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아온 양말을 베란다에 널어놓고 가방은 자신의 방에 가져다 놓는다. 다음 차례는 둘러앉아 학교에서 가져온 숙제를 해야 하지만 오늘은 그 시간을 잠시 빼앗았다. 영실 애육원에는 초등학생 30명, 중.고생 30명 등 모두 60여명 정도의 아이들이 함께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이들하고 같이 있으면 재미있어요

영실 애육원 아이들의 일과는 다른 아이들의 일과와 대부분 비슷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같이 숙제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고 텔레비전도 본다. 같이 놀다가 서로 심하게 다투고 울기도 한다. 때론 언니, 오빠들 말을 안 듣고 싸우기도 하고... 간혹, 친구들끼리 모여 엄마 놀이를 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했거나 짧은 경험으로 그쳐버린 가족들과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는 놀이를 한다면 고아원놀이 정도다. 주로 엄마놀이를 하다가 질리거나 재미가 없으면(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일지도 모르겠다) 하는 것이 고아원놀이다. 나름대로 경험을 했던 고아원 생활의 애환을 놀이를 통해 해소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 또래의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자신들의 환경을 그대로 놀이로 전환시키면서 모방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려고 하는 것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주는 것이 좋죠

`그랜져아저씨요', `한집사님이요', `빵아저씨요', `참사랑회 언니, 오빠들이요'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기다려지는 사람들이 누구냐고 묻자 아이들은 이름대신 특징을 잡아 몇몇을 꼽는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10년 가까이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아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베풀어 온 사람들이다.

분명, 연말에 한 번씩 찾아와 박스를 아이들의 키보다도 높게 쌓아놓고 기념촬영을 하고 가는 사람들하고는 차별화된 존재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밤에 몰래 찾아와 창 밖에서 아이들을 불러내 빵을 한아름 안겨주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단순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고 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잠시지만 그 사람들이 보여주고 가는 따뜻한 웃음과 손길을 기다리는 것이다. "컴퓨터 선생님이 와서 컴퓨터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에게 꼭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대도시에서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어요. 방학 때 음악, 글짓기, 컴퓨터 등 학습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구요. 그런데 아직 이곳은 작은 지역이라 힘든 것 같아요." 피아노, 풍물, 합창 등 일부는 영실애육원 지도교사들이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배우고 있지만 다른 사교육 부문들은 아직 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5월5일, 무관심한 이웃들

"연말에는 사회에서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은데 어린이날에는 거의 무관심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사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어린이날에 대한 기대가 크거든요. 작년에는 자체 예산을 쪼개서 마니산 휴양림을 다녀왔는데, 올해는 재정상 그것도 힘들 것 같아서 걱정이예요." 영실애육원 송옥희 총무의 얘기다.

아이들은 어린이날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 좋다고 얘기한다. 도시락을 싸서 밖으로 나가 놀이기구도 타고 싶고, 하루종일 놀다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올해는 힘들 것 같다. `어린이날' 커다란 운동장에서 각종 행사를 바라보며 한 손은 엄마의 손을 붙잡고 다른 한 손은 풍선이나 아이스크림을 쥐고 환하게 웃고 있는 너무 맑고 예쁜 아이들만이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린이날을 앞두고 만나 본 영실애육원의 아이들은 맑고 순수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들의 웃음 한구석에 조금 비어 있는 공간을 채워 줄 수 있는 손길은 여전히 아쉬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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