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털보네 호떡
[탐방] 털보네 호떡
  • 이용원 yolee@okinews.com
  • 승인 2000.04.08 00:00
  • 호수 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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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면서부터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만지작거린다. 동전은 이미 손에 밴 땀으로 미끈거려 기분이 좋진 않지만 동그란 그 느낌만은 흐뭇하다. 파란색 두터운 천막의 한켠을 젖히고 들어선 곳에서는 오래 쩔어 버린 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리어카를 양옆으로 늘리고 합판으로 위를 막아 구멍을 낸 곳에는 세상에 맛있는 것은 모두 몰려 있었다. 커다랗고 바삭거리던 핫도그(한국산), 그 선정적인 빨간 색깔이 침을 삼키게 하던 떡볶이, 김을 모락 모락 내며 삶아지고 있던 오뎅, 잘못 베어 물면 설탕물이 흘러 혀며 입 주위를 데고 옷을 버렸던 호떡 등.

 생활에 지쳤지만 주머니는 가벼운 어른들을 위해 오랜 시간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한 밤에 문을 여는 포장마차라면 주머니 가볍고 먹성 좋은 어린이들과 입이 심심한 어른들에게 간식을 제공하였던 것 역시 또 다른 종류의 포장마차였다. 이원면에 가면 일명 `털보네 호떡'이 1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평 남짓한 포장마차 어디에도 털보네 호떡이라는 상호는 보이지 않지만 이원사람들은 모두 그곳을 털보네 호떡이라고 부른다.

 포장마차의 주방장이자 사장인 박애란(45)씨의 남편인 최규성(48)씨가 턱에 멋진 턱수염을 기르고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 언제부턴가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17년 동안 털보네 호떡이 지역주민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맛'이다. 적당히 부풀어 오른 호떡의 쫄깃한 맛을 주민들은 좋아한다. 그래서 이원에 호떡을 파는 포장마차도 `털보네 호떡' 단 하나다.

 현재 영동으로 향하는 4번 국도가 생기기 전 이원 새마을금고 앞으로 영동과 무주를 다녔을 때는 호떡집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도로가 새로 생겨 일부러가 아니면 털보네 호떡집 앞을 지날 수 없는 지금이지만 아직도 일부러 호떡집을 찾아오는 그 때 손님들이 가끔 있다고 박씨는 말한다.

 "그때가 가장 큰 보람이죠,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고 잊지 않고 다시 한번 찾아 준다는 것이 너무 고마워요." 박씨가 인정받는 맛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손맛 때문은 아니다. 큰딸인 효정양이 태어난 다음해부터 효정일 업고 대전에 있는 큰 제과점에서 1년 동안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면서 얻은 조언. 밀가루 수 십포를 없애가며 주민들의 입맛을 찾아낸 노력 등이 지금의 맛을 만들어 낸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박씨가 호떡집을 열게 된 것은 남편 최씨의 덕(?)이 크다. 지금까지 한번도 직장이라는 곳을 다녀,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는 최규성씨. 최씨는 그런 한량이면서 사람 좋은 호인이었다. 그렇다고 둘 사이에 불화가 끊이지 않고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일반적인 추측으로 혀를 찰 필요는 전혀 없다.

 포장마차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평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비록 박씨가 신혼여행을 갖다 와서야 남편 최씨가 직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지만 박씨 또한 지금의 삶에 큰 불만은 없다. 두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것은 큰 욕심 없는 삶에 대한 태도였다. `나중에 엄마, 아빠 편하게 모신다'며 아양을 떠는 두 딸이 있고, 무뚝뚝하지만 박씨 옆에 든든히 서 있는 최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이 낚시를 좋아할 때는 매일 집에 사람이 끓었어요. 물고기 조금 잡아오면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오거든요. 그러면 저는 들어가서 매운탕 끓이고 밥해서 대접하구...." '힘든데 귀찮지 않았냐'는 질문에 박씨는 고개를 젓는다. 그녀 또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수입이야 뻔한 포장마차, 수입 없는 남편, 딸 둘, 모시고 사는 시어머니'

 세속적인 드라마 등에서 소위 말하는 불행의 조건으로 담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는 박애란씨와 최규성씨. 하지만 그들에게 세속적 잣대를 댈 수는 없었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듯한 모습. 무뚝뚝하지만 스스로 유머감각이 있다고 말하는 남편 최씨의 환한 웃음에 박씨도 조용히 따라 웃는다. 포장마차는 4월말이나 5월초부터 휴식에 들어간다. 날씨가 너무 덥기 때문에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

 "이번 여름에는 아내 데리고 바다에라도 가서 일주일 정도 쉬었다 와야겠어요, 저 사람이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거든요."표정 없이 툭 던지는 최씨의 말에서 사랑이라는 것이 어쩌면 저런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원에 가면 그 곳에 한번 들려보자. 요즘 맡기 힘든 사람냄새를 진하게 맡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한 남편 최규성씨를 쉽게 볼 수는 없겠지만 운이 좋아 그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라도 나눠본다면 분명 한 번쯤은 맑게 웃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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