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도 열린 도서관, 마을에 희망의 불빛
밤에도 열린 도서관, 마을에 희망의 불빛
희망의 작은 도서관 - 충북 옥천 청산초등학교
  • 한겨레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 승인 2006.10.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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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군 청산면의 하나 남은 초등학교인 청산초는 학부모와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밤9시30분까지 도서관 문을 열어 농촌 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책으로 미래의 희망을 열어가도록 돕고 있다. 사진은 19일 도서관 운영 회의를 위해 모인 박선옥(왼쪽에서 세번째) 관장과 황민호 <옥천신문> 기자(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자원봉사자들.
19일 저녁 7시. 사위가 어둠에 묻혔다. 충북 옥천군 청산면 청산초교 교사 뒤편 건물 2층에 불이 켜진다. 도서관이다. 건물 옆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뛰어 들어갔다. 도서관 안은 금세 20여 명의 아이들로 북적댄다. 인기짱은 컴퓨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서가로 가 책을 빼들고 자리에 퍼더버리고 앉아 독서 삼매에 든다.

이 학교 도서관은 밤 9시30분까지 문을 연다. 지난 3월부터다. 청산면 안에 하나 남은 이 학교를 사그라져가는 청산면에 희망의 등불이 되도록 하자는 뜻에서 시작한 일이다.

<옥천신문> 황민호(32) 기자가 심지에 불을 붙였다. 지역 특히 농촌 공동체를 살리는 일에 관심이 많은 그는 지역 신문에서 일하면서 연고지인 대전을 떠나 지난해 3월 아예 청산면으로 삶터를 옮겼다. 그의 눈엔 아이들의 뛰노는 학교가 먼저 들어왔다.

“아이들이 희망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움직이면 지역 주민이 따라 움직이고 지역 공동체가 되살아나게 됩니다.”

황 기자는 먼저 수업을 마친 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밤늦게까지 여는 게 필요하다고 여겼다. 안효익 학교운영위원장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저녁때 도서관을 돌볼 사람이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는 대학 후배인 면사무소 직원, 학부모 등을 설득해 5명의 자원봉사자를 꾸렸다. 밤에도 열리는 도서관의 ‘개관’이었다.

주민·학부모들 봉사로 운영… 작아져가던 지역공동체 활기

도서관은 갈 곳 없던 아이들에게는 큰 놀이터가 됐다. 매일 40~50명의 학생이 도서관을 찾고, 영화를 상영하는 금요일에는 시청각실에 200여 명이 모인다. 자원봉사자도 9명으로 늘었다. 학부모는 물론 면사무소, 농협, 신협, 우체국 등 청산면의 공공시설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 황 기자가 인맥으로 꿴 ‘지역의 보배’들이다.

황 기자는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김원영, 이지훈씨, 박중민 보건지소장 등과 함께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청산중학교를 찾아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찾아가는 공부방’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지난 9월 이곳으로 부임한 김세중(56) 교장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김 교장은 도서관이 자원봉사자 부족으로 수업을 마친 뒤부터 7시까지 문을 닫아야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 중이다. 6년 남은 교장 임기를 고향마을인 이곳에서 끝낼 생각인 그는 학교 담을 허물어 청산초를 지역 주민에게 완전히 개방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청산초는 이미 학교 강당과 운동장을 야간에도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면사무소에서는 야간 운동을 위한 조명시설을 해줬고, 전기요금도 지원하고 있다.

1914년까지 청산면은 옥천과 마찬가지로 버젓한 군이었다. 그 뒤 인구가 줄어 면으로 ‘강등’된 데다 1000명 가까운 학생이 다니던 학교가 지금은 학생 수 187명으로 줄어들자 주민들은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 마을에 다시금 희망의 불빛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박선옥 도서관장의 말처럼 “혜성처럼 나타난 보배”인 <옥천신문> 황민호(32) 기자 덕분이다.

한겨레신문/2006년9월26일/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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