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을탐방 [199] 옥천읍 하계리 … 하계마을
신마을탐방 [199] 옥천읍 하계리 … 하계마을
지용의 시심을 길러낸 정감어린 마을
  • 이용원 기자 yolee@okinews.com
  • 승인 2006.08.10 13:34
  • 호수 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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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하계리는 구읍이라 부르는 곳의 중심에 위치한 마을이다. 쌍을 이루는 마을로 상계리가 있다. 관성동호회에서 1984년 발간한 ‘옥천향지’에 따르면 마을에 있던 나무에서 마을이름이 유래했다. 옛날 마을에는 커다란 느티나무[槐木] 세 그루가 있었고 이 나무를 기준으로 윗마을은 상괴, 아랫마을은 하괴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마을이름이 좋지 않다 괴(槐)를 계(桂)로 바꿔 상계리와 하계리로 칭했다. 하계리 자연마을로는 하계와 샘실, 대사동리가 있었지만 현재 대사동리는 없어지고 두 개의 자연마을로 나뉜다. 이번 호에서는 본마을이라 할 수 있는 하계마을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옥천읍 하계리 실개천
뜨거운 한낮 여름 태양은 마을을 둘러보는 발걸음을 무척 더디게 만들었다. 피하듯 들어간 곳이 올 준공한 하계마을회관이다. 경로당을 겸하는 마을회관은 방 두 칸의 깨끗한 단층 건물이다. 지난해 착공해 60평 터에 총 9천800만원의 사업비가 들었다.

경로당이 생기기 전에는 상계리 경로당을 함께 사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깥보다는 낫지만 후끈한 열기는 매한가지다. 그곳에서 마을 주민 몇이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부채질로 더위를 쫓고 있는 박언년(84) 할머니와 유경순(83) 할머니에게 마을 얘기를 청했다. 박씨 할머니는 군북에서 시집와서60년이 넘게 하계리에서 살고 있고 유씨 할머니는 그곳이 고향이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죽향리지만 친구를 찾아 하계리 경로당에서 여름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옛날하고 많이 변했지. 예전에는 이 근방이 다 논이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집들이 들어왔어. 그냥 살기는 좋아. 저 위로는 면사무소도 있었고.”

구읍이라 불리던 지역이다. 읍 시가지가 형성되기 전에 고을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그래선지 5일장이었는지 7일장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해내지는 못했지만 지용생가 앞을 흐르는 실개천 가를 따라 꽤 북적거리는 장이 서곤 했다.

나무전, 닭전, 돼지전, 자리전 등이 순서대로 죽 늘어섰다. 솥을 걸어놓고 장국을 파는 집도 지금 지용문학관 언저리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 내었다. 지금은 하계리 둥구나무가 없지만 그 때는 커다란 샘버들나무가 있었고 마을 공동 샘도 그 언저리에 있었다.

“지금이라도 둥구나무 한 그루 심지 그러세요?”
“지용생가 근처에 많이 심어 놓았잖어. 기왕 심는 거 과일나무로 심지 맨 이상한 나무만 심었는지 모르겠어.”

어르신들에겐 기왕이면 과실수를 심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가보다.

◆전형적인 주거지역 모습 갖춰
박언년씨의 집은 본래 지용생가와 문학관이 들어선 곳에 있었다. 토지를 수용당해 쫓겨난 꼴이 되어선지 그리 달갑지 않은 눈치다.

“처음 만들었을 때 한 번 가봤지. 잘 해 놓았대. 그렇다고 뭐 여러 번 갈 거 있나? 지용제 한다고 여기 와서 노래도 부르고 하는 것도 한 번은 봤는데. 지금은 잘 안 봐.”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실개천으로 나왔다.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실개천엔 발가벗고 물장구치는 동네 아이들도 없었다. 대신 실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는 어느 집에선가 내놓은 생활 쓰레기가 한 여름 태양에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교동저수지로부터 길게 내려오는 실개천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저쯤에 나무를 쌓아 놓고 소리소리 지르는 수염 기른 아저씨의 모습. 집에서 힘들게 짠 자리를 들고 나와 땀을 훔치며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아주머니의 모습.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다란 솥에서 진한 국물을 뚝배기에 담는 장국밥집 할머니의 모습까지.

모든 것들은 머릿속에서만 가능하다. 지금은 실개천만 고요하게 흐른다.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하계마을은 양옆으로 나눠져 분포되어 있다. 지용생가로 들어가는 실개천 다리와 연결되는 도로로 상계마을과 구별이 된다.

꽤 널찍한 하계마을은 전형적인 주거단지다. 반듯하게 놓인 골목길 옆으로 주택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대부분은 현대식 건물이지만 일부 슬레이트 지붕도 눈에 들어온다. 마을의 역사 때문인지 구력도 제법 느껴진다. 한 때는 논밭이었던 곳도 이제는 대부분 집들이 들어섰다.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민 중 일부가 그곳으로 이주를 했다. 중심부로는 그렇게 주택이, 길 쪽에는 이런저런 가게들이 늘어서있다. 오래된 마을, 지용생가의 복원 이외에는 커다란 변화를 겪지 않은 마을이어선지 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들도 많았다.

◆역사를 담고 있는 가게 많아
더위를 피해 음료수를 마시러 들어간 ‘가산상회’도 그 중 한 곳이다. 섀시로 만든 출입구만 봐서는 그렇게 오래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손바닥만한 매장(?)에 과자와 음료수들이 나란히 정리되어 있었다.

▲ 옥천읍 하계리
언뜻 보이는 선반의 나무와 페인트가 범상치 않은 것을 확인하고 물어보니 예상대로 40년이 다 된 가게였다.

“안내면 답양리가 고향인데 65년도에 나왔지. 저 위에 사거리에서 하다가 69년에 지금 이 건물을 지어서 왔어. 그냥 살기 조용한 동네지 뭐.”

수북리로 들어가는 도로에 접한 가산상회에서 나와 간판을 보니 ‘33’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가 세월을 얘기하며 적혀 있었다. 그곳에서 돌아 나와 길가로 나선다. 사거리를 향해 가는 길가부터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지용생가까지 상가들이 죽 늘어서 있다.

한 눈에 봐도 어제 오늘 생긴 가게들은 아니다. 지금 하계리에 있는 문정식당은 식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문정리에 개업을 했다가 85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창업을 했던 김인수(71)씨가 아들 상대(38)씨와 함께 운영을 하고 있다. 개업한지는 30년이 넘었다.

만물슈퍼(상회) 역시 76년에 문을 연 가게다. 지금은 정창영(57)씨가 아버지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장사가 예전만은 못해요. 수몰민들 이주해 들어올 때 잠깐 인구가 늘었다가 지금은 다시 줄어들고 있죠. 집들은 있어도 젊은 사람은 없고 거의 노인들이 지키고 있으니….”

군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아파트가 늘어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은 하계마을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었다.

실개천이 옛 모습으로 정비됐으면 좋겠어요”
개미재에서 만난 사람 … 염상돈 이장

▲ 염상돈 이장

수북리로 들어가는 도로 옆, 새로 지은 정미소가 눈에 띈다. 지용문학관을 신축하면서 이전한 ‘구읍 정미소’다.

그곳에서 염상돈(46) 이장을 만났다. 서글서글한 눈매와 환한 웃음이 인상적인 염 이장은 7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가업을 물려받으면서 이장을 맡게 됐다.

“이제 얼마 안됐죠. 어른들 얘기가 한 10년은 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이장을 맡은 지 꽤 오래되었다는 말에 염 이장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구읍에서 보면 하계리가 중심에 위치한 마을이잖아요. 주민들 대부분이 평범해요. 많이 잘 사는 사람도 많이 못사는 사람들도 없어요. 그러니까 조용히 살기 좋아요.”

염 이장은 그 조용한 마을 하계리의 저력에 대해서도 자랑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공약사업이기도 했던 ‘경로당’을 짓기 위해 모금운동을 전개했는데 당초 계획보다 1천600만원이나 많은 3천600만원이 걷혔다고 한다. 본인도 놀라고 주변에서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이제 어르신들을 위해서 운동기구나 좀 들여놓고, 경로당 보일러를 심야전기보일러로 바꾸었으면 좋겠어요.”

100가구가 넘는 주민들의 염원이었던 경로당 신축을 마무리한 염 이장의 다음 욕심이었다. 큰 사업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용생가 앞을 흐르고 있는 실개천 정비사업도 꼭 하고 싶은 일이다.

염 이장은 옛날 따뜻한 주민들의 정을 가득 담아 흐르던 그 실개천이 옛 모습으로 다시 복원되길 희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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